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한입 우리말]찢었다

경향신문
원문보기

[한입 우리말]찢었다

속보
장동혁, 역대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 경신…17시간 12분 돌파
요즘처럼 ‘찢다’라는 단어가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는 시대가 있었을까. 공연 영상 댓글 창과 놀라운 개인기를 칭찬하는 말에서 ‘찢다’의 드높은 인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찢다’가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정말이지 ‘찢다’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찢다’는 손이나 날카로운 도구로 붙어 있는 것을 잡아당기거나 째서 갈라놓는다는 물리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다. 종이나 천을 찢는 동작처럼, ‘찢다’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물리적 행위를 나타낸다. ‘찢다’가 가진 이러한 속성 때문에, 사람들은 숨겨진 매력이나 실력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상황을 ‘찢었다’란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찢다’의 의미 영역은 놀라울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무대, 랩, 고막, 연기, 춤선 등 다양한 영역을 찢고 있다. 무대를 ‘찢었다’에서 ‘찢다’는 물리적인 파괴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연기나 뛰어난 실력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특히 귀를 강하게 사로잡는 가창력을 묘사할 때 쓰는 ‘고막을 찢었다’는 이제 하나의 관용어처럼 자리 잡은 듯하다.

‘찢었다’가 완전한 독립성을 획득해 감탄사처럼 홀로 쓰이기도 한다. 굳이 어떤 대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그저 ‘찢었다!’ 한마디만으로도 놀라움이나 감탄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찢었다’의 기세에 눌려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던 ‘대박’이나 ‘쩐다’ 같은 감탄사들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듯하다.

사실 방송 등을 통해 처음 ‘찢다’란 표현을 접했을 때 파격적이고 거친 말투에 솔직히 조금 놀랐다. ‘찢다’의 본래 의미를 넘어서 ‘굉장한’이란 긍정적 의미로 확장된 것은 놀라운 언어적 변화다. 물론 정체불명의 신조어 사용은 우려되는 부분이지만 ‘찢다’처럼, 새로운 세대의 언어적 상상력이 우리말에 활력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듯하다. 다만 이러한 언어 변화가 무분별하게 확산되어 세대 간 소통을 가로막는 것은 아닐지 걱정은 된다. 나이 탓인지 걱정만 많다.

김선경 교열부 선임기자 sunkim@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주 3일 10분 뉴스 완전 정복! 내 메일함에 점선면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