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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빠진 올해 ‘LG배 기왕전’, 수습 안간힘…역대 우승자 참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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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빠진 올해 ‘LG배 기왕전’, 수습 안간힘…역대 우승자 참가 대체

속보
군, 백령·연평도 해상사격훈련 실시…K9 자주포 등 참가
직전 ‘LG배’서 반칙패 당한 커제 사태 여파
반상(盤上) 논란으로 국가적 ‘보이콧’은 처음
‘LG배’ 이외 한국 주최 기전은 정상 참가
일부선 ‘기원측의 적극적 사태 해결’ 아쉬움도
기원 “현지 강성 바둑팬들에 의한 결정” 해명도
지난 1월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렸던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3번기·3판2선승제) 결승 3국에서 중국의 커제 9단이 한국기원 관계자들에게 대국 규정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동갑내기였던 한국 변상일 9단과 맞붙었던 커제 9단은 1국에선 승리했지만 2국과 3국에서 모두 사석(상대방의 따낸 돌) 관리 규정을 위반하면서 반칙패로 우승컵까지 상대에게 헌납했다. 바둑TV 유튜브 캡처

지난 1월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렸던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3번기·3판2선승제) 결승 3국에서 중국의 커제 9단이 한국기원 관계자들에게 대국 규정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동갑내기였던 한국 변상일 9단과 맞붙었던 커제 9단은 1국에선 승리했지만 2국과 3국에서 모두 사석(상대방의 따낸 돌) 관리 규정을 위반하면서 반칙패로 우승컵까지 상대에게 헌납했다. 바둑TV 유튜브 캡처


올해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30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우승상금 3억 원)은 결국 반쪽짜리 대회로 진행될 전망이다. 연초 벌어졌던 '제29회 LG배’ 결승전에서 중국 바둑계 간판스타인 커제(28) 9단의 예상치 못했던 사석(상대방의 따낸 돌) 관리 규정 위반으로 촉발된 사상 초유 반칙패 사태가 중국측의 올해 ‘LG배’ 불참을 불러오면서다. 지금까지 글로벌 바둑계의 중심축인 한·중·일 3개국에서 내부적인 반상(盤上) 논란으로 특정 세계 메이저 기전에 국가적 차원의 참가 거부 의사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28일 “최근 중국위기(圍棋)협회측으로부터 올해 열릴 ‘LG배’엔 참가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다”며 “메이저 기전인 ‘LG배’에 중국측 불참이 결정되면서 안타깝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 중국측 불참 공백을 줄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다양한 의견들을 모으고 있다”며 “역대 ‘LG배’ 우승자들의 참가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둑 강국인 중국측의 이번 대회 보이콧으로 30주년인 올해 별도 이벤트까지 기획했던 것으로 알려진 ‘LG배’ 파행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기원은 ‘LG배’를 주관하고 있다. 다만, 중국측에선 ‘LG배’ 이외의 한국에서 열릴 기전엔 정상적으로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올 들어 발발한 커제발(發) 대참사 여진은 곳곳에서 감지됐다. 중국측에선 지난 1월 열렸던 ‘제29회 LG배’ 결승전 판정에 대한 항의성 조치로 커제 9단은 당시 시상식도 빠졌다. 중국측에선 이어 한국기원에게 당시 대국을 맡았던 해당 심판의 즉각 징계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올해 2월 국내에서 신설 세계 기전으로 예정됐던 ‘제1회 쏘팔코사놀 세계최고기사결정전’(우승상금 2억 원)에 일방적인 참가 거부 통보 카드까지 꺼냈다. 당초 이 대회에 참가키로 했던 커제 9단 대신 당이페이(30) 9단의 대참으로 무기한 연기됐던 ‘쏘팔코사놀배’가 지난달에서야 열렸지만 김을 빼놓기엔 충분했다.
중국의 커제 9단이 지난 1월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3번기·3판2선승제) 결승 3국에서 한국의 변상일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중국의 커제 9단이 지난 1월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3번기·3판2선승제) 결승 3국에서 한국의 변상일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세계 바둑계에선 최고 무대로 꼽힌 올해 중국갑조리그(1999년 출범)에 당초 방침과 달리, 갑작스럽게 지난 2월 알려진 외국인 선수의 참가 불허 방침 또한 커제발 대참사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1월 “’2025 갑조리그’부턴 중국 선수들에게만 수여해왔던 개인상 선정 규정을 바꿔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넓힌 것”이라고 공언한 창하오(49) 중국위기(圍棋)협회 회장의 발표 직후 취해진 조치란 관측에서다. 중국측에선 이달 14일엔 자국내 여자갑조리그에서조차 외국인 선수 참가 불허 방침을 공지했다. 중국갑조리그는 축구에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야구에선 미국 메이저리그에 비견될 만큼, 바둑계에선 ‘꿈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실제 바둑 강국인 한국과 일본, 대만 등에서 우수 선수들을 비싼 몸값으로 데려와 중국의 초일류급 선수들과 진검승부 리그를 운영 중이다. 갑조리그 1대국당 10만 위안(약 2,000만 원)이었던 특A급 외국인 선수의 승리 수당이 2024시즌부터 6만 위안(약 1,200만 원)으로 하향 조정됐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 프로바둑리그에 비하면 월등한 수준이다. 한국 프로기사들도 매년 중국갑조리그에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렸다. 지난 시즌 중국갑조리그엔 한국에선 남자 7명과 여자 3명이 용병으로 활약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둑계 일각에선 기원측의 대응에 아쉽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 중견 프로바둑 기사는 “’제29회 LG배’ 커제 파동 이후, 중국측의 강경한 대응 기조는 여기 저기서 불거져 나왔다”라며 “결과적으로 ‘제30회 LG배’가 기원측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섰으면 어떘을까 하는 의견들이 기사들 사이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기원측에선 그동안 중국위기협회와 협조를 해왔던 과정으로 해명을 대신했다. 기원 관계자는 “새해부터 터진 ‘LG배’ 커제 사태 이후, 중국협회측과 실타래를 풀기 위해 꾸준하게 접촉하면서 소통을 해왔다”며 “중국이나 한국이나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입장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만약 중국쪽에서 끝까지 한국과 대립각을 세우려고 했다면 ‘LG배’ 이외의 다른 기전도 불참하겠다고 했을 것”이라며 “중국측의 올해 ‘LG배’ 불참은 현지 강성 바둑팬들의 강력한 요청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결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25일부터 국내 예선에 돌입한 ‘제30회 LG배’엔 중국을 제외한 일본과 대만 등에서 참여할 예정이다.

허재경 선임기자 ricky@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