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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재단사 "프란치스코는 값비싼 원단을 원치 않았어요"

연합뉴스 신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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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재단사 "프란치스코는 값비싼 원단을 원치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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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옷 짓는 86세 장인 "새 교황 옷, 세 벌 미리 준비"
교황의 재단사 라니에로 만치넬리[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교황의 재단사 라니에로 만치넬리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86세의 재단사 라니에로 만치넬리는 오늘도 분주하다.

그는 바티칸 시국에서 걸어서 9분 거리인 이탈리아 로마의 보르고 피오에 있는 자신의 소박한 공방에서 새 교황이 입게 될 흰색 수단(교황 예복)을 제작하고 있다. 그것도 무려 세 벌이나.

"50, 54, 58 사이즈로요. 누가 뽑힐지 모르니까요."

3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지 라레푸블리카에 따르면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지난 3명의 교황이 모두 만치넬리의 손에서 탄생한 예복을 입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새 교황을 위해 미리 옷을 준비하는 건 처음이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죠. 그래도 여전히 이 일이 즐겁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인연은 그가 추기경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치넬리는 라레푸블리카와 인터뷰에서 그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느 날 허리띠를 사러 오셨어요. 제가 가격을 말하자 '오, 당신 꽤 비싸게 받는군'이라며 웃으셨죠. 결국 사시긴 했어요. 그분께 드린 또 다른 물건은 십자가였는데, 교황님이 마지막까지 착용하셨죠."

프란치스코 교황은 검소하고 소박한 스타일로 유명했다. 실제로 그는 비싼 원단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볍고 구김 잘 안 가는 천이면 돼요"라고 말하곤 했다고 만치넬리는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호한 원단은 얇은 모직과 테리탈(합성섬유)의 혼방으로 m당 50유로(약 8만원) 정도였다. 만치넬리는 "베네딕토 16세가 좋아하던 천은 그 두 배 가격이었다"고 귀띔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교황에 선출된 뒤 교황의 전통적인 복장인 진홍색 모제타(어깨 망토)를 거절했다. "너무 화려하다"며 흰색 수단 하나만 걸친 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강복의 발코니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엔 만일을 대비해 모제타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만치넬리는 "새 교황이 전통적인 스타일을 원할 수 있잖아요"라며 웃었다.

이제 교황복을 지을 줄 아는 장인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만치넬리는 로마 중심가의 작은 가게에서, 60년 넘은 재봉틀을 돌리며 오늘도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새 교황님이 어떤 분이 되든, 그분도 프란치스코처럼 소박했으면 좋겠어요."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는 5월 7일 시스티나 성당에서 시작된다. 만 80세 미만 추기경 중 3분의 2 이상 지지를 받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매일 투표가 이어진다.

교황으로 선출된 이는 시스티나 성당 한쪽에 자리한 '눈물의 방'으로 이동해 미리 준비된 대·중·소 사이즈의 흰색 수단 중 한 벌을 입고 파올리나 경당에서 짧은 기도를 드린다. 이후 선임 부제급 추기경이 새 교황 탄생 소식과 이름을 공식 발표한다.

뒤이어 새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내려다보는 강복의 발코니에 흰색 수단을 입고 등장해 전 세계 신자들에게 첫인사를 전하게 된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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