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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서 촬영까지… 삶의 기록도 디지털 수단이 주류 [여론 속의 여론]

서울흐림 / 20.7 °
기록의 효용 높지만, 실천에는 장벽 존재
기술 변화와 기록 방식 진화, 편리함 선택
AI 기록, 신뢰성·개인정보 보호 우려 관건


호모 스크립투스, 기록하는 존재인 인간의 일상에 디지털 기기는 문자, 사진, 영상, 음성 등 다양한 매체를 편리하게 기록·저장할 수 있는 도구로 깊숙이 자리잡았다. 게티이미지

호모 스크립투스, 기록하는 존재인 인간의 일상에 디지털 기기는 문자, 사진, 영상, 음성 등 다양한 매체를 편리하게 기록·저장할 수 있는 도구로 깊숙이 자리잡았다. 게티이미지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기록한다. 사진을 찍고, 위치를 저장하고, 대화를 남긴다. 삶을 기록하는 일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일상을 정리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손 글씨나 메모뿐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자동 저장되는 사진과 위치 정보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흔적 남기기가 보편화되며, 기록의 방식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자동으로 남겨지는 정보가 과연 나의 의도를 담고 있는지, 기록의 주체는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은 지난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기록 수단과 빈도, 목적, 디지털 및 인공지능(AI) 기록 기술에 대한 인식과 우려를 조사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기록 습관과 기술 수용 태도를 진단하고, 기록의 의미 변화를 살펴봤다.

기록은 더 이상 손으로 쓰는 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응답자 4명 중 3명(75%)은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기록 행위로 인식하며, 그다음은 손으로 직접 쓰기(54%), 디지털 텍스트 입력(47%) 순이다. 전통적인 글쓰기보다 시각적 기록을 더 적극적인 행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화면 캡처(40%)나 음성 녹음(20%)처럼 글을 쓰지 않는 방식도 기록하는 행위로 여기고 있다.

연령별 차이도 뚜렷하다. 디지털 텍스트 입력을 기록하는 행위로 보는 사람은 18~29세 70%, 30대 65%로 전체 평균보다 높고, 음성 녹음, AI 자동 기록 역시 20·30대에서 더 많이 기록행위로 인식한다. 젊은 세대일수록 기록을 기술과 결합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 는 그래픽=강준구 기자

'나의 삶을 기록하는 행위' 는 그래픽=강준구 기자


삶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는지를 물은 결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단은 ‘사진·영상 갤러리(63%)’이며, 그다음은 종이 기반 도구(35%), SNS(26%), 디지털 메모 앱(21%), 웹 기반 캘린더·플래너(20%) 등의 순이다.

연령별로는 20·30대에서 SNS와 웹 기반 일정 도구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SNS를 기록 수단으로 사용하는 비율은 18~29세 45%, 30대 46%로, 전체 평균보다 약 20%포인트 높다. 웹 기반 캘린더·플래너도 18~29세가 29%로 타 연령대보다 높다. 반면 50대 이상에서는 종이 기반 도구 사용 비율이 높고, 특히 70세 이상은 55%가 종이 기반 도구에 삶을 기록한다고 답해 전통적 기록 방식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삶을 기록하는 수단 그래픽=강준구 기자

삶을 기록하는 수단 그래픽=강준구 기자


삶을 기록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어떤 내용을 남기는지 물은 결과, ‘개인적 활동 및 경험(57%)’과 ‘대인관계 및 사회적 활동(48%)’이 가장 많아, 감각적 일상과 관계 중심의 기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어 ‘목표 및 계획 관리(42%)’, ‘금전·소비 기록(37%)’, ‘정보 및 아이디어 수집(35%)’, ‘건강·운동 관리(35%)’, ‘업무·학습 관련 내용(30%)’ 등 실용적 목적이 비중 있게 나타난다. 반면, ‘감정이나 내면 성찰(32%)’, ‘개인 창작 작업(17%)’과 같은 정서적·표현적 기록은 상대적으로 낮다.

기록하는 내용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하는 내용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의 효용을 묻는 질문에도 이 같은 흐름은 이어진다. ‘중요한 순간 보존(46%)’과 ‘가족·지인과 추억 공유(28%)’ 외에도, ‘일정 관리(20%)’, ‘재정·건강 관리(각 16%)’ 등 실용적 기능에 대한 체감이 높다. 반면 감정 정리(16%)나 스트레스 조절(9%) 등 정서적 효용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기록은 단순한 회고를 넘어 자기 이해와 생활 정리에 도움이 되는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중요한 순간을 되돌아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94%에 달하고, ‘삶 관리에 도움이 된다(84%)’, ‘업무·학업 성과를 높인다(82%)’,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78%)’, ‘미래를 위한 투자다(75%)’ 등의 항목에도 공감이 높다.


