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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헌법재판관의 무게] '선택적 월권'과 재판관 '알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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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사법개혁·검경개혁 중요하나 조기에 힘뺄 상황 아냐"
■ '선택적 월권'

◀ 최경재 ▶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정한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 국회가 선출한 3명.

이렇게 9명의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됩니다.

재판정의 자리에 누구를 앉힐 것인지 그 자체보다는 헌법재판소에 어떤 가치를 담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공석이 된 두 자리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듯한 모습이 논란이 됐습니다.


◀ VCR ▶

이번에 퇴임한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은 지난 2019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했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법원'이라며 부정부패를 엄벌하고 노동, 아동학대, 가정폭력 사건 등에서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했다"


"재판연구관 시절부터 노동법을 연구하며 노동자 보호 강화 등 사회적 약자 권리 보호에 노력한 신망받는 40대 여성 법관이다."

대통령실은 후보자로 지명할 때부터 두 재판관을 통해 담으려 했던 가치를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김의겸/당시 청와대 대변인 (2019년 3월 20일)]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청년세대, 사회적 약자의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며 기본권 보장과 헌법적 정의를 실현해 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지명한 후보자는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

브리핑은 하지 않았고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참고 자료를 통해 "검찰과 법원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았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는 간단한 지명 이유만 밝혔습니다.

어떤 가치를 담겠다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이헌환/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헌법재판연구원장]
"내가 속해 있고 내가 자리 잡고 있는 그 자리가 어디냐, 그걸 중심으로 판단하는 거지요. 우리가, 우리 국가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어떤 바람직한 국가가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하는 그런 판단에서 현재의 자신의 행위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요약하자면 임명을 해야할 땐 하지 않고, 지명해선 안 될 때는 지명하는 '선택적 월권'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국회가 선출했던 헌법재판관 3명의 임기가 만료됐습니다.

그리고 터진 12.3 비상계엄 사태.

국회는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한창,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정계선·마은혁 이렇게 3명의 후보를 선출했습니다.

[우원식/국회의장 (국회 본회의, 2024년 12월 26일)]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표결 전부터 한덕수 권한대행은 임명 보류를 예고했습니다.

[한덕수/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 (대국민담화, 2024년 12월 26일)]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입니다."

6명만 남은 헌법재판관.

사실상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헌환/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헌법재판연구원장]
"(헌법재판소가) 공석이 돼 있는 상태는 그 자체가 헌정질서에 있어서 심각한 위험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헌재의 심판 불능 상태는 한 총리 탄핵소추로 권한대행을 이어받은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선택적으로 조한창, 정계선 재판관을 임명하며 일부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최상목/당시 대통령 권한대행·경제부총리 (국무회의, 2024년 12월 31일)]
"나머지 한 분(마은혁)은 여·야의 합의가 확인되는 대로 임명하겠습니다."

이렇게 8인 체제가 된 헌재는 "권한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김형두/헌법재판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 선고, 3월 24일)]
"국회가 선출한 3인을 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를 미리 종국적으로 표시함으로써 헌법상의 구체적 작위 의무를 위반하였습니다."

다만 한 총리를 파면하지는 않았고, 업무에 복귀한 권한대행은 계속해서 답을 피했습니다.

[한덕수/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 (3월 24일)]
"<혹시 마은혁 재판관 임명 여부에 대해서는…> 이제 곧 또 뵙겠습니다."

그러더니 이달 초, 3개월 반 만에 말을 뒤집었습니다.

결국 마은혁 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대통령 몫인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마저 기습적으로 지명한 겁니다.

이번엔 반대로 "결원 사태가 반복돼 헌재 결정이 지연될 경우 대선 관리 등에 차질이 불가피하며, 국론 분열도 다시 격화될 수 있다"는 구실을 들고나왔습니다.

[김정환/변호사 (헌법재판관 지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인)]
"국회 선출 몫의 형식적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하신 분이에요. 직접적으로 '자신은 권한대행이기 때문에 소극적 권한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을 직접 하신 분이 갑자기 180도 돌변해서 자신은 '권한대행으로서 대통령의 몫에 임명하겠다' 저는 대한민국 공직자로서의 정말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돌변할 수 있을까 배신감을 느꼈고요.

결국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지명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에 대해, 재판관 9명 전원 일치로 인용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명한다'는 표현을 써놓고는 한 대행 측은 "단순한 의사 표시였다"고 변명했지만, 헌재는 "임명 절차를 공식적으로 개시한 게 맞다"고 일축했습니다.

그러면서 "권한대행에게 대통령 몫 재판관 임명 권한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김정환/변호사 (헌법재판관 지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인)]
"인사청문회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임명이거든요? 심지어는 인사청문이 열리지 않더라도 바로 이 지명자를 임명할 수 있는. 그래서 이번 가처분 결정문에서도 '임명이 확정적이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겁니다."

한 대행의 선택적 월권이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한 셈입니다.

[노희범/변호사·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한덕수 총리가 해야 할 헌법상 책무는 이행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 위헌 결정을 하고, 한덕수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이번 가처분 결정으로 분명히 해서 국가기관이 헌법 질서를 위반하거나 헌법상의 책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소가 이를 확인하면서.."

■ 헌법재판관 '알박기'?

◀ 최경재 ▶

대한민국 법치의 뼈대이자, 가장 상위의 법 규범인 헌법.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을 이끄는 사람들이 이 헌법을 어긴 행위에 제동이 걸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형법 같은 하위 법령을 어기면 처벌을 하는 것과 달리 헌법 위반에 대해서는 그 이상의 책임을 묻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해서라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려 한 걸까요.

1987년 개헌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때입니다.

