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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따돌리려다 미국 고립될라...동맹 신뢰 잃고 약해진 '대중 포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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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100일] 중국 견제 정책
"집권 1기 대중 정책 약했다고 절치부심"
2기 취임 직후 고강도 관세 쏟아냈지만
'동맹 위협' 행보에 국제사회 고립 자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에 참석해 있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에 참석해 있다. 바티칸=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때보다 더 강력한 관세 정책 등을 통해 미국 패권을 뒤흔드는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겠다는 의사를 되풀이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역효과가 더 컸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동맹국도 거래 상대로만 여기는 극단적 자국 우선주의 탓에 오히려 중국이 자유무역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설 수 있는 반격의 공간을 제공했다. 관세 전쟁으로 중국의 국제사회 위상만 올려주는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센 무역 전쟁 별렀던 트럼프, 미리 대비한 시진핑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전부터 중국에 불만을 터뜨렸다. 중국 정부가 자신의 첫 집권 때인 2020년 1월 "2021년까지 대미 수입액을 2,000억 달러(약 287조 원) 늘리겠다"고 약속해놓고,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로 정권이 넘어가자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2020년 대선 패배 뒤 4년 동안 '백악관을 탈환하면 더 강한 대중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절치부심했다고 미국 CNN방송은 전했다.

실제 지난 1월 20일 백악관에 재입성한 뒤에는 기다렸다는 듯 대중 강경책을 쏟아냈다. 2, 3월 연달아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지난 10일부터는 합계 145%(품목별 최대 245%)에 달하는 '관세 폭탄'을 적용하고 있다. 초고율 관세를 통해 중국을 무릎 꿇리고 미국에 유리한 무역 협정을 맺겠다는 게 트럼프 측 구상이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그러나 중국 역시 무역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 로이터통신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24 미국 대선을 앞두고 앙숙 관계였던 국가들과 급격히 관계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고 지적했다. 2023년 8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를 이유로 시행한 일본산 수산물 금수 조치를 지난해부터 재검토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대미 농산물 수입 비중을 2009년 27%에서 2022년 18%까지 낮추는 등 공급망 재편도 추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을 버틸 기초 체력을 다져 놓은 셈이다.

'매력공세' 전환한 중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교역국을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율'을 발표하고 있다. 당시 백악관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에도 20%가 넘는 고율 추가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교역국을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율'을 발표하고 있다. 당시 백악관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에도 20%가 넘는 고율 추가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1기 때 중국에만 한정했던 무역 전쟁 전선을 대폭 넓힌 것은 중국으로선 뜻밖의 행운으로 작용했다. 미국이 중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태평양의 동맹에도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하는 사이, 중국은 '매력 공세'를 퍼부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8일 베이징에서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40여 명과 만나 "자유무역 수호자"를 자처했다. 이달 중순에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순방했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치 않게 아시아 국가들을 중국 편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행정부 당시만 해도 중국과 거리두기에 동참했던 유럽연합(EU)과의 관계 개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당초 올해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정상회담 장소가 최근 베이징으로 옮겨진 건 상징적인 징후다. 통상 브뤼셀 회담 땐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만 참석했기 때문에, 시 주석과의 만남을 위해 장소가 변경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U 역시 인도,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 아랍에미리트(UAE)와 개별 무역 협상을 추진하며 탈(脫)미국 행보를 걷고 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진다


미중 간 '영향력 싸움'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고질적 과잉 생산 문제 및 대만·필리핀 등과의 오랜 반목 등을 고려하면, 세계 각국이 미국과 완전 결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FP는 지적했다. 그러나 두 강대국 간 극단 충돌에 따른 고통은 나머지 국가들의 몫이다.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는 "백악관은 세계 각국에 중국과 미국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며 "그간 미중 사이 균형을 추구해 온 국가들은 극심한 딜레마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