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통관] 설난영 여사(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배우자) 인터뷰
설난영 여사(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배우자)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청렴하고 깨끗한 사람. 앞뒤가 다르지 않고 처음과 끝이 똑같은 사람. 제 남편 김문수는 그런 사람입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2일 오후. 자택이 위치한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을 만난 설난영 여사는 남편인 김문수 예비후보를 한 줄 평으로 표현해달란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김 후보의 30년 정치 인생 속 늘 곁에서 함께해 온 설 씨는 뜻하지 않게 다가왔던 남편의 대선 도전이 처음엔 달갑지 않았다고 밝혔다. 설 씨는 "이제는 남편이 정치 생활을 마감한 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보통 사람처럼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며 "손주들과의 일상적인 삶도 즐기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 후보)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남편이 가진 여러 경험이 위기의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힘이 될 수 있다면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열심히 내조하고 있다"며 "김문수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문제이며 애국심의 발로"라고 김 후보의 대권 도전 지원 배경을 전했다.
설 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 속 김 후보의 지지율이 보수 진영에서 1위를 유지한 것에 대해 "나라와 보수에 대한 염려 속에 남편이 꼿꼿한 자세를 보인 것이 신뢰를 주지 않았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김문수라는 사람을 아는 유권자들은 남편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있다. 국회의원을 3번하고 도지사를 8년 하면서 시민들께 준 믿음이 바탕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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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동지서 평생 동반자로…경상도 남자의 투박한 청혼 "갈 데 없으면 나한테 시집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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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에 나서는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 배우자 설난영 여사의 모습. 박용수 작가 사진 /사진제공=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1970년대 말 20대 중반이었던 설 씨는 대학 진학 대신 전남 순천에서 상경해 서울 구로공단에 있던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을 지내고 있었다. 설 씨는 당시 금속노조 남서울지부 여성부장으로 활동하던 중 나이가 지긋한 노조위원장들 사이에서 젊은 김문수를 처음 만났다고 회상했다.
설 씨는 남편의 첫인상이 아주 촌스러웠지만 맑고 순수해 보였다고 했다. 설 씨는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이던 남편의 첫 모습은 경북 영천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 같았다"면서도 "파란 작업복이 참 어울렸고 순수하고 착해 보였다. 겉모습은 꾸미지도 않고 소박했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은 깨끗하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노동운동 동지일 뿐이었던 두 사람, 관계의 변화는 김 후보의 서툰 고백에서부터 시작됐다. 설 씨는 "노조 회의를 마치고 사업장으로 돌아가는 저녁쯤이었다. 갑자기 (김 후보가) '차 한잔하자'고 말하며 찻집으로 데려갔다"며 "갑자기 '갈 데 없으면 나한테 시집오는 게 어떠냐'고 말하더라. 그땐 그 말이 참 멋대가리도 없고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열악했던 노동 환경 개선을 평생 목표로 삼았던 설 씨는 고백을 거절했지만 김 후보의 구애는 계속됐다. 설 씨는 "그때 전 저로 인해 여성 노동자들의 근로 및 생활 환경이 나아진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느끼면서 (노동운동을) 평생 신념으로 설정했다"며 "'결혼 안 한다'고 했지만 이후 두세 번 더 결혼하자고 이야기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전두환 신군부 시절) 저와 남편 모두 해고당한 다음 결혼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제가 '2시간 정도 기분 내게 만나자'하니 남편이 '2시간이 문제냐 200시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1981년 서울 봉천동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와 설난영 여사의 모습./사진=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캠프 제공 |
설 씨 부친으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는 데엔 김 후보의 포부가 큰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설 씨는 "부친이 '(김 후보) 자네가 우리 난영이 뭘 먹여서 살리겠냐?' 하니, 남편이 '제가 만인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이다. 제가 여자 하나를 못 먹여 살리겠습니까'라고 큰소리쳤다"며 "그러니 부친이 할 말이 없어지고 결혼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른바 '스몰웨딩'의 시초였다. 1981년 9월26일 서울 봉천동 사거리 봉천중앙교회 교육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설 씨는 웨딩드레스 대신 원피스를 입고 김 후보와 손을 잡고 동시에 입장하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설 씨는 "어려운 분들을 위해 서로 사랑한다면 평상복을 입고도 결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남편과 손잡고 함께 입장한 것도 남녀평등을 위해서였고 주례도 갖지 않았다"며 "뜻하는 바가 중요하지,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최종 2인 경선 토론에서 김 후보가 아내와 결혼한 것을 '별의 순간'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설 씨는 "진심인지 알고 싶다"고 농담하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설 씨는 "남편이 어떻게 보면 직설적이고 미사여구로 포장할 줄도 모른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변함 없고 오염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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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은 손길 미치지 않는 곳 돌봐야…남편 이름 석 자에 조금의 흠결도 가게 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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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난영 여사(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배우자)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김 후보의 30년 정치 인생 동반자인 설 씨는 영부인에 대해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찾아 돌보는 존재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설 씨는 "남편은 깨끗하게 정치한 사람이다. 저로 인해 남편 이름 석 자에 조금이라도 흠결이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제가 각오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국회의원을 했을 땐 지역민들을 위해 일하고 경기도지사 시절엔 도민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설 씨는 "(김 후보가) 경기도지사였을 때 하루에 두 번은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시군 장애인시설과 독거노인 시설 등 현장을 찾아 애로사항을 듣고 경기도청과 소통을 중개했다. 하나의 민원 창구로서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규모였지만 저도 지속적인 활동과 역할을 해왔다"며 "저도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기회만 주어진다면 영부인으로서 품위와 품격을 채우며 잘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또 설 씨는 "호남의 절절한 한과 아픔을 알고 있다"며 "영부인이 되면 동서 화합과 좌우 대립을 해소하는 데에도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도 했다.
설난영 여사(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배우자)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설 씨는 남편 김문수에 대해 분리수거와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도맡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설 씨는 "대선 후보로 있으면서도 집에 들어오면 저녁에 분리수거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다 버린다.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것도 늘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민원을 들어 머리 아플 때도 남편은 항상 '내게 와서 이야기하라. 말하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냐'며 고민을 많이 풀어주고 개운하게 만들어줬다"고 했다.
설 씨는 김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하는 이유로 '낮은 곳에서 누구보다도 보통 사람들의 삶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들었다. 설 씨는 "김 후보는 지금까지 국회의원과 도지사를 하며 큰 수입 없이 보통 사람의 삶을 살아왔다"며 "정치면 정치, 행정이면 행정 등 어려운 분들의 삶을 가장 잘 알고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은 김문수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 부부의 재산은 설 씨 명의의 서울 관악구 봉천동 24평 아파트 한 채(4억8000만원)와 5억4000만원의 예금이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설 씨는 "대선을 늦게 출발한 남편이지만, 이미 30년 정치를 통해 체화된 경험이 있다"며 "지역구 국회의원과 도지사를 하는 동안 지지해주신 분들은 한 번도 김문수 지지를 후회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박상곤 기자 gonee@mt.co.kr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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