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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쇼 동물원' 갈 뻔한 침팬지 남매···서울대공원서 살기 위한 힘겨운 훈련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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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 관순이 남매 언론 첫 공개
행동풍부화에 이어 “다른 무리와 합사 진행 중” 근황


21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유인원관 사육장에 침팬지 광복이(오른쪽)와 관순이가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강예진 기자

21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유인원관 사육장에 침팬지 광복이(오른쪽)와 관순이가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강예진 기자




이달 21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유인원관 실내 사육장 한쪽에 침팬지 두 마리가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다른 침팬지 무리 네 마리와 별도로 분리돼 살고 있는 이들은 대공원이 2022년 쇼를 하는 인도네시아 동물원으로 보내려다 취소해 한국에 남은 '광복이'(수컷·16세)와 '관순이'(암컷·14세) 남매다.

대공원은 침팬지 반출 계획의 국제 인증 위반 가능성을 제기한 본보(2022년 3월 15일) 보도 이후 민원이 빗발치고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는 등 거센 비난 여론에 직면하면서 그해 8월 반출을 철회했다.

비전시공간에만 머물던 광복이, 관순이는 지난해 7월부터 관람객에게 공개되고 있다. 유인원관 담당 김동선 사육사를 만나 이들의 근황을 들었다. 침팬지 남매가 언론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육사가 기른 침팬지 남매, 합사 위한 사회성 훈련



21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침팬지 광복이가 우우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관람객의 시선을 느낀 광복이의 과시행동이라는 게 동물원 측의 설명이다. 강예진 기자

21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침팬지 광복이가 우우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관람객의 시선을 느낀 광복이의 과시행동이라는 게 동물원 측의 설명이다. 강예진 기자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가 관람객들을 향해 과시행동을 하고 있다. 고은경 기자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가 관람객들을 향해 과시행동을 하고 있다. 고은경 기자

"이제 유리창을 두드릴 거예요." 움직임이 크지 않던 관순이와 달리 광복이는 다소 거칠어 보였다. 사육장 한쪽 끝에서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우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어 해먹을 마구 흔들고 유리창으로 달려 들더니 "쾅쾅 쾅쾅" 쳐댔다. 광복이의 이 같은 행동은 세 번 정도 반복되고서야 멈췄다. 관람객이 놀랄 수도 있기 때문에 유리에는 '침팬지 내실 간 이동과 관람객 시선 적응훈련 중으로, 흥분해 유리창을 두드릴 수도 있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김 사육사는 "광복이는 인공포육으로 자란 뒤 사회성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며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된 것도 처음이라 격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일종의 과시행동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광복이와 관순이는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엄마 침팬지가 돌보지 않아 사육사들에 의해 길러졌다.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와 관순이가 사육장 밖을 내다보고 있다. 유리에는 침팬지가 관람객 시선 적응 훈련 중이며 유리창을 두드릴 수 있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고은경 기자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와 관순이가 사육장 밖을 내다보고 있다. 유리에는 침팬지가 관람객 시선 적응 훈련 중이며 유리창을 두드릴 수 있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고은경 기자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침팬지 사육장 앞에서 김동선 유인원 사육사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침팬지 사육장 앞에서 김동선 유인원 사육사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대공원은 광복이와 관순이를 다른 침팬지 무리와 합사할 예정이다. 합사를 하게 되면 야외방사장에 있는 침팬지타워 이용 등을 포함해 지금보다 넓은 공간을 제공하고, 사회적으로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침팬지의 습성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현재 다른 침팬지들이 지내는 실내외 사육장은 관람객에게 공개돼 있어 관람객의 시선에 적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관순이와 다른 무리의 리더인 '용용이'(수컷·29세)와의 얼굴 익히기도 진행되고 있다. 김 사육사는 "암컷은 다른 무리로 이동할 때 우두머리 수컷이 받아주는 경우가 있지만 수컷(성체 기준)은 경쟁상대로 받아들여 어렵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이를 감안해 관순이와 용용이부터 먼저 얼굴 익히기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공원 침팬지 무리가 야외 방사장 침팬지 타워에 올라가 있는 모습. 광복이와 관순이는 이 무리와 합사를 시도할 예정이다. 강예진 기자

서울대공원 침팬지 무리가 야외 방사장 침팬지 타워에 올라가 있는 모습. 광복이와 관순이는 이 무리와 합사를 시도할 예정이다. 강예진 기자


침팬지 합사는 대공원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사육사들은 자료 조사부터 시작해야 했다. 또 미국의 동물원뿐 아니라 일본의 하리카와 동물원 원장과 다마동물원의 사육사로부터 조언을 들으며 단계별로 진행하고 있다는 게 대공원 측의 설명이다. 김 사육사는 "유인원은 지능이 매우 높고 손과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기 때문에 각 개체의 특성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진행해 가겠다"고 전했다.

