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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 관중, 광주 향해 조롱 아닌 박수…'못 먹어도 고!' 0-7 대패? 이정효여서 가능했다 [제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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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나승우 기자) 어느 축구 경기에서 7-0이라는 점수가 나온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패한 팀에 의문을 품거나 조롱할 것이다.

하지만 알힐랄전 0-7 패배를 당한 광주FC는 오히려 박수 받아 마땅한 팀이었다. 결과는 아쉽지만 이정효 감독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정효 감독이 이끄는 광주는 26일(한국시간) 사우디 제다에 위치한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알힐랄과의 2024-2025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8강전서 전반 3골 후반 4골을 내준 끝에 0-7로 참패했다.

단판으로 치러진 이번 8강전서 '사우디 최강'을 상대로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무릎을 꿇은 광주는 K리그 시도민 구단 최초의 ACL 4강 진출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예상했던대로 어려운 경기였다. 광주는 전반 5분까지 잘 버텼다. 하지만 6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세르게이 밀린코비치 사비치에게 실점을 내줬다. 전반 25분에는 레오나르두에게 추가골을 허용했고, 33분 살렘 알도사리에게 재차 실점했다.

후반전도 마찬가지였다.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에게 네 번째 골을 내준 광주는 말콤, 나세를 알도사리, 압둘라 알함단에게 연속 실점을 얻어맞으며 '세계의 벽' 앞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광주가 못 싸웠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오히려 존중 받을 만했다.



광주는 3년 전까지만 해도 K리그2 소속이었다. 당시만 해도 광주가 ACL 무대를 누빌 거라는 상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런 광주를 이정효 감독이 다듬고 성장시켜 K리그1 승격, ACLE 진출을 이끌어냈다.


언제나 약팀의 입장에 있었던 광주였지만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이 감독의 철학에 맞게 선수들도 변화했고, 그 철학을 어떤 상황에서든 고수하며 '광주만의 축구'를 만들었다.

유럽 빅리그에서 뛰던 선수들로 이뤄진 알힐랄을 상대로 90분 내내 '맞불'을 놓을 수 있는 배짱이 없었다면 애당초 광주가 요코하마 F.마리노스를 7-3으로 꺾었던 것도, 16강에서 비셀 고베에게 3-2 대역전승을 거뒀던 것도, 대회 8강에 오르는 일도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알힐랄전을 앞두고 광주는 철저히 원정팀 입장이었다. 대회 규정상 사우디가 중립 무대라고는 하지만 알힐랄에게는 사실상 홈이나 다름 없었다.




이 감독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사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X바르든가, 우리가 X발리든가"라며 파격적인 발언을 꺼낸 것도 선수들이 원정팀이라는 부담을 떨쳐내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알힐랄과 시원하게 맞붙어볼 수 있도록 한 것이었을 거다.

현지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동 매체 기자들은 한국 취재진에게 광주가 알힐랄을 이길 수 없을 거라는 듯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일부 AFC 관계자나 봉사자들이 광주를 응원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알힐랄의 승리를 점쳤다.

경기 당일에는 알힐랄 홈이라는 게 더욱 더 잘 느껴졌다. 6만2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스타디움을 메운 알힐랄 팬들은 카드 섹션과 열띤 응원으로 광주의 기를 죽여놓고자 했다. 100여명의 광주 원정팬들의 힘찬 목소리는 알힐랄의 거센 야유에 묻히기 일쑤였다.



분위기 자체가 알힐랄의 승리로 기울던 상황에서도 광주는 자신들만의 축구를 꿋꿋하게 해냈다. 첫 번째 실점 직후 물러서지 않고 역습을 노려 아사니의 득점 장면이 나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아사니가 일대일 기회만 잘 살렸다면 경기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취재진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광주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광주는 '못 먹어도 고' 느낌으로 계속해서 자신들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때문에 두 번째, 세 번째 골이 들어가면서부터는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봤던 것 같다. 만약 광주가 으레 약팀이 그렇듯 물러서는 수비 축구를 펼쳤다면 더 분했을지도 모른다.

더 실점하지 않기 위해 포기하고 걸어잠그는 축구를 했다면 0-7이라는 점수는 나오지 않았을 수 있었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내용의 경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후반전에도 4실점을 내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오히려 마음 속에서 존중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알힐랄 팬들도 광주 선수들의 정신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기 후 알힐랄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온 광주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광주 SNS에는 '잘 싸웠다'는 사우디 팬들의 댓글도 이어졌다.

이 감독과 경기 후 약간의 언쟁이 있었던 조르제 제수스 감독도 기자회견을 통해 "광주는 강했다. 7-0이란 스코어가 광주가 약한 팀이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광주가 일본팀(요코하마)을 7-3으로 이긴 팀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과정을 만든 건 광주에 이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가 약팀의 입장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나아갈 수 있는 팀이 된 건 이정효라는 사람이 감독이었기에 가능했다.

이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에게 '기죽지 마'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아갈 방향은 정해졌다. 작은 의심이 들지 않게, 정말 잘했다고 확신이 들 수 있게 다독여서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사진=사우디아라비아 제다, 나승우 기자 / 한국프로축구연맹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