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상아탑서 줄줄 새는 기술(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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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현대차·GM 탐내는 전기차 핵심 기술…베트남 대학원생이 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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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인천국제공항 주차장 전기차 충전소에 주차된 차량이 충전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연관 없음. /사진=뉴스1. |
경찰이 서울 소재 A대학교에서 전기차 충전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된 사건을 적발했다. 기술 유출 피의자는 베트남 국적 20대 대학원생으로 드러났다. 유출된 기술은 전기차 충전 효율을 높이는 내용으로 현대차그룹, GM(제너럴모터스) 등 완성차 업체들과 양산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정부의 자금 지원도 이뤄진 첨단 기술이다.
30일 대학 등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베트남 국적 남성 B씨를 산업기술유출방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 2월 검찰에 송치했다. B씨는 A대학 산학협력관의 '전기차 충전 전력변환 기술' 도면 등 연구자료를 해외로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B씨가 유출한 연구자료는 전기차 충전 효율을 높여 장기적으로 배터리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효과가 기대되는 국내 개발 원천 기술이다. 해당 기술을 전기차에 적용하면 충전 전력변환 단계를 단순화해 관련 부품의 물리적 부피와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전력변환 단계가 줄면 적은 전력으로 배터리 충전이 가능하고, 배터리 안정성이 높아져 화재 위험도 줄어든다. 배터리 가격은 물론 전기차 생산 단가까지 낮출 수 있는 신기술로 평가된다.
B씨가 유출한 기술 개발에는 정부 자금도 투입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해당 기술을 R&D(연구개발) 과제로 선정해 8억원을 지원했다. 현대차그룹은 2023년부터 A대학과 전기차 충전 관련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해당 기술의 양산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GM은 기술 일부를 구매해 미국 특허 등록을 추진하고 양산 적합성을 검토 중이었다.
피의자 B씨는 베트남 하노이과학기술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2021년 8월 A대학 산학협력관 대학원생으로 입학했다. 해당 기술 연구진으로 참여한 B씨는 연구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2023년 6월 돌연 자퇴하고, 동료 연구원들과 연락을 끊었다. 이후 베트남을 거쳐 대만으로 넘어가 '대만의 카이스트' 격인 대만 국립과학기술대 연구원으로 입학했다. B씨는 대만에서 A대학 산학협력단에서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한 연구 작업도 진행했다.
경찰은 국가정보원과 긴밀히 공조해 B씨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B씨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신체와 노트북, 휴대전화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포렌식 과정을 거쳐 B씨가 기술 도면 등 연구자료를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해 유출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B씨는 해외 유명 기업 입사를 앞둔 상황이었다. 경찰은 B씨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B씨가 몸담았던 연구진 관계자는 "학생이 학교를 허락없이 그만두면서 비정상적으로 자료를 가지고 나간 것이 맞지만, 공론화할 정도의 사건은 아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는 A대학에도 기술유출 관련 입장을 요청했지만 입장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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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에 자리 잡고 기술 빼낸 중국 기업도…유출 통로 전락한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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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산업기술·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건수 및 대학·연구소 등에서 유출된 건수. /그래픽=윤선정. |
'산업기술의 산실'이라 불리던 대학이 기술 유출 취약지대로 전락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주요국에서도 대학에서 개발한 기술을 빼가려는 시도가 시도때도 없이 이뤄지고 있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에 따르면 2020~2024년 대학·연구소 등에서 발생한 기술 유출 사건은 총 10건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발생한 기술 유출 사건 105건 중 10% 정도가 대학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는 빙산의 일부라는 시각이 나온다. 해당 통계 자체가 실제 기술 유출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학 기술 유출은 대부분 교수 등 연구진의 양심에 의존해 적발되는 구조여서 암수 범죄(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범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기술이 유출되더라도 잡히지 않으면서 대학·연구소 개발 기술 유출 범죄는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다. 2017년 중국 측에 포섭된 카이스트 소속 교수 A씨가 자율주행차 관련 핵심 기술인 라이다(LIDAR) 연구자료를 중국 대학 연구원에 누설한 사실이 드러났다. 레이저 광선을 활용한 라이다는 자율주행차가 장애물을 인지하고 피하도록 하는 핵심 기술이다.
한국항공대 교수 B씨는 2017년 2월 풍력발전기 날개인 블레이드 시험 계획 관련 기술이 포함된 파일을 중국 업체에 넘긴 혐의로 2022년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B씨는 과거 자신이 근무하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책 연구소를 그만두면서 이 기술이 포함된 파일을 반출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중국 기업이 국내 대학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기술 유출을 시도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 에스볼트(Svolt·펑차오에너지)는 한국 법인 에스볼트코리아를 세워 고려대 안암캠퍼스 산학관에 입주했다. 에스볼트코리아는 삼성SDI, SK온 등 국내 대기업 연구원들에게 접근해 배터리 관련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받았다. 고려대 공식 홈페이지엔 아직도 채용 공고가 올라와있다.
고려대 관계자는 "올해 1월 에스볼트의 기술 유출 연관성과 관련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학교 명예를 실추시킨만큼 2월 바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며 "기술 유출 의도를 숨긴 채 들어오는 기업을 최대한 걸러낼 수 있도록 신뢰성 검토 등 추가 절차를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도 대학·연구소발 기술 유출 사건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2023년 일본 경시청은 산업기술종합연구소가 2018년부터 진행한 불소계 화합물 연구 내용을 중국 업체에 빼돌린 혐의로 연구소 소속 중국인 연구원을 체포했다. 2020년에는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중국인 유학생이 보스턴대 시스템 접근용 VPN(가상 사설망) 계정을 중국 국방과학기술대 교수 등에게 넘긴 사실이 적발됐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기술 보호 정책은 기술이 완성된 최종 단계에만 집중됐다"며 "이미 해외에선 기술이 성숙하기 전인 대학·연구소 단계에서부터 빼가려고 혈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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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산학관 내부엔 산학관에 입주한 회사 이름이 안내돼 있다. /사진=박상혁 기자. |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박진호 기자 zzin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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