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인국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
헌법은 무엇인가?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헌법은 ‘통합과정의 법질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서 통합은 국가가 일방적·강제적으로 개인을 획일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서열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통합과정의 질서로서 헌법은 국가를 개인적 생활이 모여서 나타난 통일체, 즉, 국민이 개별 생활을 표현함을 통해 형성되어가는 정치적 통일의 산물이라고 본다. 이 정치적 통일의 형성과 유지는 국민이 자발적이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반복적으로 계속 이뤄가야만 한다. 이 과정이 바로 통합이고, 이 과정의 질서가 바로 헌법이다.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 헌법은 기본원리를 천명한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사회국가원리 등 헌법의 기본원리는 정치적 통일의 형성을 위한 원칙과 절차, 이에 따라 구성된 국가권력의 행사 기준을 제시한다. 헌법이 기본원리를 통해 방향과 기준을 알려준다는 것은 정치적 · 사회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통합을 이룰 수 있게 함은 물론 그에 대한 기대와 예측가능성을 높여주고 이를 통해 헌법에 대한 신뢰를 확고히 하여 헌법적 질서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현실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깊어지면서 통합이 그저 요원하게만 보일 수도 있다. 사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그 어느 국가에서든 정치적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해대립과 갈등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대체로 갈등은 이익, 이념, 정체성의 문제로 발생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이념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본래 이념은 어떤 문제를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교리적 성격을 가진다. 그렇기에 ‘우리’가 아닌 ‘상대’를 곧바로 ‘나쁜 것’으로 여기는 극단적인 이념 갈등은 해결하기 쉽지 않다. 이념 갈등은 헌법조문을 추가하고 요건을 더 구체적으로 한다고 해서, 강제력이나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다툼이 목전인데 한가로운 소리나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이념 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더욱 굳건히 보장하고, 다원적 의사의 형성과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정치공동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 즉, 기본권과 헌법의 기본원리를 더욱 충실하게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바로 이 사명을 수행하라고 국민은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권은 오히려 이념 갈등을 깊게 만들어 피아 구분을 명확히 함으로써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수단으로 헌법과 헌법원리를 사용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헌법의 기본원리를 왜곡하거나 정쟁 수단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늘어만 간다. 다수결 원리를 마치 다수라면 어떤 공적 권력이든 독차지할 수 있고 국민의 선택을 적게 받은 소수의 의견은 국정에서 얼마든지 배척해도 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정당 내의 다른 견해를 묵살하고 제명하는 것을 정당의 자유라 하고 당내 민주주의라 한다. 선출된 지위를 지키기 위해 거리낌 없이 법치주의를 후퇴시키면서 이를 민주주의라 한다. 급기야 정쟁 때문에 헌법의 기본원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붕괴시키려는 시도마저 나타났다. 그렇다면 작금의 갈등과 대립은 87년 헌법 때문인가 아니면 헌법을 충실히 존중하지 않은 탓인가?
헌법의 통합적 기능은 정치적 통일의 형성과 유지를 헌법이 보장한다는 것을 구성원이 실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데에서 나타나기 시작된다. 헌법을 존중한다는 것은 문구상 준수함은 물론 그 의미까지도 충실하게 준수하는 것을 말한다. 신뢰와 존중 가운데 헌법의 규범력과 통합적 기능을 높여가는 해석과 적용이 필요한 것이고 개헌 역시 이러한 방향성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헌법을 그저 형식적이고 법기술적으로 이해하거나 수단화하려는 등의 태도가 기저에 있다면 그 어떤 개헌안을 가져온다 해도 헌법의 통합적 기능을 강화할 수 없다. 헌법은 정치적 통일형성과 국가작용을 위한 절차와 조직을 규정하고 공동체의 전체적 법질서의 기초를 마련하는, 공동체의 구조에 관한 설계도이다. 설계도에 충실하지 않고 건성으로 편의에 따라 집을 짓다 사고가 났는데 도리어 설계도를 탓한다면, 이후 그 어떤 설계도를 가져오더라도 좋은 집을 지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헌법과 헌법원리에 대한 충실한 존중이 먼저인가, 개헌이 먼저인가. 대한민국 여야 정치권 모두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을 해야 할 것이다.
[계인국(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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