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트럼프 100일, 미국을 '위태'하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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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늘린대서 트럼프 뽑았는데 50센트도 아까워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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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달걀 파동 당시 미국 뉴저지주 유통매장 홀푸드의 달걀 판매대가 텅 비어 있다. /사진=심재현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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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심재현 특파원 |
"올초엔 달걀만 그랬는데 이젠 다 오른다."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의 할인매장 '타깃'. 세제 판매대 앞을 서성이던 한 여성 고객이 5달러(약 7200원)짜리 세제와 5.5달러(약 7900원)짜리 세제를 번갈아 들어보다 읊조리듯 이렇게 내뱉었다. 매장을 찾은 다른 이들도 물건을 마음 편히 고르진 못하는 눈치였다. 판매대 위에 진열된 상품을 살듯 말듯 만지작거리다 빈 손으로 가게를 나서는 이도 있었다.
매장 앞 주차장에서 만난 제이콥씨는 "대통령이 바뀌면 '별로 산 것도 없는데 100달러' 같은 말은 안 하게 될 줄 알았다"며 "이젠 다들 초과근무를 더 하는 것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열흘 만에 장을 보러 왔다는 스테이시씨는 "관세가 모든 걸 망치고 있다"며 "고깃값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질 것 같아서 얼마 전부터 채식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라는 구호를 내걸고 취임한 지 30일로 만 100일을 맞는 가운데 미국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장담과 달리 트럼프표 정책의 역풍이 오히려 무역 의존도가 높은 미국 경제를 강타하면서 생활 패턴과 식단을 바꾸는 이들까지 나온다.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가 금융중심가 월가의 발빠른 경고음만큼 일상을 빠르게 잠식한 상황은 아니지만 심상치 않은 민심 이반이 감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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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 코스트코 매장. /사진=심재현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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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형할인매장 타깃에서 장을 본 사람들이 매장 밖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다. |
미국 소비자들이 가장 배신감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물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취임 첫날부터 물가를 끌어내리겠다고 공언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물가 폭등에 질렸던 유권자들은 반쯤은 속는 셈치고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물가는 여전히 꺾일 줄 모른다.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급격한 물가 상승은 더 치명적이다. 설상가상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저축 잔고가 이미 바닥 수준인 가구가 적잖다. 스테이시씨는 "관세든 뭐든 먹고사는 문제를 건드렸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난제"라며 "물가를 잡고 일자리를 늘린다고 해서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도 1달러, 50센트를 아까워하게 되는 상황은 예상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판 1000원숍'으로 불리는 달러 제너럴(DG)의 주가가 날아가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지난 26일 찾은 DG 매장에는 토요일 휴일인데도 물건을 사러온 이들이 북적였다. 매장 직원은 "가격이 저렴한 제품은 대부분 수입산인데 (관세정책으로) 물건 값이 오를 수 있다고 하니까 미리 사두려는 사람들과 좀더 저렴하게 사려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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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1000원숍' 달러제너럴(DG) 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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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 한인마트. /사진=심재현 특파원 |
각종 지표에는 아직 확실하게 잡히지 않지만 현지에서 체감하는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은 이미 소비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 근교 한인 밀집지 둘루스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태산씨(가명)는 "생활이 팍팍해지면 제일 먼저 티 나는 게 외식을 줄이는 것"이라며 "이달 들어 가게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 식당처럼 수입산 식자재 비중이 큰 곳은 관세 타격이 곱절이다. 김씨는 "손님은 줄어드는데 한국산 수입 식자재 가격은 올라서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관세가 온 나라를 뒤집어놓으면서 틈새 수혜를 보는 곳도 있다. 미국의 대표 중고거래업체 스레스업은 올 들어서만 주가가 200% 넘게 뛰었다. "미국 가정의 옷장에서 나온 중고 의류와 가방은 관세 정책의 무풍지대"라는 말이 나온다.
이달 3일부터 수입차 25% 관세가 시행되면서 중고차 시장도 뜨겁다. 중고차 가격이 신차 가격을 따라잡은 사례도 여럿 보인다. 중고차거래업체 카맥스 직원은 "주요 자동차업체가 올 여름 차값 인상을 예고하면서 아직 가격 인상 전인 신차 가격에 육박하는 중고차 매물이 나오고 있다"며 "연식에 비해 싸게 나온 차량은 순식간에 팔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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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고차업체 카맥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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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 월마트. /사진=심재현 특파원 |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의 첫 100일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 최저라는 여론조사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앞마당에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팻말을 꽂아놓은 집이 적잖지만 주말이면 미국 전역에서 조직적인 반트럼프 집회가 잇따른다. 지난 19일 뉴욕 맨해튼에서 진행된 집회엔 "트럼프 대통령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나름의 '충언파'가 있었던 1기 때와 달리 2기 행정부에선 충성파에 둘러싸인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할 세력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구호다.
