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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말이 틀리면 생각도 틀린다 [김백민의 해법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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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말이 틀리면 생각도 틀린다 [김백민의 해법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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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가 지난 26일 밤 강원 인제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가 지난 26일 밤 강원 인제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김백민 |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기후위기의 시대다. 폭염, 홍수, 산불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심각한 현실을 과연 올바른 언어로 담아내고 있을까?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현실 인식의 틀이자 행동의 기반이 된다. 부정확한 용어는 왜곡된 인식을 낳고, 그릇된 정책으로 귀결된다. 기후위기 대응의 첫걸음은 정확한 언어의 확립에서 시작해야 한다.



뉴스나 보도에서 흔히 접하는 ‘이상기후’라는 표현이 그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이 용어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 영어로 직역하면 ‘abnormal climate’ 정도가 되겠지만, 영미권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개념이다. 기후과학자들은 그 대신 ‘극한 기상(extreme weather)’이나 ‘기후 극단(climate extrem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과학적 접근에서는 이 둘을 지속 기간에 따라 구분한다. 수주에서 수개월 이상 이어지는 폭염이나 가뭄은 ‘기후 극단’으로, 며칠간 집중되는 강수나 폭설처럼 단기적인 사건은 ‘극한 기상’으로 분류한다. 2023년 한달 가까이 이어졌던 서울의 40도 폭염은 전형적인 ‘기후 극단’이며, 2~3일간 강릉에 내린 폭설은 ‘극한 기상’에 해당한다.



‘이상기후’라는 말은 이러한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마치 모든 극단적 기상 현상이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업혁명 이전에도 극단적 기후 현상은 반복되어 왔다. 17세기 조선의 반세기 가뭄이나, 14세기 유럽을 뒤덮은 ‘막달레나 대홍수’처럼 말이다. 인간에 의한 온실효과가 본격화되기 훨씬 이전에도 자연은 충분히 극단적이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혼용도 문제다. 전자는 평균기온 상승이라는 특정 현상이고, 후자는 기온뿐 아니라 강수, 해수면 등 전반의 장기적 변화를 뜻한다. 그럼에도 “난방비 줄어 좋다”는 식의 단순화가 여전하다. 하지만 현대의 기후변화는 폭염 사망, 태풍 강도 증가, 해수면 상승, 심지어 북극 한파까지 복합적 재난을 수반한다. 이런 다층적인 현실을 ‘온난화’라는 단일 개념으로 축소하는 건 문제의 복잡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기후위기’라는 표현은 과학적 용어라기보다는 사회적·정치적 언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20ppm을 넘어선 이 시대, 그 표현은 재난의 일상화와 생존 위협을 강조하려는 전략적 수사에 가깝다. 물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인 도구지만, 최근에는 이 표현이 너무 자주,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남용은 기후과학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시민의 피로감과 냉소를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2022년 여름, 서울 도심에 하루 만에 38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많은 언론은 이를 “기후위기가 만든 재난”이라 표현했다. 물론 극한 강수의 발생 가능성이 기후변화로 인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피해의 상당 부분은 강남 지역의 노후한 배수 시스템과 도시계획의 허점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원인을 전적으로 기후위기로 돌리는 것은 행정적 책임과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결과를 낳는다. 기후위기는 모든 문제의 만능 설명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사용은 오히려 책임을 흐리고 행동을 지연시킬 뿐이다.



언어는 현실 인식의 창이자, 행동의 나침반이다. 기후위기라는 복잡한 퍼즐을 풀기 위해서는, 그 언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극한 기상’을 ‘이상기후’로 뭉뚱그리지 않고, ‘기후변화’를 단순히 ‘온난화’로 축소하지 않는 것. 이 작은 정밀함이야말로 효과적인 기후 대응의 출발점이다. 기후위기 시대, 언어의 재정립은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대응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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