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끝>-괌 마라톤] "You are not alone" 협력과 공존, 상생의 가치를 일깨우다

[코코로드레이스] 달리기를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슴 뭉클해지는 서로의 '응원'

일반 마라톤 대회에선 보기 드문 '어린이 마라톤'. '코코 키즈 펀 런'이라는 이름의 이 마라톤은 만 4세부터 12세까지 세 그룹으로 나눠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진행된다. /괌=김고금평 기자

괌 마라톤 대회 '코코 로드 레이스'는 코코새 멸종 위기를 막자는 취지로 지난 2006년 처음 시작됐다. 한 마디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과 상생을 모색하자는 게 골자다.

지난 4월 10일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이 같은 철학은 계속 이어졌다. 게리 페레즈 조직운영회 부회장은 이날 "우리 괌 마라톤은 3가지 특징이 있는데, △뛰어난 아이디어 △로컬 사회 생태계 조성 △다른 마라톤과의 차별화가 그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차별화는 지역이나 세계인들과의 연결과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코새 보호를 통한 동물과의 연대는 마라톤으로 조성된 기금의 사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직위는 미국 샌디에에고에 있는 동물원의 일부 어린 코코새를 다시 데려와 되살리는 방안을 적극 실천한다.

코코새로 시작된 공존과 협력은 마라톤 대회를 통해 더 확장되고 강조된다. 일반적으로 '마라톤'은 성인 위주로 구성되지만, 괌 마라톤은 철저하게 모든 세대에게 기회의 장을 열고 연대, 협력, 공존, 상생 같은 '함께하는' 실천 윤리에 집중한다.

12일 '코코 키즈 펀 런' 경기 중 만 10~12세 어린이들이 출발선에서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괌=김고금평 기자

12일 열린 '코코 키즈 펀 런'(오전 7시)은 대표적인 어린이 마라톤이다. 성인 중심 마라톤이 표준인 '달리기 시장'에서 어린이 마라톤을, 그것도 연령별로 세부적으로 나눠 코스를 구성하는 일은 드문 사례다. 코스는 0.6km(만 4세~만 6세), 1.6km(만 7세~만 9세), 3.3km(만 10세~만 12세)로 이뤄졌는데 이른 아침부터 가족이 모두 나와 응원하는 모습 자체가 진풍경이다.

특히 어린이 마라톤은 경기 전 메인 무대 앞에서 스트레칭 코치들과 함께 '사전 몸풀기 운동'을 해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과 부상 방지를 위한 과정인데, 신나는 리듬의 음악과 함께 춤을 추듯 몸을 풀기 때문에 긴장도 낮출 수 있고 워밍업에 최적화한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올해는 특히 4인 1조로 구성된 에키덴 마라톤이 추가됐다. 이 역시 '단합'과 '협력', '상생'의 공동체 가치를 제고하는 가치의 일환이다. 한 사람씩 5km씩 달리는 총 20km 거리로 어린이부터 성인, 가족과 팀 구성 등 어떤 조합도 가능한 총천연색 마라톤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한 코스다.

성인 하프마라톤이 열린 13일 오전 5시. 하이라이트 무대답게 이른 새벽인데도, 출발 전부터 많은 이들이 함께 자리를 지켰다. '홀로 뛰는 외로운 싸움'이라는 선입견을 철저히 부수는 풍경이었다. 선수는 선수대로, 대회 관계자들은 그들대로, 현지인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 일반 현지인들 모두 제 일인 양 거리로 몰려들었다.

'코코 키즈 펀 런' 경기에 앞서 참가 어린이들이 스트레칭 코치들의 안무와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풀고 있다. /괌=김고금평 기자

홀로 외롭게 고군분투할 것이라는 염려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거리를 촘촘히 메우듯, 열렬히 응원하고 환호하는 현지인들 덕분에 젖 먹던 힘까지 토해낼 수 있었고,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혹시 흘릴까 조심스러워하며 양손으로 물컵을 떠받들며 선수를 기다리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선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 물컵을 손수 골라 마셨지만, 이곳에서는 현지인들이 일일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주는 물을 마시니 그 경험이 무척 새롭고 특별했다. 그들 모두 선수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고 포'(Go for)를 외쳤고, 어떤 이들은 "유 아 낫 얼론"(You are not alone)하며 동행과 공생의 의미를 일깨웠다.

마라톤 코스 내내 몇 km인지 안내하는 표지판도 없고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도 없었지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심장의 온도'는 기대 이상으로 뜨겁고 훈훈했다.

그들의 힘찬 응원과 함성 덕분인지 참가자들도 호응했다. 힘든 표정을 지으면서도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고 박수로 화답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기자도 뛰면서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보냈다. 체력이 더 빨리 소진될수록 오르막의 끝이 보이지 않을수록 '갤러리'들의 호응이 그리웠고, 그들 호응에 화답하듯 자신의 의지를 채근하듯 더 크게 소리내고 박수를 보냈다.

마라톤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가족 등 누군가의 응원과 환호가 필요한 '상생'과 '공존'의 장이다. /괌=김고금평 기자

그 순간만큼은 어떤 무엇도 채울 수 없는 뜨거운 감동이 폐부 끝에서부터 차올랐다. 뛰지 않았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그 쾌감의 절정 속에 들어가고 나서야 왜 달려야 하는지, 왜 달리고 싶은지 또 다른 이유와 만날 수 있었다.

달리기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누군가의 응원과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이번 대회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무엇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는 세상에서 가장 눈시울을 적시는 따뜻한 위로 한마디에 모든 역경과 고통이 절로 치유될 것만 같았다.

괌=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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