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단독] 김수로 "연극 '시련', 아무나 못해... 최고만 모았다"(인터뷰)

한국일보
원문보기
서울구름많음 / 12.4 °
마녀재판 소재로 한 아서 밀러의 작품 '시련'
예술의 전당 무대 올린 배우 겸 프로듀서 김수로 "미국·영국 찾아가 '시련' 무대 다 봤다"
장나라 아버지인 배우 주호성, 연출자 신유청 극찬
김수로가 연극 '시련' 무대에 오른 모습.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수로가 연극 '시련' 무대에 오른 모습.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시대를 관통하는 현대 고전으로 평가받는 아서 밀러의 작품 '시련'이 6년 만의 재연 무대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호평 속에 순항 중인 '시련'은 지난 4월 9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개막했다. 김수로는 연기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배우들과 실력파 연출자·제작진을 모아 큰 무대로 옮긴 이번 연극을 야심차게 준비했다.

'시련'은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실제로 일어난 마녀재판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마을의 소녀들이 숲 속에서 춤을 추며 벌인 장난이 온 마을을 뒤집어 놓고, 진상을 밝히기 위해 재판이 벌어진다. 소녀들의 거짓말로 인해 존 프락터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마녀 혐의로 고발되면서 존의 삶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무대 위의 긴장감과 밀도 있는 서사, 배우들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는 물론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마녀사냥과 집단적 광기는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위험한 사회현상 중 하나다.

최근 배우 김수로 강필석 박은석 주호성 등은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연극 '시련'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해당 인터뷰는 SBS '모닝와이드 3부- 유수경 기자의 연예뉴스'를 통해서도 일부 공개됐다.

먼저 김수로는 확장된 극장 규모에 대해 언급하며 "2019년도에 300석 극장에서 해봤다. 이번엔 18일간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되는데, 소극장이야 모르겠지만 대극장에서 보는 '시련'은 18년 뒤에나 또 가능할 수도 있다"며 "이러한 연극이 대배우들과 함께 향연을 펼치는 대작으로 제작되기가 쉽지 않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수로는 "지금도 세일럼에 가면 페리스 목사 무덤이 실제로 있다. 저는 고전 중에서는 '시련'을 제일 사랑한다. 대학교 때 이 작품으로 연기를 배웠다고 생각하는데, 그땐 존 프락터 역을 했었다"며 "당시 임원희, 김명민 이런 좋은 배우들하고 같이 해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라고 회상했다.

김수로가 연극 '시련'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수로가 연극 '시련'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시련'의 주인공 존 프락터는 실존 인물이다. 그는 마녀재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고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 역공을 당하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끝내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아서 밀러의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각색된 부분들도 존재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매카시즘을 비판했다.

자일즈 코리 역을 맡은 주호성은 배우 장나라의 아버지이자 1969년 연극 무대를 통해 데뷔한 엄청난 경력의 배우다. 김수로는 그를 섭외하기 위해 특히 공을 들이기도 했다. 주호성은 "법정 장면이 나오는 연극은 무조건 재미있다. '시련'은 재판이 주제다. 미국 북동부 세일럼이라고 하는 어촌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으로 인해 19명이 죽게 된다. 그때 한 명의 노인이 죽게 되는데 그게 제 역할"이라며 "마녀사냥은 오늘날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사건 아닌가. 현실과도 맞닿아 있기에 굉장히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로는 "존 프락터가 자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내준다. 생명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이름을 다른 사람들한테 공개해서 나의 명예를 버릴 것인가에 대한 갈등을 한다. 그 역시 사람이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마지막에 서명지를 찢으며 '이름만큼은 남겨주십시오'라고 하는 대사가 있다. 그게 가장 인상 깊은 대사"라고 밝혔다.


존 프락터를 연기한 강필석은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해서 싸우는 이야기다. 극 중에서 저 역시 죄인인데,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주장하지만 밝히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작품을 보시면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인간에 대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메시지가 큰 작품"이라고 전했다.

사무엘 페리스 역을 맡은 박은석은 "우리 연극은 다양한 주제들이 있다. 물론 법정 얘기도 있지만 사랑 원망 복수 욕망 간음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풀어나가는 과정도 재밌지만 그 안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목숨까지 바쳐서 정직함과 영혼을 지키려고 하는 인물도 있다. 이 세상이 참 다양한 에너지가 모여서 충돌하고 시너지를 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연극 '시련'"이라고 설명했다.
무대 위에서 열연 중인 배우들.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무대 위에서 열연 중인 배우들.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수로는 "한 번도 얘기 안 했던 건데, 제가 15년 간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연하는 '시련'을 다 찾아가서 봤다. 보고 가장 좋은 부분들을 수집하고, 대한민국에서 '시련'을 올릴 때 내가 이러한 방법으로 프로듀싱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 과정의 결정체가 지금 나온 거다. 공들여서 잘 만들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충분히 그 이상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출에 사비까지 털어 제작에 나선 그는 "늘 무대에 작품을 올리면서 대출을 받는다. 물론 상환은 그때그때 잘한다"며 웃었다. "이번엔 대작이다 보니 제작비가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관객들에게 반드시 보여드리고 싶은 작품이어서 열심히 준비했죠. '시련'을 예술의 전당에서 보여드린다는 것은 저에게도 의미가 깊으니까요."

배우 활동을 하면서 연극 프로듀서로도 15년째 활동 중인 김수로는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들이 있다.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많은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다. 내가 기도를 하면서 하느님이 나에게 어떤 재주와 능력을 주셨을까 생각을 해봤다. 연기에 대한 힘을 계속 잃지 않으려면 연극을 계속하는 게 좋겠더라. 그래서 프로듀서를 하게 됐다. 좋은 연극을 보여드리고, 후배들도 양성하고, 저 역시 계속 무대 위에서 살아있으면 드라마든 영화든 갔을 때 어색하지 않게 좋은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고백했다.

주호성은 "김수로 대표가 대단하다. 순수 연극을 가지고 이렇게 기획을 한다는 것이 사실은 아마 속으로는 많이 떨리고 불안할 것"이라고 첨언했고, 김수로는 "두 달 동안 (긴장감에) 악몽을 꿨다"면서 웃었다.

김수로는 배우들에 대해서도 극찬했다. "이 연극은 보통의 연예인분들이 할 수가 없어요. 무대에서 힘이 있지 않고선 3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버틸 수가 없죠. 지구력이 떨어져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무대를 할 줄 알고 잘 쓸 줄 아는 배우들, 그런 기술자들이 이 작품을 해야 더더욱 빛이 납니다. 그래서 캐스팅도 직접 나섰고요."

주호성은 "이번 결정에서 제일 잘했다 생각하는 부분은 연출자의 선정이다. 신유청이라는 좋은 연출가가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다. 그래서 작품이 아주 쫀쫀하게 잘 나왔다"라고 부연했다. 김수로 역시 이에 동의하며 "연극으로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연출가다. 다른 분들도 몇 분 있겠지만, 배우가 아닌 프로듀서의 입장으로 바라본다면 신유청 연출이 제일 분석이나 해석력이 뛰어나지 않을까 싶다"라고 칭찬했다.

무대 위 23명 배우들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연극 '시련'은 27일 마지막 공연을 올린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