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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미자가 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맥을 이음’에서 열창하고 있다. 쇼당이엔티 제공 |
“꿈 찾아 걸어온 지난 세월 / 괴로운 일도 슬픔의 눈물도 가슴에 묻어 놓고 / 나와 함께 걸어가는 노래만이 나의 생명.”
가수 인생 66년, 마지막 공연의 마지막날인 27일 오후 무대의 막이 오르면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84)가 나타났다. 1990년 본인이 노랫말을 쓴 ‘노래는 나의 인생’을 부르며 등장한 이미자에 이어 후배 가수 주현미와 조항조, 방송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 3>와 <미스 트롯 3>의 진 김용빈과 정서주가 노래를 함께 부르며 나타났다. 어느덧 무대에는 전통가요의 맥을 잇는 가수 3대가 나란히 섰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후 66년 동안 대중들과 함께 울고 웃어 온 이미자가 이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 - 맥(脈)을 이음’을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날 무대에서 이미자는 ‘은퇴’라는 두 글자를 직접 언급하는 것은 꺼렸다. 하지만 본인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마지막 무대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이미자는 “거창하게 은퇴까지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는 무대에 안 오르는 게 아니라 못 오르는 것”이라며 “음반이나 콘서트는 더 할 생각이 없고, 후배가수들을 위한 조언이나 오늘 함께한 후배 가수의 게스트 정도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맥을 이음’이란 공연 타이틀에 걸맞게 후배 가수들이 60년 넘도록 사랑받아온 이미자의 레퍼토리를 연이어 불렀다. 주현미가 ‘아씨’와 ‘여자의 일생’을, 조항조가 ‘흑산도 아가씨’와 ‘여로’를 열창할 때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뒤이어 정서주가 ‘눈물이 진주라면’과 ‘황포돛대’를, 김용빈이 ‘아네모네’와 ‘빙점’을 소화했다. 노래가 흐를 때 배경에는 이들 노래가 주제곡으로 쓰인 1960년대와 70년대 흑백 영화와 TV드라마 속 장면들이 나와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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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항조, 주현미, 이미자, 정서주, 김용빈(왼쪽부터)가 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맥을 이음’에서 열창하고 있다. 쇼당이엔티 제공 |
하늘색 드레스로 갈아입은 그는 66년 전인 1959년 데뷔곡 ‘열아홉 순정’을 시작으로 ‘황혼의 부르스’, ‘기러기 아빠’를 소화했다.
26~27일 이틀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총 6000석의 객석이 금세 매진됐다. 세종문화회관은 1989년 데뷔 30주년 때부터 5년 단위로 대형공연을 했던 곳이다. 앞으로 다시 볼 수 없을 ‘살아있는 가요계 전설’의 공연을 찾은 이들은 주로 머리가 허옇게 새고 허리가 굽은 고령층 관객이 대부분이었다. 대중가요는 사람을 ‘그때 그 시절’로 순간이동 시키는 타임머신 같은 마법의 힘이 있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이자, 최고로 노래를 잘 하는 가수의 공연이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사랑받은 대중가요는 그 자체가 민중의 역사나 다름없다. 공연 후반부에는 출연 가수들이 1920년대 ‘황성옛터’부터 시작해 ‘귀국선’, ‘해방된 역마차’, ‘전선야곡’, ‘가거라 삼팔선’ 등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격동의 역사를 노래로 들려줬다.
공연 진행자 황수경 아나운서가 ‘팬들께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하자, 이미자는 “여러분이 계셨기에 그 은혜로 오늘까지 행복한 무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라며 “감사하다는 말씀 가지고는 부족할 정도”라고 말했다. 으레 팬들에게 하는 공치사가 아니었다. 이미자는 “66년 동안 가슴 아프고 못 견딜 정도의 시간도 많았다”며 대표곡 ‘동백 아가씨’의 금지곡 지정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35주 동안 방송 차트 1위하던 곡이 하루 아침에 금지곡으로 묶였을 때 제 심정은 정말 죽어야 될까 하는 마음이었다”라고 했다. 이어 “그 곡이 22년 만에 해금됐고 그건 여러분의 사랑과 은혜 덕분”이라고 말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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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미자가 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맥을 이음’에서 열창하고 있다. 쇼당이엔티 제공 |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이 노래 ‘동백아가씨’가 울려퍼질 때였다. 배경 영상으로 동백꽃 꽃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이미자는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무대에서 불렀을 그 노래를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불렀다.
데뷔 50주년이던 2009년 발표한 ‘내 삶에 이유 있음은’을 거쳐 관객 3000명과 함께 ‘떼창’으로 불려진 ‘섬마을 선생님’을 끝으로 공연은 마무리됐다. 공연이 끝날 때 무대 화면에는 “오늘을 오래 오래 기억할게요”라는 문구가 지나갔고, 퇴장하던 한 관객은 “이제 세종문화회관은 올 일이 없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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