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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문 때 한국도 가라”고 오바마에 촉구한 지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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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57회>]

평생 한미동맹 위해 노력한 아미티지 전 부장관 사망
날카로운 눈매, 딱 벌어진 어깨... 프로 레슬링 선수 연상
2001년 방한 때 좌파단체의 계란 투척사건에
“한국에 다른 목소리 있어서 기쁘다”며 웃어 넘겨
지난 23일 아산정책연구원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해방 8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주제로 아산 플레넘(Asan Plenum)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북동 아시아의 비전’을 다루는 세션의 사회자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13일 사망한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에 대한 추모사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아미티지 전 부장관은 일본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한미 동맹의 강력한 지지자였습니다. 그는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으로 활동하면서 주한 미군을 비롯한 한미 동맹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12월 10일 청와대에서 방한한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접견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대중 대통령이 2002년 12월 10일 청와대에서 방한한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접견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면서 빅터 차 석좌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계획에는 한국이 제외돼 있었습니다. 그즈음에 아미티지가 빅터 차에게 전화를 걸어와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에 가는데 한국이 빠져 있다는 게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빅터 차가 “그런 것으로 안다”고 하자, 아미티지는 “그건 잘못된 일이다. 한국이 오바마 아시아 방문 일정에 포함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미티지, 빅터 차와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 세 사람이 워싱턴포스트에 공동으로 기고하게 됐습니다. 한국이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결과 오바마 대통령이 2014년 4월 25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네 번째 방문하게 됐습니다. 빅터 차는 이게 모두 아미티지 덕분이라며 한국 국민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빅터 차가 상기시킨 2014년 동북아 상황

빅터 차의 언급은 10여 년 전의 동북아 상황을 돌아보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바마가 2013년 1월 2기 임기를 시작할 때의 동북아 정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때문에 어수선했습니다. 아베는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河野) 담화를 수정하려고 했습니다. 이어서 2013년 12월 26일 집권 1주년을 맞아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습니다. 야스쿠니는 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 14명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어 그의 참배는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습니다. 미국도 이에 대해 실망을 표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베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4년 4월 25일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바마는 당시 한국을 제외하고 일본,말레이시아, 필리핀을 순방할 계획이었으나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이 주도해 한국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 관철시켰다./청와대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4년 4월 25일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바마는 당시 한국을 제외하고 일본,말레이시아, 필리핀을 순방할 계획이었으나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이 주도해 한국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 관철시켰다./청와대


그의 야스쿠니 참배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일본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2박 3일간 일본을 국빈(國賓)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오바마의 아시아 순방 일정은 일본,필리핀,말레이시아 순방으로 계획되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한국과 일본을 모두 잘 아는 아미티지가 나선 겁니다. 아미티지가 빅터 차, 마이클 그린과 함께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글은 “오바마가 집권 2기 첫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은 방문하고 한국을 건너뛰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당혹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했습니다. 여기엔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에 미국이 면죄부를 주는 형식의 방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아미티지는 분명 미일관계를 중시하는 지일파(知日派)지만, 아베의 일본 극우 세력을 의식한 우경화를 걱정했습니다. 아베가 동북아시아를 다시 과거의 역사 전쟁으로 끌고 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이 때문에 아미티지는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 전인 2013년 11월 그의 역사 인식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당시 도쿄에서 자민당 고위 관계자와 만나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노 담화’를 수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또 아베가 야스쿠니를 참배할 경우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충격을 줄 것”이라고 미리 반대의 뜻을 밝혔습니다.

국무부 부장관으로 2001년 방한

제가 아미티지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5월 그의 방한을 취재하면서부터입니다. 2001년 1월 출범한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는 클린턴 전 민주당 행정부와는 차별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ABC(Anything but Clinton)로 불렸는데, 대북 정책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은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아미티지는 제임스 켈리 동아태 차관보와 5월 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약 30시간의 방한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첫날 김대중 대통령,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을 예방한 후, 기자간담회, 한 장관 초청 만찬에 잇달아 참석하는 등 빡빡한 일정을 보냈습니다.

