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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휴대전화 수거’ 인권침해 아니라는 인권위···결정문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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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휴대전화 수거’ 인권침해 아니라는 인권위···결정문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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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중학교에서 하교하는 학생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중학교에서 하교하는 학생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0월7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조처’는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전남의 한 공립고등학교 재학생이 2023년 “학교가 조회 시간에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일괄적으로 수거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며 제기한 진정을 8 대 2로 ‘기각’했다. 10년동안 유지해 온 ‘휴대전화 전면 규제는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일거에 뒤집었다. 안창호 위원장이 취임하고 주재한 첫 전원위원회에서 나온 결정이라 더욱 주목받았다.

인권위가 지난 28일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결정문을 공개했다. 기각 결정을 한 지 200여일 만이다. 인권위는 “2014년 학교의 휴대전화 수거를 인권 침해라고 결정한 후 1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학생 휴대전화 사용과 관련해 사이버폭력, 성 착취물 노출 등 다양한 문제가 나타났다”며 “더 이상 학교의 휴대전화 수거가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10년만 결정 뒤집은 인권위 “교육 행위를 인권침해로 섣불리 단정 안 돼”


인권위는 휴대전화 수거 등은 부모와 교원 등이 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행위라고 봤다. 인권위는 “판단·인식 능력이 형성되는 중인 학생들에게 부모의 교육과 교원의 지도는 궁극적으로 학생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과 직업의 자유 등 인권 실현에 기여한다”며 “교육 행위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인권위는 휴대전화 수거 등이 학생의 행동 자유권·통신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지만, 기본권을 침해하는 데 한계를 규정한 ‘과잉금지 원칙’을 넘어 인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인권위는 “학내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 교육목적을 위해 목적이 정당하고 목적 달성을 하는 데에 필요한 수단이 될 수 있어 목적과 수단이 모두 적절하다”고 했다. 인권위는 과거 학내 휴대전화 소지·제한 규제 등이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하며 “학교가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와 사용을 학교에서 일과시간 내내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 제한과 관련해 헌법이 요구하고 있는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었다.

인권위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소지하는 것으로 인해 부정적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등 악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도 이유로 들었다. 인권위는 “최근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사이버 폭력, 도박이나 마약 등 약물, 딥페이크 등 성착취물을 다루는 유해 매체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며 “이는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는 것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또한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문자메시지 사용, 수업과 관계없는 정보 검색 및 사진 촬영 등) 행위로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학습권이 침해될 여지도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인권위는 휴대전화 학내 사용금지 규제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주장도 근거로 인용했다. 인권위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학생의 휴대전화 사용에 따른 악영향을 지적한 점, 영국·프랑스·미국·네덜란드 등이 학생의 학내 휴대전화 소지를 엄격히 제한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점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전국 학교에 ‘휴대전화 사용금지’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소지 자체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있게 했고, 프랑스는 2018년 15세 이하 학생이 학교에 휴대전화를 가져올 수 없게 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빼앗기는 것들


한 학생이 교실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학생이 교실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결정문에 담긴 소수 의견(남규선·원민경 위원)은 “아동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 권리주체로 인권을 보장받아야 마땅하다”며 교육과 보호의 대상으로서의 학생들을 강조한 다수 의견을 반박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 소지·사용으로 인한 일부 부정적 효과를 이유로 일률적으로 제한하기보다는 헌법과 법률의 취지를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스스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절제하는 방법을 지도해야 한다”고 했다.

소수 의견을 낸 위원들은 “최근 학생들이 충분한 토론, 민주적 논의 절차를 거쳐 휴대전화 관련 규정을 스스로 개정하는 사례도 상당수 있다”며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교의 주요 구성원인 학생들이 해당 규정에 있어 배제, 제한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인권위는 과거에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교육하는 것에 더 무게를 뒀다. 2014년부터 다양한 휴대전화 일괄수거 관련 진정사건을 인용하면서 “수업시간 중 전화 소지 제한을 한 것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왔다. 각 학교 사정에 맞게 최소한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정문에 밝히기도 했다. 인권위는 2013년 ‘중학교의 휴대전화 사용 제한’ 결정문에서 “학내에서 휴대전화 소지·사용을 제한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수업 시간 등 교육 활동 중에만 그 사용을 제한하고 휴식·점심 시간에는 소지 및 사용을 허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학생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교육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수영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는 “인권위가 이번에는 휴대전화 소지에 관해 한정해서 권고하긴 했지만, 향후 복장이나 머리카락 규제 등 다른 분야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을 듯해 우려된다”며 “학내 규칙의 경우 구성원들의 주체적인 논의에 따라서 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인권위라는 상징적인 기관이 그 여지마저 닫아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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