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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 대통령 기록물도 보호하는 대통령기록물법 고쳐야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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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면 대통령 기록물도 보호하는 대통령기록물법 고쳐야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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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와 녹색당이 2017년 4월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의 박근혜 기록물 보호기간 지정에 대한 헌법소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와 녹색당이 2017년 4월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의 박근혜 기록물 보호기간 지정에 대한 헌법소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강성국 |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활동가





지난 4월4일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됐다. 시민들이 고대하던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였지만 윤석열의 파면과 동시에 시민사회에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파면된 윤석열을 대신해 12·3 내란사태와 관련된 대통령기록물들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봉인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거나 국민 경제 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기록, 정무직 공무원 인사에 관한 기록 등 6가지 유형에 해당할 경우 대통령이 지정기록물로 ‘지정’하면 최대 15년, 사생활이 포함된 기록물의 경우에는 최대 30년까지 봉인할 수 있다. 12·3 내란사태와 관련된 기록물들이 지정될 경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 12·3 내란사태에 대한 완전한 진상규명은 대통령지정기록물들의 봉인 기간만큼 지연될 수 있다.



이렇게 파면 사유나, 범죄 혐의와 관련된 기록물들을 오랜 기간 봉인할 수 있는 점 때문에 중대한 위법을 저지른 대통령과 그 부역자들 입장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는 일종의 만능 열쇠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기록물법의 입법 취지와 목표는 오히려 정반대다. 2006년 대통령기록물법 입법 예고의 제정 이유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법은 ‘종합적인 대통령 기록관리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대통령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는 대통령기록물을 적극적 공개·활용하기 위해 비공개의 공익이 큰 대통령기록물들을 최소한의 범위에서 지정해 보호하기 위한 보호체계일 뿐이다. 즉 대통령기록물들을 더 체계적으로 이관하고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개하기 위해 보호가 필요한 기록물들을 대통령이 직접 골라 확실하게 보호하자는 취지다.



이런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가 그 본질을 벗어난 결정적 사건은 2017년 박근혜가 파면된 이후,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이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실, 국가안보실이 생산한 문서, 접수한 문서, 그 문서들의 목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황 권한대행의 이러한 조치는 세월호 참사의 온전한 진상규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유가족들의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이 지난 11년이라는 긴 시간 끝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가 원래 취지와는 정반대로 파면된 대통령 책임의 면피를 위한 ‘증거은폐 제도’로 뒤바뀐 것이다.



한국사회는 박근혜 파면과 황교안 권한대행의 대통령기록물 봉인으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박근혜가 윤석열로, 황교안 권한대행이 한덕수 권한대행으로 달라졌을 뿐 똑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시급하게 던져야만 한다. ‘파면된 대통령의 기록물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가?’



앞서 이야기한 대로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는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에 대한 특권적 성격이 강하다. 대통령 탄핵은 탄핵소추의 시점부터 이러한 권한이 모두 중단되는 것은 물론이고 파면이 확정되면 그 특권적 권리도 완전하게 박탈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통령기록물의 지정 권한 역시 탄핵소추와 함께 중지되고 파면과 함께 박탈되는 것이 타당하다. 즉 법 개정을 통해 파면된 대통령의 기록물들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



파면될 정도로 위법적 행위가 중대한 만큼 파면된 대통령은 절대적 확률로 형사재판에 회부된다. 파면된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한 지정 자체를 금지하면 증거은폐 우려와 기록물의 봉인으로 인한 진상규명의 장애들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공개되지 않아야 할 대통령기록물들의 실질적인 보호는 비밀기록의 보호조치들과 비공개기록물 분류로도 이미 충분히 가능하다. 반면 파면된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들을 권한이 불분명한 권한대행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봉인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전무하다.



특히 12·3 내란사태와 관련된 기록물들은 필요에 따라 이어지는 재판들과 내란 진상규명에 아무 제약 없이 제출되어야 하며 시민들에게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공개되어야 한다. 사법적 결론과 진상규명이 ‘최소한의 정의’라고 할 때 파면된 대통령 기록물까지 보호하는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는 이 ‘최소한의 정의’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며 정의가 지연될수록 시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혼란과 고통은 가늠이 어렵게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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