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논설위원 |
이 무렵 중국에서 발 마사지 받을 날이 많지 않다는 얘기도 돌았다. 필자는 그런 날을 피하려면, 기업 규제만 쏟아내는 우리 정치권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중국의 비약적 기술 도약이 불러올 한국 경제의 위기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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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중국, 한국 다 따라잡아
중 내년부터 독·일 넘는 기술 도전
한국 ‘산업도약 2035’로 대응 필요
지난달 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5' 전시관의 입구 옆에 화웨이와 샤오미의 광고가 붙어있다. 김남영 기자 |
그 얼마 뒤 2015년 중국 국무원은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했다. 산업을 고도화하고 혁신 역량을 높여 제조업 강국으로 올라선다는 계획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국가 역량을 총동원했다.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무제한 투입해 제조업 혁신 역량을 끌어올리자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서서히 입지가 줄어들었다. 그러더니 2020년을 전후해 “반도체를 빼면 중국이 한국을 다 따라잡았다”는 경고음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사이렌이 아무리 울려도 정쟁에 몰두한 한국 정치권은 반(反)시장·반기업 규제를 쏟아냈다. 이제는 반도체도 따라잡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경위다.
상전벽해의 변화 중에서 무엇보다 자동차와 반도체의 약진은 충격적이다. 1996년 미국 GM을 필두로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중국에 몰려간 지 30년 정도 세월이 지나자 중국은 자동차 강국이 됐다. 미국·독일·일본·한국 자동차 회사들은 땅 짚고 헤엄치던 중국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 고성능 엔진을 앞세운 자동차는 독일을 비롯해 일본 같은 첨단 제조업 국가의 전유물이었다. 전기차는 이 아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게임체인저로 나타났다.
내연기관 필요 없이 배터리로 작동하는 전기차는 배터리가 핵심동력이다. 수많은 연구인력과 풍력을 비롯해 배터리 충전 에너지가 풍부한 중국에 배터리와 전기차는 안성맞춤이었다. 중국 CATL은 순식간에 세계 1위 배터리 회사로 떠올랐다. 배터리 생산력은 전기차 도약으로 이어졌다. 테슬라는 BYD에 전기차 1위 자리를 내놓았다.
지난해 1월 10일 중국 산둥성 얀타이 항구에서 수출을 앞둔 중국산 전기차들이 선적을 대기하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
자동차 제왕이었던 GM은 중국에서 판매순위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독일 BMW는 중국 전기차의 공습에 직격탄을 맞아 독일 본사의 공장을 잇달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전기차가 주력이 되면서 자동차 생산 생태계가 흔들리며 독일 경제는 급격한 침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중국 경제의 비약적 발전에는 운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전기차가 일거에 중국 자동차의 위력을 키웠듯 인공지능(AI)은 물론 인터넷 기반 무선전화, 무선 결제, 전자상거래는 과거에 없던 기술이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미국에서 태동한 유선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한 3차 산업 기술이 보편화한 환경에서는 갑자기 4차 산업으로 건너가는 게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일본이 현금 거래를 많이 하면서 무선 인터넷 전환이 느렸던 게 바로 그런 경우다.
중국은 이제 혁신의 리더로 올라서고 있다. 과거 ‘대륙의 실수’라 불리던 제품들이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중국은 내년부터 ‘제조 2025’의 2단계 도약에 나선다. 1단계로 한국을 넘어섰다면, 2026~2035년에 걸친 2단계에선 기술 원조 격인 독일과 일본을 넘어선다는 계획이다. ‘중국 제조 2025’에 이어 ‘중국 제조 2035’가 불러올 거대한 파도에 기업의 힘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정치권이 경제를 좌우하는 현실인 만큼 정치권이 앞장서서 ‘산업도약 2035’와 같은 중장기 국가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런 일을 해낼 대통령이 당선돼야 한다. 특히 미래 성장산업, 예를 들어 차세대 반도체, 친환경 에너지, 바이오 헬스, 휴머노이드 로봇,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등에서 국가 차원의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 중국 제조 2035의 핵심 과제들이다. 이제는 한국이 중국을 따라가는 형국인데 어쩔 수 없다. 미국조차 중국의 추월이 두려워 무리수를 두면서 관세 폭탄으로 몸부림치는 상황이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다양한 시장으로의 진출을 도모하는 것은 필수다. 중국이 거대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전진하는 지금이 우리가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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