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에 참석한 뒤 미국으로 돌아와 뉴저지에서 워싱턴으로 출발하기 전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앞세워 전후 80년 동안 미국이 만들고 지켜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제 손으로 허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29일로 100일이 됐다. 이 짧은 기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낸 ‘상호 관세’ 등 수많은 정책으로 전세계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고, 한국 역시 ‘국난’에 가까운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트럼프 현상은 우리가 미국의 몇가지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면 큰 탈 없이 넘길 수 있는 ‘단기간 소나기’가 아니다. 확고한 외교 원칙을 세우고 주변 우호국들과 연대를 강화하면서, 장기적으로 외부 충격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국가를 만들어야 이 파고를 온전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지난 100일은 혼란 그 자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20일 취임 연설에서부터 “영토를 확장하겠다”며 덴마크령 그린란드나 파나마운하에 대한 제국주의적 야심을 숨기지 않았고, 중동 ‘가자지구’에선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미국이 넘겨받아 소유(2월4일)하겠다”고 했으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겐 “당신에겐 카드가 없다”(2월28일)며 종전을 위한 일방적 양보를 강요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지난 2일 내놓은 상호 관세(한국은 25%) 조처였다. 대표 정책인 만큼 합리적 ‘산출 근거’를 기대했지만, 상대국의 대미 수출액 가운데 무역흑자 비중을 반으로 나눈 수치에 불과했다. 심지어 9일 상호 관세를 처음 부과했다가, 미 국채 가격이 급락하자 불과 13시간 만에 ‘90일 유예’ 조처(중국은 제외)를 내놓으며 후퇴했다. 시장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달러 가치, 주가, 국채 가격이 모두 급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트럼프 현상은 이라크 전쟁(2003~2011)과 국제 금융위기(2008)를 겪으며 상처받은 저소득층 미 백인들이 주도한 미국 내 ‘정체성 정치’의 결과다. 미국 정책 기조가 단기간에 변할 리 없다. 한-미 간 통상 협의가 큰 탈 없이 끝난다 해도 △환율 조정 △방위비 분담금 증액 △주한미군 성격 변화(대중 견제 동참 요구) △북-미 직접 대화 등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난제를 줄줄이 들고나올 것이다. 우리만의 확고한 원칙 없이 이 거친 국제 질서의 대전환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 눈앞의 협상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자강 능력을 키우면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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