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광주광역시 서구 5·18기념재단에서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들이 허위사실을 유포한 극우매체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
“어머니는 두번 돌아가셨다. 1980년 5월21일 전남대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한번 돌아가셨고 국방부 부검 때 두번째 돌아가셨다. 임신 8개월 제 동생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왜곡 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세번 네번 다섯번 돌아가신다. 이번 기회에 왜곡세력을 제대로 처벌해 저희 유족들이 더는 아픔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임신 8개월 희생자로서 5·18 비극의 상징적 인물인 고 최미애씨의 아들 김아무개씨는 1일 5·18기념재단이 마련한 기자회견에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언론 노출을 꺼렸던 최씨의 아들은 최근 극우매체의 5·18왜곡이 이어지자 용기를 내 고소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와 또다른 5·18희생자 고 조사천씨의 아내 정동순씨와 5·18기념재단은 이날 광주경찰청에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을 위반(허위사실유포 금지)하고 사자명예훼손죄(형법 제308조)를 저질렀다며 스카이데일리 법인, 허아무개 기자, 조아무개 발행·편집인을 고소했다. 광주광역시도 고발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피고소인들은 2월15일 광주 금남로에서 보수단체가 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현장에 5·18민주화운동을 ‘북한이 파견한 특수부대에 의해 일부 광주 시민들이 범한 폭동’이었다는 내용이 담긴 ‘특별판’ 신문을 배포한 혐의다. 해당 신문에는 ‘조사천씨와 최미애씨가 1980년 5월21일 오후 각각 광주 동구 금남로와 북구 전남대 앞에서 북한이 파견한 민간 공작대(무장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 밝혀졌다’는 내용이 담겼다.
5·18기념재단은 허위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신문에서 조씨는 장갑차를 타고 달리던 시민군이 들었던 칼빈총을 맞았다고 나왔지만 실제 조씨는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M16 소총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된 뒤 사망했다. 지난해 6월 활동을 마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에서 장갑차에 타고 있다 사망한 시민은 김준동(당시 17살)씨로 밝혀졌다. 훗날 조씨의 영정을 든 5살 아들 사진은 ‘꼬마상주’라는 이름으로 국내외에 알려졌다.
최씨는 1980년 505보안대의 ‘사망자 검시조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 이미 계엄군에 의한 사망이라고 결론이 내려졌다.
조씨의 부인 정씨는 “우리 애기 아빠는 학생이 군인에게 두드려 맞는 모습을 보고 시위에 참여했다가 계엄군 총에 맞아 눈도 감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그동안 지만원, 전두환 등의 재판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왜곡 세력과 싸워왔지만 왜곡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제는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호소했다.
유경남 5·18기념재단 기록진실부 팀장과 고소 대리인 최기영 변호사(민변 광주전남지부 사무처장)는 “최씨의 사망 경위는 5·18 당시 신군부 정보기관마저도 계엄군에 의한 사망으로 확인한 사실이기 때문에 피고소인이 단순한 실수로 사망 경위를 혼동했다고 보기 어렵다. 유족들이 과거 증언 일부만 발췌해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며 “피고소인들은 꼬마상주 사진으로 알려진 조씨와 임신부 희생자 최씨를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아 허위사실을 의도적으로 유포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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