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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나희덕 시집 ‘시와 물질’, 허태임 산문집 ‘숲을 읽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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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지난해 12월3일 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 파면 선고에 이르는 4개월의 시간을 생각해 본다. 그 시기 동안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는 파면된 전임 대통령을 위시해 일부 검찰, 법관, 각료 등 한국 사회의 권력 엘리트들이 보여준 몰상식적이며 지나친 자기중심적 행동, 인간의 품격과 정의를 도외시하는 행태를 지켜보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환멸을 느꼈다. 정녕 인간이란 이런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라는 물음이 수시로 출몰했다.
하지만 동시에 계엄 선포 이후 지금에 이르는 시간은 불의에 저항하는 인간의 고귀한 용기와 이타적 존재로서의 아름다움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격변의 과정은 내게 인간의 고유한 본질과 정념, 욕망에 대한 사유로 이끌었다. 이런 마음이 진화생물학이나 뇌과학, 사회심리학에 관한 책을 찾게 만들었을 테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은 자연스럽게 비인간과 인간의 차이와 공통점에 관한 탐구로 연결된다. 나희덕 시집 ‘시와 물질’과 허태임 산문집 ‘숲을 읽는 사람’은 그 행로의 문학적 이정표였다.
나희덕은 이 시집에서 여러 동식물, 석유와 창문, 파편과 세포 등 다양한 물질을 다룬다. 시인에 의하면 “사람은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무기질인 동시에 멈추고 듣고 느끼는 유기체”다. 즉 인간도 “살아 숨쉬는 물질”이다. 시집에 등장하는 온갖 물질이나 비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한 탐구는 ‘멸치들’이라는 시편에 나오는 “우리가 멸치들과 그리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걸 그때는 잘 몰랐어요”라는 시구에서 보다시피 인간의 속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조지 오웰의 장미’라는 시에서 시인의 문제의식은 이 시대 정치를 둘러싼 인간의 행태와 접맥되면서 한층 명료하게 표출된다. 리베카 솔닛의 책 ‘오웰의 장미’의 독서에서 발원한 시구절은 이렇다. “그는 또한 알고 있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오소리나 왜가리의 습성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정치와 정원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정치의 동물성과 정원의 식물성을” 시인은 이 대목을 통해 이즈음 정치인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동물적 습성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정치의 동물성과 또렷이 구별되는 정원의 식물성에 대해 주목한다.
나희덕 시인의 정치와 정원의 차이에 대한 통찰은 허태임 산문집 ‘숲을 읽는 사람’에서 펼쳐진 식물에 관한 깊은 애정과 통한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에서 근무하는 저자의 일상은 국토 곳곳에 서식하는 다양한 식물을 탐사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다. 책에는 너도밤나무, 찔레꽃, 귀룽나무 등 다양한 식물과 만난 에피소드와 그로 인해 촉발한 사유의 풍경이 정갈하고 단아한 문장을 통해 펼쳐진다. 허태임은 “인간은 결코 흉내 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다 안다는 듯이 찔레꽃은 청초하고 수수하고 강인하고 순정하다”고 적었다.
인간의 정념이 적나라하게 충돌하는 정치의 동물적 속성은 일면 필연적이다. 곧 있을 대선은 인간의 비루함과 찬란한 가능성, 인간의 야수적 습성과 품격을 한층 극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정치적 냉소주의, 맹목적 독선과 거리를 둬야 한다.
물질과 식물의 시선으로 보면 정치를 둘러싼 인간의 본질이 한층 명료하게 드러난다. 나희덕 시집 ‘시와 물질’, 허태임 산문집 ‘숲을 읽는 사람’은 이 시대 정치와 인간의 행태를 아프게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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