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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유령포로’ 취재하던 기자, 장기 적출된 채 시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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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워싱턴포스트·포비든스토리즈 등 보도
전사자 시신 중 “이름미상”…기자와 DNA 일치
뇌 등 장기 적출, 발엔 전기고문 흔적, 목뿔뼈 골절
비공개 억류 민간인 ‘유령포로’ 취재 중 러에 구금돼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러시아 점령지에서 이른바 ‘유령 포로’에 대해 잠입 취재하던 중 숨진 우크라이나 기자 빅토리야 로시나(27)의 시신이 장기가 적출되는 등 훼손된 채 본국에 돌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그의 죽음이 러시아의 전쟁 범죄와 관련됐다고 판단해 수사에 착수했다. 로시나의 죽음과 그가 생전 취재하던 내용은 미국의 일간 워싱턴포스트, 영국 가디언, 우크라이나의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 등의 합동 탐사보도로 29일(현지시간) 공개됐다.

고 빅토리야 로시나(27)가 2022년 10월 1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법원 청문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로이터 통신)

고 빅토리야 로시나(27)가 2022년 10월 1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법원 청문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로이터 통신)


우크라 검찰 “시신 99% 이상 로시나와 일치”

이날 워싱턴포스트 등 보도에 따르면 로시나 기자의 시신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송환받은 전사자 시신 757구에 포함돼 있었다. 인식표에는 “이름 미상, 남성, 관상동맥에 심한 손상”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당국이 신원을 확인한 결과 이는 로시나의 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머리카락은 삭발 된 채 발에는 전기 고문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화상 자국과 머리 및 둔부에는 폭행 흔적 등 찰과상이 있는 상태였다. 시신의 턱 아래 목뿔뼈와 갈비뼈는 부러져 있었으며 뇌 등 일부 장기가 적출돼 있었다.

우크라이나 검찰 측은 “유전자(DNA) 검사 결과 시신의 99% 이상이 로시나와 일치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면서도 “현재 프랑스 측과 협력해 시신 신원 확인을 위해 재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 로시나의 죽음과 관련해 전쟁범죄 혐의 수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키이우 지역 언론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로시나는 법조 영역으로 반경을 넓혔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점령지에서 취재를 해왔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그는 같은 해 3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구금됐지만 카메라 앞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줬다’는 내용을 말하는 영상을 찍히고 조건부 석방되기도 했다. 소속 언론사로부터 위험 등을 이유로 계약 종료 통보를 받은 뒤에는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과 점령지 내 아동 납치 사건, FSB 고문 시설 등 대한 보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8월 구금, 2024년 10월 사망 통보

로시나는 러시아 점령지에서 ‘유령 포로’에 대해 취재하던 중 2023년 8월 구금됐으며 지난해 10월 10일께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사망 통보가 이뤄졌다. ‘유령 포로’는 러시아 점령지 등에서 법적 절차 없이 신원, 구금 장소, 수감 사실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채 억류된 민간인 또는 군인을 의미한다. 그는 “그곳에 가야만 전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며 점령지 내 취재를 자신의 임무라고 표현했다고 주변인들은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로시나와 함께 수감됐던 이들의 증언을 인용해 구금 과정에서 전기의자 고문과 물고문 등이 이뤄졌다고 했다. 로시나는 2024년 6월 단식 투쟁하던 중 건강이 악화돼 한 달여 뒤 병원에 이송됐다가 다시 구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수감 동료들에 따르면 로시나는 팔과 다리에 칼로 인한 자상, 멍 등 흔적이 있는 상태였으며 나중에는 신체가 너무 쇠약해져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로시나가 실종된 지 8개월 만인 지난해 4월 러시아 타간로크 수용소에 구금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러시아 당국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이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로시나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해 8월 러시아 측이 감시하는 상황에서 아버지와 4분간 전화할 기회를 받았으며 이때 “9월에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료 수감자들은 로시나가 지난해 9월 감방에서 이송된 것을 보고 “석방 준비로 보였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달 13일 이뤄진 우크라이나-러시아 포로 교환 당일에는 명단에 이름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한 달여 뒤인 10월 10일 로시나의 아버지는 돌연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자녀가 숨졌다는 서한을 받았다. 유족은 사망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러시아 측에 정확한 로시나의 상태 등을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몇 차례의 거절 회신과 “그런 수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유족 측은 우크라이나 검찰이 “로시나와 송환자 시신 중 한 구의 DNA가 99% 일치한다”는 취지로 발표했음에도 DNA 결과만으로 신원이 완전히 확인됐다고 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법률자문그룹(ULAG)이 지난 25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로시나의 가족은 추가적인 시신 감정 절차를 위해 재검사 요청서를 제출했다.

러시아에 의해 구금된 우크라이나 언론인은 2014년 이후 총 112명으로 집계됐으며 30명은 여전히 구금돼 있다고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포비든스토리즈’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