◀ VCR ▶

[이완규/법제처장 (국회 법사위, 2024년 12월 11일)]
"이 사태가 정리되고 정부가 바뀌면 그때까지 우리 법제처를 잘 지키다가 물러나서 그냥 사인으로 돌아갈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김기표/더불어민주당 의원 - 이완규/법제처장 (국회 법사위, 4월 9일)]
"<헌법재판관이 되고 싶으신가요?> 네, 되고 싶으니까 응했습니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덕수 권한대행처럼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완규 법제처장은 비상계엄이 해제된 밤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 모인 이번 정부 법조 실세 4인방 중 한 명입니다.

[박성재/법무부장관 (국회 법사위, 2024년 12월 6일)]
"사실은 그날 저희들이 다 사의를 표명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국무회의에서 자주 보고 하지만 자리를 못해서 해가 가기 전에 한번 보자…"

[이완규/법제처장 (국회 법사위, 2024년 12월 11일)]
"어쨌든 제가 그 자리에 간 게 참 잘못입니다."

공교롭게도 회동 직후 3명의 참석자들이 휴대전화를 바꿨습니다.

[이완규/법제처장 (국회 법사위, 2024년 12월 17일)]
"글쎄요, 불편한 오해를 받기 싫었습니다. 사용하기 불편한 점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바꿨… 변경… 교체했습니다."

현재 경찰과 공수처의 수사 대상입니다.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검사와의 대화에서 법무부의 검찰 인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반대하며 사표를 제출했던 검찰주의자.

[이완규/당시 검사 (노무현 대통령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 2003년 3월 9일)]
"검찰의 인사위원회는 검찰 구성원들이 많이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검찰의 업무 또는 구성원들의 업무 성격이나 특성은 그 구성원들이 또 제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윤 전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40년 지기로 윤 전 대통령 본인이나 처가와 관련한 소송을 여러 차례 대리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를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이완규/법제처장 (내란혐의 국정조사 청문회, 2월 4일)]
"권한대행께서 여·야 합의를 요청했던 것은 저는 정당한 권한 행사이기 때문에 절대로 이것을 불법이라고 판단할 거라고 믿지 않습니다."

[김형연/전 법제처장·조국혁신당 법률특보]
"이완규 법제처장이 검찰주의자고 그다음에 검찰주의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까? 검찰 권력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우리 헌법 질서를 바라본다면 그게 온당하겠냐는 겁니다."

인사 검증도 순식간이었습니다.

헌법재판관 후보 지명 발표는 인사검증동의서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제출된 지 불과 하루 만에 이뤄졌습니다.

[박균택/더불어민주당 의원 - 이완규/법제처장 (국회 법사위, 4월 9일)]
"<인사검증동의서는 언제 내셨습니까?> 월요일 날 냈습니다. <그러면 월요일 날 인사검증 동의 받고, 화요일 날 발표가 이루어지고 우리가 오늘을 맞았다는 얘기입니까?>"

고위공직 후보 검증 대상이 되면 59쪽 분량에 169개 질문으로 구성된 '공직 예비 후보자 사전 질문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이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각종 자료를 검증하고, 대통령실이 보고서를 작성하면 대통령이 최종 판단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단 하루 만에 끝냈다는 얘깁니다.

[류 혁/전 법무부 감찰관]
"하루 만에 인사 검증을 했다? 그리고 3년 전의 일(법제처장 인사검증)을 가지고 그 인사 검증을 그대로 여기, 그리고 아주 중요한 헌법재판관이라는 자리를 놓고 인사 검증이 끝났다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납득하기 어렵죠."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문형배·이미선 전 재판관 자리에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완규 처장과 함상훈 판사가 왔다면 헌재는 보수 우위 구조로 재편될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선거법, 대장동 개발 비리, 쌍방울 대북 송금 등 여러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만약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재판 진행 여부를 두고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은 헌법에 규정돼 있어서 이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판단을 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내란 사태의 책임을 물어 국민의힘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촉구하는 진정서도 법무부에 제출돼 있습니다.

그래서 야권에선 이번 헌법재판관 후보 지명을 계획적인 '알박기'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조승래/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4월 10일)]
"내란 세력을 헌재에 침투시켜 내란 연장의 진지로 삼으려는 수작입니다. 24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검증을 마쳤다는 말을 누가 믿습니까?"

친일파 재산 환수 규정과 5.18 특별법 합헌, 간통죄와 사전검열 위헌, 호주제와 공무원시험 나이제한 헌법 불합치.

그리고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시대를 반영한 묵직한 결정을 내려며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를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약점도 드러났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세계적 모범으로 꼽히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16명의 재판관을 선출할 때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도록 하는 까다로운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정태호/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헌법재판소 연구위원]
"그러니까 주요 정파가 합의를 하지 않으면 재판관 선출을 못 하는 거죠. 그래서 아주 극단적으로 치우친 인물이라든가 자질이 없는 인물이라든가 그런 경우에는 이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는 것을 꿈을 꿀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자연스럽게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자체가 제 정파로부터 강한 독립성을 향유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 헌법재판소에 붙는 '누가 뽑은 재판관'이라는 꼬리표를 고민할 시점이 됐습니다.

[이범준/서울대 법학연구소 연구원]
"이게 임명 주체로부터 임명해 준 사람들. 그게 국회가 되던 대법원장이 되던 대통령이 되던 그 사람한테 빚을 안고 있고 그 사람한테 빚을 갚아야 된다는 이 문제는 상당히 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순한 임명 구조가 이 재판관들이 누구 신세를 갚았다 안 갚았다. 누구의 영향을 받는다는 의심을 계속 낳고 있는 겁니다."

최경재 기자(economy@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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