뉴욕타임스가 시에나대와 함께 지난 21~24일 미국 유권자 91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6%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도를 넘었다"고 답했다.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 없이 관세를 부과해선 안 된다는 답변은 61%에 달했다. 부정적인 여론 탓인지 백악관에서도 최근 일부 관세 완화 신호가 흘러나온다. 백악관은 오는 29일 자동차 관세 완화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부터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정책을 전면 포기할 가능성은 여전히 극히 낮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도 "관세가 부과되면 많은 사람들의 소득세가 크게 줄어들거나 완전히 면제될 수 있다"고 관세정책을 '셀프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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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 19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 참가자가 등에 맨 팻말에 '트럼프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심재현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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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Bye)아메리카' 부른 극단의 100일, 남은 1361일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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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뉴저지주 모리스타운 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동은 멋지고 아름다운 회의였다”고 말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
"금세기 이후 어쩌면 프랭클린 D. 루즈벨트(1933~1945) 시대 이후 가장 중요한 100일이었다."(이코노미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100일간 '세계의 대통령'에 주어진 권한의 한계를 시험했다.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 세계 무역질서를 흔들고 관료제, 문화, 외교 정책 심지어 미국을 아예 다시 정의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혁명'을 이끌고 있다. 남은 1361일, 트럼프는 러시모어산(미국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조각된 사우스다코타주에 있는 산)에 얼굴을 새길 수 있을까, 두 번째 머그샷을 찍게 될까. 일단 미국 내에서도 시장과 민심은 그의 질주를 붙잡으려 한다.
◇준비된 2기인데…시장도 민심도 'Bye 아메리카'
트럼프는 취임 직후 속사포처럼 행정명령을 쏟아부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지난 4년을 되돌렸다. 국가안보를 전면에 내세워 전방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내 외국인을 추방하는 한편 연방 자금 지원을 동결했다. 연방 직원을 대대적으로 해고하고 주 의사당부터 기업 이사회,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과 100일 만에 이토록 신속하게 판을 흔들 수 있었던 이유는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직후인 2021년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연구소'를 일찌감치 설립해 '포스트 바이든' 시대를 계획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스티브 배넌 전 수석전략가, 무역선임고문 피터 나바로 등 트럼프의 '지적 대부' 3인방이 주축을 이뤘다. 워싱턴 전역의 보수 성향 변호사, 전직 정부 관료, 싱크탱크 관계자들이 행정명령 초안을 물밑에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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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른 나라는 물론 미국 유권자 상당수도 '혁명'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실물 경제가 관세로 오염되는 데 대한 경계심이 크다. 통제되지 않은 재정적자와 정교하지 못한 경제 정책이 달러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트럼프의 오락가락 관세에 시장의 혼돈은 가중됐고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렸다.
이를 뚜렷하게 보여준 것은 돈의 움직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나스닥지수는 11.53%, S&P500지수는 7.8%(이하 28일 기준) 하락했다. CNBC에 따르면 금융리서치 회사 CFRA가 1944~2020년 대선 다음 해의 증시 기록을 분석해 보니 대통령 취임 첫 100일 동안 S&P500지수는 평균 2.1% 상승했다.
특히 이달 초 공개된 상호관세의 파장은 증시 외 다른 금융시장으로도 퍼졌다. 상호관세 발표 이후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4%대 중반까지 고공행진했고, 6개 주요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18% 하락했다. 안전 자산으로 꼽히던 달러와 국채가 나란히 궤도를 이탈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까지 공격하자 불확실성이 부각되며 달러 자산 기피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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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물러선 트럼프, 경합주 지지율 50% 밑으로…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한발 물러섰다. '채권 자경단'(인플레이션이나 정부의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 때문에 채권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국채를 대량 매도해 결과적으로 채권수익률을 높이는 투자자)의 압박에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해서도 해고하지 않겠다며 유화적으로 돌아섰고, 대중 관세 역시 145%보다 상당폭 낮아질 것이라며 협상 중임을 언급했다. 지속 불가능한 관세전쟁에서 출구를 찾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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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행을 포기한 이민자들이 멕시코에서 돌아와 2월 23일(현지 시간) 파나마 카리브해 연안 가르디 수그부드에서 휴식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 날 콜롬비아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예정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 정책 강화로 미국행을 시도했던 이민자들 사이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역류'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AP=뉴시스 |
그의 속도 조절은 민심 이탈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0일간 불법이민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으나 전국 지지율은 다른 어떤 대통령보다 빠르게 떨어졌다. 이코노미스트의 여론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 대선 때 싹쓸이 승리를 거둔 경합주 모두에서 현재 50% 미만이다. 제조업 부활은 누구라도 환영하지만, 정작 신규 공장에서 일하겠다는 응답자는 4분의 1에 그쳤다. 퓨리서치의 최근(7~13일) 설문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 능력에 부정적으로 답한 의견이 58%에 달했다. 관세 인상에 대한 반대 의견은 60%로 더 높다.
