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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V’ 영유아·고령층에 치명적…호주선 임산부에 백신 접종 지원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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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V’ 영유아·고령층에 치명적…호주선 임산부에 백신 접종 지원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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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질병관리청 \'2025 세계예방접종 주간 기념 국제 심포지엄\' 당시 패널토론 모습. 왼쪽부터 박수은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감염학회 회장), 이동우 질병청 예방접종관리과장, 잉그리드 메이어 호주 보건부 국가예방접종 전략·운영과장,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 민태원 국민일보 부국장. 최지현 기자

지난달 24일 질병관리청 \'2025 세계예방접종 주간 기념 국제 심포지엄\' 당시 패널토론 모습. 왼쪽부터 박수은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감염학회 회장), 이동우 질병청 예방접종관리과장, 잉그리드 메이어 호주 보건부 국가예방접종 전략·운영과장,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 민태원 국민일보 부국장. 최지현 기자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뜻 RSV
영유아에게 치명적 폐렴 등 일으키지만
한국선 예방접종 비용 예비부모 부담
호주는 대상포진도 ‘필수접종’에 추가
“미래 보건 안보 위해 백신 국산화 시급”



최근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은 국내 임산부들에게 필수 예방접종처럼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 말 일부 지역 산후조리원에서 해당 감염병이 신생아들에게 크게 유행한 탓이다. 해당 질환은 건강한 성인에겐 독감 정도의 증상만 나타나지만, 영유아나 고령층 등 노약자에겐 치명적인 폐렴이나 기도 손상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에 일부 산후조리원에선 해당 예방접종을 입소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늘었다. 하지만 국내 성인 예방접종 지원책은 제한적인 탓에 1회 60만~90만원에 달하는 해당 예방접종 비용을 예비 부모들이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보건 당국은 올해 2월부터 임산부와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RSV 예방접종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호주 당국은 RSV가 2살 이하 영유아 중에서도 6개월 미만 영아에겐 매우 위험하다는 분석 아래 RSV 백신 2종을 국가필수예방접종 항목으로 도입한 상태다.



지난달 24일 질병관리청 \'2025 세계예방접종 주간 기념 국제 심포지엄\' 행사장 전경. 최지현 기자

지난달 24일 질병관리청 \'2025 세계예방접종 주간 기념 국제 심포지엄\' 행사장 전경. 최지현 기자


먼저, 임신 28주 이상 여성 전체가 일반 백신(백신명 ‘아브리스보’)을 무료로 접종할 수 있도록 국비를 지원한다. 이를 통해 신생아는 간접적으로 RSV 항체를 형성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해당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산모의 아이와 고위험군 아동 등에 대해선 우선적으로 항체 형성 효과가 높은 새로운 백신 기술(단일클론항체)의 예방접종(백신명 ‘니르세비맙’)도 지원해 직접적인 바이러스 보호 방안을 제공했다. 해당 비용은 연방정부와 지역정부가 함께 분담해 지원한다.



이를 통해 호주 보건당국은 매년 영유아 1만 명의 RSV 감염을 예방할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 이를 먼저 도입했던 호주 퀸즐랜드주 등 일부 지자체에서 뛰어난 감염 예방 효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2024년 4~6월 접종 시행 첫 2개월 동안 예방접종을 한 산모의 신생아에게선 RSV 감염 후 입원치료를 받은 환아가 없었다. 해당 기간 지역에서 RSV 감염으로 입원한 전체 신생아 수 역시 12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48명에서 크게 줄었는데, 이는 모두 산모가 해당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례였다. 남반구인 호주에선 호흡기 감염병이 크게 유행하는 동절기가 5~9월이다.



다만, 호주 정부 역시 해당 결정을 쉽게 내렸던 것은 아니다. 지난달 24일 질병관리청이 개최한 ‘2025 세계예방접종 주간 기념 국제 심포지엄’에 연사로 참석한 잉그리드 메이어 호주 보건부 국가예방접종 전략·운영과장은 “당시 굉장히 많은 도전 과제에 직면했다”며 이 결정에 관여했던 경험을 공유했다. 우선 백신 지원을 위한 재정 분담 문제였다. 호주에서도 정책 논의 과정에서 중앙정부가 국비 전액을 부담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그는 “결국 정부 차원에서 백신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주정부 등 여러 기관이 중앙정부와 함께 노력해 백신 제공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아울러 단일클론항체와 같은 새로운 종류와 개념의 백신 기술에 대한 수용 여부도 큰 문제가 됐다. 기존 국가보건법과 관련 예방접종 제도에선 이들 기술을 예방접종으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선 위원회를 수립하고 향후 백신 신기술을 국가 법체계에 도입하는 등으로 관련 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메이어 과장은 “국가예방접종 프로그램을 현대화하고 최신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선 단순히 백신 항목과 제품을 도입·제공하는 일뿐 아니라 (새로운 백신이) 필요할 때 필요한 시스템(법과 제도)을 갖출 수 있도록 유연하게 개선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러한 정책적 유연성이 ‘그 누구도 질병 위험에서 소외당하게 하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라는 호주 보건당국의 예방접종 정책 기조에 근거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백신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과 국민의 건강 형평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 보건당국은 또 이에 앞서 2023년 대상포진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 항목에 전격 추가하기도 했다. 최근 대상포진은 전세계적으로 발병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대체로 50살 이상에서 특히 발병률이 높고 국내에선 60~79살 고령층에서 발병률이 급증하고 있다. 감염 환자의 87%가 신경통 등 유의미한 통증을 경험하며 안과 및 심뇌혈관계 합병증 위험은 물론 재발 위험도 높아 질병 고통과 부담이 크다.



이런 탓에 영국,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 제한적으로 접종 대상이나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호주 당국은 사실상 감염 보호가 필요한 전체 성인에 대해 무료접종을 결정했다. 노년층뿐 아니라 18살 이상 고위험군까지 대상에 포함했으며, 백신 품목 역시 비용 부담(약 48만원)이 더 크나 안전성과 예방 효과, 감염 보호 기간(10년)에서 보다 뛰어난 사백신(싱그리스 등)을 채택했다. 약 500만 명에 대해 7천억원가량의 재정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호주의 사례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예방접종의 중요성이 사회 보건 영역의 감염병 방역을 넘어 ‘질병 예방을 통한 개인의 건강권 확대 차원’으로까지 커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영유아와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필수예방접종(무료접종) 정책을 시행 중인 국내에서도 일반 성인의 예방접종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가 매년 4월 마지막 주로 지정한 ‘세계 예방접종 주간’을 맞아 질병청은 지난달 23~24일 양일간 심포지엄을 열고 국가 예방접종 전략과 확대 방안 및 국산 백신 개발 동향 등을 점검했다. 특히 미래 보건 안보를 위해 주요 백신 항목의 국산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질병청은 4년간 5052억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시(GC)녹십자와 엘지(LG)화학, 에스케이(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 고용량 독감 3가 백신, 6가 백신(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B형 간염, 소아마비,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일본뇌염 및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플랫폼 등을 각각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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