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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록지 않은 새 정부 경제, 두루뭉술 실용주의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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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록지 않은 새 정부 경제, 두루뭉술 실용주의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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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한 폐업한 식당에 철거 업체 명함이 놓인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한 폐업한 식당에 철거 업체 명함이 놓인 모습. 연합뉴스


새 정부 출범은 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2025년 6월에 들어설 차기 정부 앞에는 녹록지 않은 현실, 즉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 취임 초기: 시간 제약 속 당면 과제들 국면



차기 정부가 임기 개시와 동시에 풀어야 할 첫 번째 매듭은 한-미 통상 협상일 것이다. 새 대통령의 임기 개시와 90일 협정 시한 만료일 사이의 간격이 매우 빠듯하다. 더군다나 전 정부의 관료들이 초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문재인 정부의 사드 배치 문제처럼 임기 내내 정책 결정의 족쇄와 부담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선거 기간부터 대선 후보 모두 국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전략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새 정부의 야심 차고 방대한 공약은 결국 예산의 뒷받침을 통해 현실화된다. 이 역시 기간이 충분하지 않다. 통상 각 부처는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편성 지침에 따라 5월 말까지 안을 제출하고 기재부는 6~8월 중 협의와 의견 수렴을 거쳐 예산안을 편성한다. 올해도 이러한 절차대로 진행될 경우 차기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와 무관하게 부처별 사업예산의 큰 틀이 정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나아가 각 부처의 장관의 임명 또한 8월 이전에 전부 완료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결과적으로 2025년 하반기와 2026년 상반기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불가피해 보인다. 추경은 적정 규모뿐만 아니라 새 정부의 초기 개혁 과제를 담아낼 구조 개혁적 성격의 투자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통상 새 정부 중장기 아젠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밑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차기 정부는 인수위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한다. 이는 새 정부가 선거 시기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과 이후 국가를 운영할 실행 정책 간의 차이를 판단하고 조정할 기회를 갖지 못함을 뜻한다. 선거 시기 내놓은 ‘의욕적인 공약’은 정치적 수사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집권 이후 내놓는 설익은 정책은 현실에서 좌초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더 나아가 이로 인해 초래되는 국정 운영의 시행착오는 다른 정책의 추진 동력마저 꺼뜨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 후보자들은 자신이 내놓은 주요 공약에 대해서만이라도 100일 계획과 같은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세 가지 거대한 구조적 파고: 인구, 기술, 국제 질서





단기적인 불확실성을 넘어, 차기 정부는 우리 사회와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세 가지 거대한 구조적 파고에 맞서야 한다. 첫째, 고령화와 저출산 심화라는 인구 구조 변화다. 둘째,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인공지능(AI) 혁명의 파고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재등장 이후 예측 불가능성이 커진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라는 거대한 물결이다. 특히 기술 패권 경쟁, 보호주의 강화, 공급망 재편 등 급변하는 외부 환경이 우리 경제를 위협한다.




먼저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부터 살펴보자. 단기 한-미 관세 협상이 어떻게 결론 나든,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와 동맹국에 대한 경제 압박 등으로 요약되는 근본적 태도 변화는 우리나라에게도 국가 안보와 무역 전략 전반의 재설계를 강력히 요구한다. 2기 트럼프 행정부 이후의 새 국제 경제 질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고민거리를 제시한다. 첫째는 미국과의 안보-무역동맹의 재설계다. 중국이 좋은 예시다. 2018년 1차 미-중 무역 전쟁 이후 중국은 희토류와 같은 미국의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미국과의 무역 비중을 줄이며 새로운 무역 파트너를 찾아 나섰다. 더 나아가 2기 트럼프 행정부와의 무역 갈등이 본격화되자 유럽연합(EU)이나 브릭스(BRICS), 심지어 한국과 같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함으로써 ‘역포위’ 전략까지 추구했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중국의 강경한 대미 전략은 1기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이후 경험을 통해 충격을 최소화하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전략 수립에 매진한 결과다. 이는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 된다.



트럼프 시대를 거치며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 더는 과거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작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상호호혜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일방적으로 티켓 값을 치른 결과라면, 우리 역시 그 가격이 적절한지, 대안은 없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이끈 ‘마이런 보고서’처럼, ‘안보-무역-산업정책’을 아우르는 중장기 전략을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설계하는 한국판 보고서를 작성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지킬지를 검토해야 한다.



두 번째는 우리 산업의 미래 전략 자산 정립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의 명확한 비교우위 지점을 시급히 찾아내야 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조선 등 다양한 산업이 후보군으로 거론되지만, 필자는 ‘K-파운드리’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K-파운드리는 단순한 산업적 자산을 넘어 지정학적 자산으로서 ‘실리콘 방패’ 역할을 수행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산업·안보 전략의 핵심 레버리지 카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적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경제적 측면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산업 정책’이 절실하다.



저출산·고령화, 불평등 심화 등 문제 해결을 위한 재정 역할 확대에는 모든 후보들의 공감대가 크다. 문제는 막대한 재정 수요의 충당 전략이다. 증가하는 재정 수요는 증세의 필요성을 부각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높다. 자산세와 소비세는 노년층에게, 소득세는 근로 연령층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최근 선거 결과를 결정짓는 중심축이 세대 갈등이었던 만큼, 이러한 갈등 구조는 증세 정책 추진에 심각한 정치적 제약이 된다. 차기 정부는 이 문제에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며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두루뭉술 실용주의는 피해야





성공적인 재정정책 추진을 위해서는 경제 부처의 거버넌스 재설계가 중요하다. 다만 예산 기획과 재정 운영 기능을 분리하는 방향이 정해지더라도 거버넌스의 구체적인 설계에 있어서는 100점짜리 답은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구조 개혁 자체의 완벽성 추구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새 정부, 특히 대통령이 명확한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에 따라 예산을 활용하여 부처별 협력을 이끌어내 단일한 부처간 정책 추진 거버넌스 확보다. 이러한 것이 명확해질 때만이 권한 집중이라는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조직 분리만큼 중요한 것은 경제 관료들에게 정부의 우선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루뭉술한 실용주의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목표나 지향 없는 실용주의는 정책 우선순위를 제시해야 할 컨트롤 타워의 역할과 양립할 수 없으며, 결국 개혁도 실리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 정부에게 때로는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정부가 직접 시장에 손대는 것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필자는 특히 데이터·에이아이를 비롯한 디지털 신기술의 산업별 활용과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복잡하고 중복적인 규제들의 통합 정비, 플랫폼 수수료에 대한 직접적 개입 지양, 공공데이터(판결문)의 공개와 활용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의 완화, 그리고 변호사 수 등 특정 전문직 진입 장벽 규제를 재검토할 것을 권한다. 삶에서 무소유가 의미 있듯이 행정에서도 무위(無爲)의 가치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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