아미티지는 방한 후 첫 일성으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 과정과 미사일 방어 체제(MD)를 포함한 새로운 전략 구상을 설명할 예정”이라고 자신의 두 가지 목적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좌파 단체는 아미티지가 대북 정책 조율보다는 미사일 방어 체제를 강요하기 위해서 방한했다며 집회를 열어 우리 정부와 주한미대사관을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NMD(국가미사일방어체제)·TMD(전역미사일방어체제)저지와 평화실현 공동대책위’는 “아미티지의 방문 목적이 미사일 방어 체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지와 참여를 강요하기 위한 것은 두말 나위가 없다”며 인천공항과 서울 도심에서 ‘아미티지 방한 규탄 결의대회’를 가졌습니다.

2001년 5월 10일 방한 중인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한 가운데)이 이날 아침 발생한 좌파 단체의 달걀 투척을 화제로 환담하고 있다. 아미티지는 “어느 사회건 다른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서울이 그런 사회라는 것이 매우 기쁘다”며 웃어넘겼다./조선일보

2001년 5월 10일 방한 중인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한 가운데)이 이날 아침 발생한 좌파 단체의 달걀 투척을 화제로 환담하고 있다. 아미티지는 “어느 사회건 다른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서울이 그런 사회라는 것이 매우 기쁘다”며 웃어넘겼다./조선일보


2001년 5월 10일 한미 외교안보 간담회에서 이날 아침 발생한 좌파단체의 계란 투척 사건의 여파로 외교부 관계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왼쪽부터 최영진 외교정책실장, 임성준 차관보, 한사람 건너 김성한 북미국장, 천영우 장관 보좌관./조선일보

2001년 5월 10일 한미 외교안보 간담회에서 이날 아침 발생한 좌파단체의 계란 투척 사건의 여파로 외교부 관계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왼쪽부터 최영진 외교정책실장, 임성준 차관보, 한사람 건너 김성한 북미국장, 천영우 장관 보좌관./조선일보


아미티지 방한 이틀째인 10일 과격 시위도 벌였습니다. 10일 오전 7시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 호텔 입구에서 ‘NMD·TMD 저지와 평화실현 공동대책위’ 소속 시위대 5명이 방한 중인 아미티지 일행의 차량에 계란 4~5개를 던졌습니다. 이 차는 켈리 차관보 등이 타고 국방부로 향하고 있었는데, 계란 2개가 차량 왼쪽 전조등과 왼쪽 앞바퀴에 맞았습니다. 당시 아미티지는 호텔 주변에서 조깅을 하고 있었고, 오전 9시쯤 별도의 차량으로 국방부로 이동했습니다.


아미티지는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안보 간담회 서두에 외교부 관계자가 ‘달걀 사건’에 대해 사과하자, “어느 사회건 다른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서울이 그런 사회라는 것이 매우 기쁘다”며 웃었습니다. 자신이 탄 자동차에 달걀을 맞은 켈리 차관보는 “여러 번 한국에서 환영받았지만 오늘 같은 환영은 처음”이라고 뼈 있는 말을 했습니다.

해사 출신으로 월남전 세 차례 복무

당시 저는 이런 대화를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었는데, 아미티지가 ‘반미 시위에 신경 쓸 것 없다’며 여유있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긴장한 한국측 관계자들을 안심시켜야겠다는 자세가 읽혔습니다. 사실 그날 취재 현장에서 놀랐던 것은 아미티지의 프로 레슬링 선수를 연상시키는 근육질 체격이었습니다. 1967년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월남전에 세 차례 파견됐던 군인 출신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키 180cm에 체중은 100kg 이상으로 보였습니다. 강인해 보이는 대머리, 날카로운 눈매, 딱 벌어진 어깨, 앞으로 튀어나온 가슴...마치 체격이 바싹 마른 남자 2명을 합쳐 놓은 듯했습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자신의 책에서 “큰 체격에 대머리가 매우 단단하게 생겨서 세계 레슬링 대회에 나가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고 한 그대로였습니다. 아미티지는 우락부락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에서는 파월 국무장관과 함께 힘보다는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온건파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국가 간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그의 가치관은 한미 동맹에도 적용돼 1980년대 미 국방부 부차관보로 한미관계에 관여한 후, 미국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 활동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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