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동상 어떻게 볼 것인가…전문가 인터뷰
박삼철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감독
조은정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교수
누가·누구를·왜 세우느냐 고민 필요
기억과 기념에 대한 논의 자유로워야
박삼철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감독
조은정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교수
누가·누구를·왜 세우느냐 고민 필요
기억과 기념에 대한 논의 자유로워야
편집자주한 인물의 공적을 기리고 후세에 그 뜻을 전하기 위해 세운다는 동상. 누군가의 생전 모습을 영원히 박제해 기리는 일은 단순한 조형물 제작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현대 대한민국은 누구의 동상을 얼마나 많이 세웠을까. 아시아경제는 1990년부터 이달까지 포털사이트, 지방자치단체 누리집 등에 담긴 실존 인물의 동상 제막식 개최 기록을 분석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옛사람의 동상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동상이 세워졌던 방식을 고려해 '누가, 누구를, 왜 세우느냐'에 맞춰 비평적인 독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누군가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동상 왜 만들까…당사자 아니라 시대가 원해서
전문가들은 동상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상이 가지는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상을 건립하는 목적이 단순히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상을 건립하는 문화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됐는데, 이 때문에 대부분의 동상은 선현의 뜻을 본받자는 취지로 건립됐다. 결국 당사자가 아니라 시대가 요구해 동상으로 건립된다는 것이다. 장군, 독립운동가, 전쟁영웅의 동상이 우리나라에 유독 많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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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을 만드는 작업이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다 보니 인물들이나 인물을 재현하는 방식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동상이 조형물로서의 기능을 하려면 문자나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바라보는 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동상들은 국가적인 기념물의 일환으로 세워진다"며 "동상을 제작하는 방식도 영웅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을 고집하다 보니 이 사람의 동상이나 저 사람의 동상이나 봐도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교과서에서 보는 위인들의 재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끊이지 않는 공과 논란…비평적 독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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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화환이 놓여 있다. 아시아경제DB. |
여기에 논란이 가중되는 것은 '누가·누구를·왜 세우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동상으로 세우는 인물에 대한 공과 논란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세종대왕처럼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람의 동상은 세우는 데 반대에 부딪힐 일이 많이 없지만, 한 사람의 역사적 평가가 끝나기 전 만들어지는 동상은 찬반 논란에 휩싸이기 쉽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2020년대 초 흑인 인권 운동이 일어나면서 과거 위인 동상이 대거 참수당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에는 위인이었지만 현대에는 흑인 노예를 부리고 노예제에 찬성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물의 공과로 한 시대의 표상이 엎어지기도 한다.
경상북도에 건립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등 우리나라에서 최근 논란을 빚는 동상들은 특정 인물의 출신 지역에 세워진다는 특징이 있다. 제1공화국 당시 세워진 인물 동상을 연구한 조 교수는 "예전에는 국가 단위의 사업으로 세워지는 동상이 많았다면, 요즘은 지역성이 더 크게 작동하는 것 같다. 권력이 중앙에서 지자체로 이동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본다"며 "그 지역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인물의 동상을 세우거나, 관광목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할 수 있는 동상을 만드는 것 두 가지 목적이 가장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동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고민하는 '비평적 독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특히 지자체나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건립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 사회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해 논의하는 창구를 열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인물을 선정할 때부터 동상으로 세울 때까지 참여하는 주체가 누가 있느냐"라며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선정하고 예술가들은 기능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춤출 수 없으면 나의 혁명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 그들만의 메모리얼이 되다 보니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좋게 보는 시각, 나쁘게 보는 시각은 역사적 평가가 끝나기 전까지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를 모두 살리면서 도시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누가 왜 세우려고 하는가'를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봤다. 조 교수는 "결국 동상을 세우는 목적이 공공성에 있는지, 특정 주체의 이익이나 욕망에 따른 것인지를 가려보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은 기억과 추모의 방식…계속 이야기할 수 있어야
동상을 두고 벌어지는 담론은 최종적으로 '어떻게 떠나간 사람을 기억할 것인가'를 향한다. 동상을 우후죽순 세우다가 최근 아예 인물 동상은 필요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은, 결국 시대에 따라 기억의 방식이 변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토론이 끊이지 않아야 동상을 건강하게 바라보는 일이 완성된다.
조 교수는 "굳이 인물을 세워야 기억이 될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광개토대왕 동상이 없어도 우리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기억하고 존경하는 것과 같다"며 "떠나간 사람을 추모하는 방식이 예전에는 무덤에 찾아가는 성묘였다면, 요즘은 다양해졌다. 이처럼 기억이나 기념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면 동상처럼 누군가를 영원히 물질로 남겨두는 방법에 목매지 않을 수 있을 것이고, 더 자유로운 이야기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동상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생각을 바꿔 동상만 모아두는 장소를 서울에 만든다면 그들을 보는 시각이 지금과 또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그들을 어떻게 계속해서 생각할 것일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아쉽게도 이런 논의가 언론 등에서 한 번도 수면 위로 올라온 적이 없었다.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1990년부터 포털사이트, 지방자치단체 누리집에서 '동상'과 '제막'을 포함한 키워드의 보도자료와 시정 소식을 전수조사했습니다. 이를 통해 1990년부터 올해 이달 4월까지 개최된 동상 제막식의 기록을 정리했습니다.
흉상이나 부조는 제외했으며, 실존 인물을 본 따 건립된 동상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동상을 제외한 평화의 소녀상, 노동자 동상 등은 분석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등 교육기관에 건립된 동상도 제외하고 공원, 기념관 등 공공장소에 건립된 동상만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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