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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퇴장, 적절한 은퇴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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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퇴장, 적절한 은퇴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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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에도 적절한 타이밍 있어
떠나야 할 사람의 미련과 고집
괜한 욕심 버리고 결단할 때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달 29일 제21대 대통령 후보자 국민의힘 3차 경선 진출자 발표 행사에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달 29일 제21대 대통령 후보자 국민의힘 3차 경선 진출자 발표 행사에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정계를 은퇴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자 대권의 꿈과 30년 정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대선에서 제 역할은 여기까지" "더 이상 정치 안 하겠다" 은퇴의 변은 그렇게 담담했지만, 눈물은 그렁그렁했다.

그의 눈물을 보며 은퇴 선언이 특권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지만, 은퇴 선언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몇몇 스포츠·연예계 스타와 정계 인사의 은퇴 선언 뒤로는 조용히 사라져가는 동료가 부지기수다. 오늘이 마지막이란 사실조차 모른 채, 전화 한 통과 통보 한마디에 홀연히 사라진다. 애처롭긴 하지만,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게 또한 우리 삶이다. 홍 전 시장을 포함, 그들은 '복 받은 인생'이란 뜻이다.

은퇴에 미련이 남는 건, 또 다른 세상 이치기도 하다. 66년간 노래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마지막 무대에서 '은퇴'를 입에 담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청춘을 바치고, 몸과 마음을 전력으로 쏟아 넣은 곳일수록 미련의 강도는 강하다. 특히 박수칠 때 떠난다? 모두가 배구선수 김연경이나 야구선수 이승엽 같을 순 없다. 그래서 은퇴를 선언하는 이들의 눈물은 대부분이 미련의 결정체다. '할 만큼 했다'는 말이, '더 할 게 없다' 혹은 '더 이상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들에게 전하는 원망으로 들릴 때도 많다.

그 때문인지 은퇴를 미루며 '생존'을 강구하는 이들을 매몰차게 대할 수만은 없다. 강속구로 야구판을 지배하던 투수가 변화구를 던지는 기교파 투수로 변신하는 모습을 '퇴물의 발버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는 만큼은 더 해 봐야 한다"거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더 해 보겠다"며 변방에서 재기를 꿈꾸는 이들을 '찌질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쉽게 내뱉는 동정은 간혹 누군가에겐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자신의 능력과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세상의 시류도 읽지 못하고, 제때를 판단하지도 못하는 아둔한 무리다. 모든 '나이스샷'이 정확한 타이밍에서 나오듯,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물러날 때를 알고, 때가 왔을 때 미련 없이 결단을 내리는 현명함. 그게 '은퇴의 타이밍'이다. 늦으면 추하고, 이르면 애처롭다. 특히 늦은 결단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박수, 이전의 잘못에 대한 만회와 참회의 기회를 영영 놓칠 수밖에 없다.

최근 내란 수괴와 직권 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는 우리 직전 대통령은 파면 직후 집 앞 지지자들의 환호에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자리를 대신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며 사실상 대선 출마의 길을 나섰다. "국가를 위해 최선이라고 믿는 길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마지막까지 가겠다"는 선언과 함께.


윤동주 시인이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며 '참회록'을 노래했던 때가 겨우 24세였다고 한다. 물론 회갑과 칠순을 훌쩍 넘어선 이들이 20대 청춘과 같을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염치와 양심을 되새기고, 자신이 망친 보수의 생존을, 상처 입은 이 나라의 회복을, 조용히 뒤에서 지켜볼 수는 없을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욕심은 버리고, 나름 당당하게.

남상욱 엑설런스랩장 thot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