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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이 사이버 침해 피해를 막기 위해 전국 2600여곳의 T월드 매장에서 희망 고객들을 대상으로 유심 무상 교체를 진행하는 28일 오전 서울 중구 무교동의 한 T월드 매장에서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오늘 유심 재고가 없습니다. 온라인 예약만 가능합니다.”
유심 무상교체가 시작된 28일 오후 12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의 SK텔레콤 대리점 앞은 유심을 교체하려는 20~30명의 대기 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이날 오전 일찌감치 이 매장이 보유한 재고가 모두 소진됐다. 대리점 직원들은 지금 유심 재고가 없으니 온라인으로 예약하라는 안내를 반복했다. 이에 “아침부터 미리 안내를 했어야 하지 않나” “미성년자인 아이들은 어떻게 교체하냐” 등 불만과 고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이날 점심 시간을 쪼개 대리점 앞을 찾은 이모 씨(49)는 대기인원만 10만 명 넘게 몰린 온라인 유심 교체 예약페이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사람이 많이 올 걸 알았을 텐데 충분히 유심을 확보해 놓았어야 하지 않나. 불편하고 답답하다”며 “해킹사태 이후인 지난 주말 금융감독원에서 내 개인정보가 다른 곳에서 활용됐다는 이메일도 왔었는데, 언제 유심을 바꿀 수 있다는 기약도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용자가 너무 오래 대기할 것을 우려해 번호표도 발급하는 매장들도 나왔다.
이처럼 매장을 방문해도 유심이 없어 허탕을 치는 고객들이 늘어나자, SK텔레콤은 이날 오전 8시 반부터 온라인으로 유심교체 예약 신청을 받고 있다. 본인 인증을 거쳐 교체 희망 매장을 선택해 예약하면 고객이 방문 신청한 매장의 번호로 예약 확인 문자가 발송된다. 방문 예약 날짜에 맞춰 매장명, 매장 주소가 포함된 안내 문자가 별도로 발송될 예정이다. 교체 날짜 안내 문자는 예약 순서대로 고지된다.
그러나 예약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에는 언제 교체가 가능한지 날짜가 적혀있지 않았다. “유심 수급 상황에 따라 여러 날이 소요될 수 있으니 양해 부탁한다”고 내용이 전부였다. 이에 가입자들은 오전 일찍 매장에 유심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줄을 서거나, 교체 가능 날짜를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온라인 예약 시스템 접속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날 오픈한 온라인 예약 시스템도 예약자들이 몰리며 접속장애가 빚어졌다. 이날 오전 11시 기준 T월드 앱에는 접속자가 10만명 넘게 몰리며 접속이 지연됐다. 고객센터 역시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 ‘불통’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본인인증 애플리케이션(앱)인 패스(PASS) 접속도 지연됐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가 운영하는 명의 도용 방지 서비스 ‘엠세이퍼’ 공식 홈페이지에도 접속자 수가 급증하면서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
● 유심 재고 부족에 타 통신사에 SOS…교체에 수개월 전망도
SK텔레콤은 이달 18일 해킹으로 인한 유심 정보 유출로 이날부터 전국 T월드 매장 2600여 곳에서 유심 무료 교체 서비스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이 현재 보유한 유심은 100만 개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SK텔레콤은 다음 달 말까지 약 500만개의 유심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SK텔레콤 가입자 2300만 명과 이 회사 망을 사용하는 알뜰폰 가입자 187만 명을 합치면 교체 대상자가 모두 2500만 명에 달한다. 재고 부족에 따라 언제 유심 교체가 이뤄질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급한대로 SK텔레콤은 다른 통신사들에도 남는 유심 재고를 넘겨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유심 재고 확보 상황에 따라 유심 교체에 수개월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국내 1위 이동통신 사업자인 SK텔레콤만큼 유심 재고를 보유한 통신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회사 차원에서 SK텔레콤의 협조 요청에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당장 사각지대에 있는 해외 로밍 가입자들도 문제다. 유심보호서비스를 신청하려면 로밍 서비스를 해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해외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떠났을 경우 유심보호서비스에 가입하고 국제전화요금을 비싸게 부담하거나, 출국 전 공항 로밍센터에서 유심 교체를 하고 떠나야 한다. 공항 로밍센터에서 유심 재고 부족으로 교체하지 못하면 유심보호서비스를 신청해 로밍서비스를 해지해야 하는 셈이다. SK텔레콤 측은 “로밍 가입자도 유심보호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다음달 중 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며 “다만 로밍 가입자도 기본적으로 비정상인증시도 차단(FDS) 강화 조치가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T는 ‘유심 대란’이 벌어지자 일단 유심보호서비스 가입을 먼저 권유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유심보호서비스는 불법 복제 유심을 통해 기존에 사용자가 쓰던 휴대전화 외에 다른 휴대전화 개통 시도가 있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결제를 시도할 경우 즉시 이를 차단해 주는 서비스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유심보호서비스는 복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어서 유심 교체보다 더 확실하게 안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비스에 가입했는데도) 피해가 발생하면 SKT가 100%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염흥렬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어떠한 유심 정보가 유출됐는지 조사가 더 필요하지만, 일단 유심을 교체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며 “유심이 부족해 제때 교체를 하지 못했다면 일단 유심보호서비스라도 가입해야 한다. 유심보호서비스가 100% 잘 작동을 한다면 유심 복제 등을 막는 건 가능하다”고 했다.
● ‘이참에 통신사 갈아타자’…스마트폰 판매보조금 경쟁 우려
해킹 사고 이후 가입자들의 우려가 커지면서 SK텔레콤 가입자가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이달 26일 기준 SK텔레콤 가입자 1665명이 다른 통신사로 이동했다. KT로 이동한 가입자가 1280명, LG유플러스로 이동한 가입자가 385명이다.
일부 SK텔레콤 영업점에서는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다른 통신사에서 자사로 이동하는 고객에게 보조금을 추가 지급해 논란이 됐다. 삼성전자의 최신 플래그십 제품인 갤럭시 S25 기본 모델을 현금 완납 기준 5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단통법은 7월 말 폐지 예정으로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관련 규정 위반 여부가 있을 경우 휴대전화 유통점에 대해 조사 점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스마트폰을 판매해야 하는 일부 대리점, 판매점들이 보유한 유심을 무상 교체 서비스에 이용하지 말고 최대한 판매 건 위주로 사용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SK텔레콤이 대리점 등에 영업인력을 보내 유심 교체에 쓰도록 조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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