상·하원을 모두 쥔 공화당의 입지도 불안정하다. 공화당은 하원에서 근소한 차이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민주당 의원 2명이 사망한 덕에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베팅시장에선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할 확률을 80% 이상으로 점친다. 상원도 공화당이 필리버스터(소수당의 의사진행 방해)를 피할 수 있는 60표에서 7표가 모자라다. 상당 시간이 걸리겠지만, 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낸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어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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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에서 28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파손된 한 주택 앞에서 자동차 1대가 불타고 있다. 러시아가 28일 나치 독일에 대한 승전 기념일을 맞아 5월8일부터 10일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전면 휴전을 선언했다./AP=뉴시스 |
이런 가운데 트럼프의 대외 공약 상당수는 이미 무산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속히 종식하겠다는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향해 대대적 공세를 퍼붓다 28일에야 나치 독일에 대한 승전 기념일을 맞아 5월 8~10일까지 전면 휴전을 선언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인질협상도 추가 진척이 없다. 오히려 그린란드, 파나마 등 제3국과 동맹국가인 캐나다의 주권을 깡그리 무시하며 '선량한' 패권국가로서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미국의 제도와 동맹, 도덕적인 지위에 지속적인 해를 끼쳤다. 100일 전의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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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마저 견제력 잃어 위기…트럼프 3선? 부통령 후보로 나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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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인터뷰-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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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을 바라보는 눈빛은 불안하다. 자유무역의 룰을 비웃으며 동맹에 관세폭탄을 떨어뜨리고,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한 채 언론과 대학, 이민자를 억압하는 100일의 행보는 혼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과 보수 정치사를 탐구해 온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는 29일 머니투데이와의 만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공화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1기'를 지켜봤던 만큼 2기의 파격을 미뤄 짐작했지만, 오랜 역사가 구축한 미국의 정치 시스템마저 막지 못할 폭주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도덕적 우위는 땅에 떨어졌다. 과연 미국이 계속해서 트럼프를 그들의 대표로 내세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 "이대로면 공화당 참패, 조기 레임덕"
이 교수는 트럼프 1기 집권 당시 칼럼에서 '미국의 시스템이 트럼프의 돌출을 막아낼 것'이라는 취지의 분석을 내놓았다. 실제로 "트럼프 1기에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마스터 안보보좌관이 있었다.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하는 문서를 두 사람이 찢어버렸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의 영웅이었던 매티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시리아 철군에 항의하며 사표를 냈다. 또 뉴욕타임스(NYT)가 "가장 독립적 생각을 가진 군인"이라 평가했던 맥마스터 보좌관도 트럼프 대통령과 불협화음을 내다 경질된 바 있다. 그리고 트럼프 2기는 이들과 같은 대통령의 "견제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내년 11월 연방 상하원과 주지사 등을 뽑는 중간선거가 트럼프 행정부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 교수는 "이대로라면 참패"라고 내다봤다. 그는 "인플레와 세금은 미국 선거 필패의 공식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도 재선에 실패한 원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중고찻값이 폭등했다고 한다. 세계의 공급망이 촘촘하게 짜인 지금, 미국이라 해도 홀로 북치고 장구치면 머지않아 스스로 주저앉을 것"이라며 "이대로 고집하면 내년 중간선거도 못 가서 조기 레임덕이 온다"고 전망했다.
대선을 앞둔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외교전에서 신중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트럼프는 협상을 빠르게 하는 나라에 특혜를 줄 것처럼 말하지만, 관세 정책이 전반적으로 흔들리고 있지 않으냐. 시간이 흐르면 (전세계 대상의) 패키지 해법도 나올 수 있는데, 협상을 서두르다 보면 바가지를 쓸 위험도 있다"고 봤다. 그는 "당장 누군가 성과를 내려고 조급할 필요는 없고, 우리는 대선도 코앞인 만큼 겸손하게 접근하되 상황을 지켜본 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흔들리는 관세정책…빠른 협상 "바가지 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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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 대회인 '데이토나 500'에 MAGA 모자를 쓰고 참석을 하고 있다. 2025.02.17 /AFPBBNews=뉴스1 |
트럼프 대통령이 사문화된 '국가비상경제권법' '무역확장법' '상호무역법' 등을 무기로 휘두르는 것에 대해 이 교수는 "1920년대 사라진 호혜관세를 끌어다 붙인 것은 황당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UR(우루과이 라운드)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등 자유무역 체제는 공화당이 완성했다. 당시 중국과 베트남에 이렇게 제조업 주도권을 넘겨줄지는 예상치 못했던 만큼 이제 와서 수정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그것도 '세이프가드' 등 현재 활용할 카드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캐나다에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는 트럼프의 발언에도 이 교수는 "(되레) 미국의 7~8개 주가 캐나다로 붙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버몬트·뉴햄프셔·메인주는 문화적으로 퀘벡과 가깝고, 시애틀이나 포틀랜드는 밴쿠버, 미네소타와 미시간 북부도 캐나다와 가깝다"고 부연했다.