기록이 아래 내용에 도움이 되나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이 아래 내용에 도움이 되나 그래픽=강준구 기자


특히 평소 삶을 기록하는 사람일수록 긍정 인식이 더 강하다. ‘기록은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데 기록자는 75%, 비기록자는 51%가 동의하며, 기록 빈도가 높을수록 공감률도 함께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얼마나 꾸준히 기록하는지가 기록의 가치를 체감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록으로 도움이 되는 것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으로 도움이 되는 것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의 효용에 대한 인식은 높지만, 전체 응답자의 12%는 삶을 전혀 기록하지 않는다. ‘기록할 만한 특별한 일이 없어서(41%)’,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39%)’다. 기록의 가치는 알더라도 일상에서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거나 계기가 없다는 것이다. ‘지속할 동기나 습관 부족(31%)’, ‘기록의 번거로움(20%)’, ‘기록 시간 부족(10%)’ 등의 실천적 어려움도 확인된다. 특히 기록하지 않는 사람 중 70%는 ‘기록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때가 있다’고 답해, 기록이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기록을 하지 않거나 중단한 이유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을 하지 않거나 중단한 이유 그래픽=강준구 기자


이러한 어려움은 기록자들 사이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기록 지속의 방해 요인으로는 ‘지속할 동기 부족(29%)’, ‘정리의 어려움(28%)’이 꼽혔다.


기록의 방해 요인 및 수단 변경 이유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의 방해 요인 및 수단 변경 이유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이 ‘좋은 습관’이라는 인식과 함께 기록에 대한 부담도 공존하는 가운데, 기술은 이러한 장벽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5년간 기록 수단을 바꾼 사람들에게 이유를 묻자, ‘더 편리해서(27%)’, ‘기록을 쉽게 찾기 위해서(22%)’가 가장 많이 꼽힌다. 이는 내용보다 과정의 효율성이 도구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록을 지속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의지 부족이 아니라 입력의 번거로움이라는 점에서, 자동 정리를 지원하는 기술에 대한 수요가 확인되고 있다. AI 기반 자동 기록 기술은 사진, 음성, 일정 등을 자동 저장·분류하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3%에 불과하며, 전체의 93%는 이를 기록하는 행위로도 인식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의 사진 자동 분류 기능 등 이용 경험은 있어도, 능동적 기록 행위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이다. AI 자동 기록 기술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은 15%에 불과하고, ‘들어본 적은 있으나 잘 모른다’는 응답은 57%에 달한다.

AI 자동 기록 서비스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그래픽=강준구 기자

AI 자동 기록 서비스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그래픽=강준구 기자


반면 기대는 높다. 10명 중 7명이 ‘AI가 자동으로 기록을 정리해 준다면 편리할 것 같다’(68%), ‘기록을 더 쉽게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70%)고 생각하고, 실제 사용 의향도 63%에 달한다.

AI 자동 기록 서비스 이용 의향 그래픽=강준구 기자

AI 자동 기록 서비스 이용 의향 그래픽=강준구 기자


하지만 이 기술이 실제 활용되기 위해선 신뢰 확보가 중요하다. 응답자의 55%는 AI 기록이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3명 중 1명(32%)은 ‘AI 생성 기록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응답한다. 특히 18~29세 41%, 30대 38%로 젊은 층이 AI 기술을 더 신뢰하지 않는다. 기술 활용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데이터 해석과 통제력에 더 민감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AI 자동 기록에 대한 생각 그래픽=강준구 기자

AI 자동 기록에 대한 생각 그래픽=강준구 기자


개인정보 관련 우려는 더욱 크다. 65%가 AI 자동 기록 기술의 개인정보 보호에 우려를 나타냈고, 연령대가 낮을수록 더 우려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삶을 기록하는 사람의 78%가 기록 수단 선택 시 개인정보 보호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불신은 향후 AI 기술 수용에 주요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AI 자동 기록은 개인정보 보호에 한계 있을 것 그래픽=강준구 기자

AI 자동 기록은 개인정보 보호에 한계 있을 것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 방식 선택 시 개인정보 보호 고려하나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 방식 선택 시 개인정보 보호 고려하나 그래픽=강준구 기자


기록은 이제 손으로 쓰는 글에 그치지 않는다. 점점 자동화되고 있다. 다만 사용자에게 충분한 신뢰와 통제권이 보장돼야 한다. 앞으로 기술은 다양한 기록 방식을 포용하고, 그 가치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진현준 한국리서치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