광복이와 관순이는 2019년 5월 반출이 결정된 후 긍정적 강화 훈련 대상(사람이 원하는 행동을 좋은 경험을 통해 동물 스스로 할 수 있게끔 교육하는 방식)에서도 제외하는 등 방치돼 왔다. 하지만 지금은 행동풍부화(제한된 공간에 있는 동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에 이어 기존 무리와의 합사까지 시도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는 개체의 성격이나 과거의 경험에 따라 사육사, 관람객과의 상호작용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며 "하지만 여전히 이들은 갇혀 있는 동물이며 주체적으로 환경을 만들어갈 수 없는 존재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가 손가락을 이용해 먹이를 꺼내먹고 있다. 강예진 기자

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가 손가락을 이용해 먹이를 꺼내먹고 있다. 강예진 기자


서울대공원 유인원 사육장에서 침팬지 광복이가 음식을 먹고 있다. 광복이가 사과까지 꺼내먹는 데는 30분가량 걸렸다. 강예진 기자

서울대공원 유인원 사육장에서 침팬지 광복이가 음식을 먹고 있다. 광복이가 사과까지 꺼내먹는 데는 30분가량 걸렸다. 강예진 기자


광복이와 관순이에 대한 대공원 측의 입장에도 변화가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민들의 민원 답변에 "적합한 반출지를 고민하겠다"고 한 반면 올해는 "사실상 반출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판단된다"며 입장을 바꿨다. 김세곤 서울대공원 동물기획과장은 "적절한 곳 찾기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지만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국내에서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원, 유인원 사육에 대한 근본적 고민 필요



광복이와 관순이가 먹이를 탐색하고 퍼즐을 갖고 놀고 있다. 대공원은 이들의 성향에 맞춰 행동풍부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제공

광복이와 관순이가 먹이를 탐색하고 퍼즐을 갖고 놀고 있다. 대공원은 이들의 성향에 맞춰 행동풍부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제공


광복이와 관순이의 반출 철회는 무분별한 동물 거래 관행에도 경종을 울렸다. 대공원은 중개업자를 끼는 동물거래 방식이 아닌 대공원이 직접 반출지를 찾는 내용을 담은 동물 반입∙반출 가이드라인(본보 2022년 4월 26일 보도)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대공원 측은 가이드라인 제작 이후 중개업체를 통한 동물 거래는 없었다고 전했다.


광복이와 관순이 반출 철회 집회를 주도했던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는 "반출 철회는 한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동물을 자원으로만 보던 동물원이 생명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됐다"며 "앞으로도 광복이의 중성화 수술, 교대 방사 등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대 방사는 합사가 안 된 두 무리를 교대해서 방사장에 내보내는 것이다.

침팬지 관순이가 당근을 먹고 있다. 강예진 기자

침팬지 관순이가 당근을 먹고 있다. 강예진 기자


침팬지 광복이가 먹이를 먹고 있다. 강예진 기자

침팬지 광복이가 먹이를 먹고 있다. 강예진 기자


나아가 앞으로 수족관에서 고래류를 기를 수 없게 된 것처럼 동물원에서 유인원을 사육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동물원에서 대형 유인원의 행동적, 사회적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키기 어려운 점은 분명하다"며 "남은 침팬지에 대해 최대한 사육환경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유인원을 계속 보유, 전시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천 교수도 "이번 침팬지 합사에 대한 노력이 그동안 인간이 동물에 대한 몰이해로 저질렀던 많은 실수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교수는 "특히 영장류를 위락을 목적으로 가두고 번식시키는 일은 동물의 좌절과 고립을 불러올 수 있다"며 "그 책임이 잠깐 어린 동물을 관람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심에 있었음을 다시 생각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