트럼프와 공화당 내에서 공공연히 언급되는 '3선 도전' 시나리오에 대해선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고 봤다. 2028년 대선에서 현 부통령 JD 밴스를 대선후보로 내세우되 트럼프가 러닝메이트 부통령으로 나서고, 승리하면 밴스가 사임해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뒤 다시 밴스를 부통령에 지명하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교수는 "그게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 마지막 보루인 연방법원을 무시하며 수십가지 탄핵 사유를 축적했다"면서 "상식을 벗어난 행보가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제의 위기 "포퓰리즘에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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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11일 미국 백악관 지하 벙커에서 당시 재임 중이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딕 체니 부통령. /사진=뉴시스(NARA 플리커) |
이 교수는 "미국은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를 시행해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1·2차 세계대전까지 극복하고 최강국이 된 나라다. 미주리주 시골 출신으로 밑바닥부터 최고의 자리까지 성장한 해리 트루먼을 대통령으로 배출할 정도로 성공적인 제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포퓰리즘에 휩쓸려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내각제가 주류인 유럽에서도 극우 정당이 뜨지만, 연립정부를 구성하며 성숙한 중도·보수 세력이 주도권을 쥔다"면서 "대통령제는 비교적 포퓰리즘에 취약해 견제와 균형이 고장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의 쇠락은 21세기 양당 실패가 누적된 결과로 봤다.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행정부의 실권자였던 딕 체니 부통령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각료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아들 부시를 이라크 전쟁으로 인도하면서 미국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을 방치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추가 파병하는 실책"을 저질렀으며, 조 바이든 정부도 "허약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역량을 갖춘 훌륭한 인물이 정치를 꺼리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과거 고위 관료와 의원 등은 존경받는 자리였는데, 지금은 "이들을 욕하는 게 국민적 스포츠가 됐다"는 것. 현재 미 정치권의 인재도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며, 트럼프가 재선 실패 후에도 재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내각의 핵심인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을 거론하며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에 밀린 인물"이라고 평했다.
◇'여소야대' 극복한 레이건…"그것이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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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레이건(왼쪽) 여사가 지난 1981년 1월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남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환호하는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AP=뉴시스 |
이 교수는 "정치의 복원", 특히 "상원의 정상화"를 해법으로 강조했다. 인구 비례로 2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하원과 달리 주 정부와 주 의회를 대표해 "6년 임기를 보장받는 상원은 포퓰리즘을 배격하고 미국의 가치를 지켜내야 할" 보루라는 평가다. 그는 "버몬트주 인구는 65만명으로 성남시(91만명)보다 적은데도 다른 주와 똑같이 상원의원 2명을 배출한다. 미 상원은 세계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의회다. 하지만 이런 상원이 역설적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말했다.
공화당의 보수 우파 원칙주의자였지만 '자유지상주의' 관점에서 사회·문화 측면에선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던 배리 골드워터, 인종차별적 표결을 했지만, 베트남전에는 강력 반발했던 민주당의 J. 윌리엄 풀브라이트, 민주당의 진보 정치인이지만 외교문제에선 보수적으로 일관했던 헨리 M. 잭슨, 베트남 참전 용사로 오바마와 맞섰지만, 공화당 내에선 진보·중도 성향으로 평가받았던 존 매케인 등을 열거하며 "이처럼 정파에 좌우되지 않는 '거물'들이 사라지고, 상원마저 백악관과 코드를 맞추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대 공화당의 최전성기로 평가받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를 주목했다.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가'로 불리며 1970년대 미국의 불황을 극복하고 정치를 안정시켰다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 진영을 대표하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구호의 원조도 레이건으로, 그가 1980년 대선에서 들고나온 슬로건이었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대부분은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레이건은 '세상은 옳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낙천주의적 성품을 기본으로 의회를 설득하고 국민과 대화하며 신뢰와 영감(Inspiration)을 선사했고, UR로 대표되는 자유무역 협상, 소련 붕괴 후 동유럽의 연착륙을 이끌었다"며 "그것이 바로 정치력(statesmanship)"이라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뉴욕=심재현 특파원 urme@mt.co.kr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변휘 기자 hynews@mt.co.kr 애틀랜타(미국)=기성훈 기자 ki03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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