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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갈 힘도 없는데 어떻게 가요”...비대면 진료 받은 환자, 약국은 직접 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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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3배나 급증
의사에게 처방전 받아도
약국 방문해야 수령 가능
“밖에 나갈 힘도 없는데
이럴거면 비대면 왜 하냐”



비대면진료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지만 ‘처방약 배송’이 막혀 있어 제도 확산이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를 직접 만나지 않고도 진단과 처방은 받을 수 있지만, 정작 환자 3명중 1명은 약을 받지 못해 불편을 겪었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약사법상 모호한 지침 때문이다. 진료는 의료기관에 방문하지 않아도 가능하나 약은 반드시 약국에 들러야만 받을 수 있다. 비대면 진료는 최근 2~3년 새 코로나19 대유행과 의정갈등 국면에서 3배 이상 늘었는데, 관련 지침도 이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비대면진료 플랫폼인 닥터나우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11만8000건이었던 진료요청 건수는 올해 1분기 32만건으로 3배 가량 늘었다. 대부분 시급하게 병원을 갈 필요가 없는 경증 질환으로, 환자들도 비대면 진료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부 질환별로는 고혈압·이상지질혈증·통풍 등의 만성질환 진료가 약 5배, 식도염·소화불량 등 소화기계 질환과 비염·알레르기·감기 등 계절성 질환이 3배, 아토피·여드름 등 피부질환과 생리통 등 여성질환이 2~3배, 소아청소년 질환이 2배씩 각각 증가했다.

또 다른 플랫폼인 나만의닥터의 경우도 올해 1분기 기준 만성질환과 소아질환, 호흡기질환 진료건수가 모두 전년 동기보다 3~4배씩 늘었다.

환자 수요가 늘어나자 병의원과 약국 등의 참여도 활발하다. 올 들어 닥터나우와 제휴를 맺은 의료기관은 지난해 1분기보다 28%, 약국은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나만의닥터도 제휴 약국이 3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비대면으로 진료를 받았음에도 약을 제때 받지 못해 불만을 토로하는 환자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나만의닥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약 수령 실패율은 30%로 집계됐다. 여기서 30%란 ‘약국에 처방전을 낸 후 조제를 거절당한 수치’로, 아예 처방전 접수 자체를 거부 당해 조제 요청을 포기한 경우까지 합하면 실패율은 40%가 넘는다.


닥터나우에서도 진료를 마친 환자들의 5명 중 1명이 약을 받지 못했다. 특히 평일 주간(16%)보다 평일 야간·휴일(22%)일 때 더욱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달 닥터나우를 이용했다는 A씨는 “심한 감기에 걸렸는데 생후 2개월된 아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어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며 “처방전까지 받았는데 약국에 가야 약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 결국 약을 못 먹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 B씨는 “몸살기운이 심하고 밖에 나갈 힘이 없어 앱을 켰는데 1km 떨어진 약국이 연결돼 황당했다”며 “그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면 애당초 병원에 직접 찾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에 거주 중이라 밝힌 C씨는 “진료까진 좋은데 주변에 늦은 시간에 문 연 약국이 없어서 결국 처방전만 받고 끝났다”며 “병원에 애꿎은 돈만 쓴 게 돼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조제 가능한 약국을 찾는 과정에서 불쾌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다. 나만의닥터에 따르면 비대면진료를 마친 후 약 조제를 수락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평일 5~6시간, 주말 7~8시간이다. D씨는 “처방전을 받아줄 약국을 찾아 계속 전화를 돌려야 하는 게 불편하다”며 “경증환자들의 응급실 출입을 제한할거면 심야시간이나 주말에 약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약국의 운영시간 종료나 조제 거부 등으로 치료가 종결되지 못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약 배송이 허용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앞서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는 진료뿐 아니라 약 수령도 비대면으로 가능했던 바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면서 약 배송을 배제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며 “환자에게 초래될 위험성만 놓고 따지면 비대면진료보다 약 배송이 훨씬 안전한데 이를 금지하는 건 상식 밖의 일”이라고 말했다.

약 배송과 더불어 비대면진료의 법제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시범사업 형태로 이뤄지고 있어 언제 중단되거나 어떻게 정책 방향이 바뀔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21대 국회에서는 비대면진료와 관련해 7건의 법안이 발의되고 소관 상임위에서 여러 차례 논의가 진행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선 국민의힘이 2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개별 기업이 기술 개발에 과감히 투자하려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에서 법제화 작업은 꼭 필요하다”며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비대면진료를 허용하고 여기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해야 한다’는 대선 공약이 제시된 만큼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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