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자동차 없는 일상'을 향하여
1990년대 중반이니까 아주 오래전 일이다. 독일 베를린으로 이른바 늦은 유학길에 나섰던 것이. 베를린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의 하나가 저상버스였다.
어느 날 시내버스를 타고 슈테글리츠 시청 앞을 지나는데, 버스 기사가 버스를 세우더니 버스 앞문에서 내렸다. 버스가 고장 났나 싶었는데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볼 수 없던 낯선 풍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버스 기사가 버스 가운데 문으로 가더니 문에 설치돼 있는 수동식 발판을 인도로 내려놓은 후, 대기하고 있던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 승객이 그 발판을 통해 버스에 안전하게 탑승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가 격주로 글을 씁니다.![]() |
외국의 저상버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
1990년대 중반이니까 아주 오래전 일이다. 독일 베를린으로 이른바 늦은 유학길에 나섰던 것이. 베를린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의 하나가 저상버스였다.
어느 날 시내버스를 타고 슈테글리츠 시청 앞을 지나는데, 버스 기사가 버스를 세우더니 버스 앞문에서 내렸다. 버스가 고장 났나 싶었는데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볼 수 없던 낯선 풍경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독일 베를린의 배리어프리 저상버스
버스 기사가 버스 가운데 문으로 가더니 문에 설치돼 있는 수동식 발판을 인도로 내려놓은 후, 대기하고 있던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 승객이 그 발판을 통해 버스에 안전하게 탑승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버스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놀랍게도 어느 승객 하나 버스를 왜 갑자기 멈추냐고, 갈 길이 바쁘다고, 도착 시간에 늦으면 책임질 거냐고 따지지 않았다. 모두 조용히 휠체어 이용 승객이 버스에 오르는 것을 차분히 지켜봤고 버스 기사는 다시 앞문으로 가서 버스에 올라 노선에 따른 운행을 이어갔다.
물론 수동식 발판은 비단 휠체어 이용 승객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유아차 이용 승객과 보행 보조기를 필요로 하는 노인 승객 등 다양한 사회적 교통약자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다.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노인과 젊은이를 비롯해 모든 이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대중교통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한 순간이기도 했다.
이런 배리어프리(Barrier-Free) 저상버스의 필요성에 대해 일찌감치 공감하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술력을 활용한 독일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마주하면서 '내가 정말로 다른 나라에 와 있구나!'라는 실감이 진하게 찾아오기도 했었다.
독일 베를린의 노란색 지하철 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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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활동가들이 지난해 8월 22일 독일 베를린에서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하기 위해 탑승을 대기하고 있다. 전장연 제공 |
그렇게 베를린에서 공부하던 시절, 내가 다니던 대학은 지하철 1호선 달렘도르프역과 틸플라츠역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다. 1902년에 건설된 이 노선은 베를린을 동서로 횡단하는 노선으로, 1986년 독일에서 초연된 이후로 1995년 내한 공연을 가진 바 있는 뮤지컬 '1호선'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또 다른 생활공간인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통해 서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이 뮤지컬은 김민기의 각색·연출·감독으로 1991년부터 2008년까지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연된 바 있기도 하다.
학교에 갈 때면 이용하던 이 노란색 지하철 안에서 독일 지도교수님을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는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지하철 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계시던 모습이 마치 어제처럼 선명히 떠오른다.
환경·인권·여성운동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선생님은 자동차 없이 자전거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학교와 집을 오가셨고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도 기차와 같은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셨다.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국내에 돌아와 대구에 정착해 살면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학교와 집을 오갈 때면, 가끔 맞은편 좌석에 앉아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한국 사회의 점점 늘어나는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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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서울 명동 국민권익위원회 사무실 앞 도로 퇴근길이 시민들과 자동차로 붐비는 모습. 서재훈 기자 |
이렇게 저상버스와 지하철을 비롯한 베를린의 대중교통에 대해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얼마 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나붙었던 차량 추가 등록 기간에 관한 안내문을 보면서였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자동차 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주차와 관리에 어려움이 있는 모양으로, 등록 차량 두 대 무료, 세 대 월 5만 원, 네 대 이상(추가 한 대당) 월 20만 원, 캠핑카·트레일러 등 월 20만 원이 안내문의 주요 내용이었다. 나나 배우자는 자동차 없이 주로 지하철로 움직이는지라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자동차를 여러 대 갖고 있는 가구 수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래서 국토교통부 e-나라지표 자동차 등록 현황을 찾아보니, 지난해 말 통계 시점에 자동차등록원부에 등록하고 운행 중인 자동차의 누적 등록 대수는 2,629만8,000대로 인구 1.95명당 1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통계는 한국 사회에서 '자동차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18세 이상 성인의 비율이 높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2023년 6월의 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8명(84.4%)은 자동차를 "현대사회 필수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 한 가구 한 대 차량이 기본이다"라는 문항에는 83.2%가, "내 명의의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라는 문항에는 2030세대의 경우 64.8%가 동의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제국적 생활양식'과 '제국적 자동차 이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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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있는 뷰익 GMC 대리점 부지에 뷰익 SUV가 주차돼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
집을 제외한다면 자동차는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구매할 수 있는 가장 비싼 소비재일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물론 서로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언제 어디로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으로,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사회적 신분이나 재산을 과시하는 수단으로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기후 변화를 넘어 이제 기후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날에는 자동차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도 계급적·생태적 및 젠더적 차원에서 일종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독일의 사회과학자 울리히 브란트와 마르쿠스 비센이 자신들의 저서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착취'(2020)에서 한 말을 참고할 만하다. "북반구 주민의 정치·경제·문화적 일상 구조와 실천에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점차적으로는 또한 남반구의 신흥 경제국에도 유입되고 있는 생산과 분배와 소비 규범"이라고 정의되는 '제국적 생활양식'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 무엇보다 우선적이다.
두 사람에 따르면, 북반구에서의 높은 생활 수준의 확보와 유지를 위해 다른 곳의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자원을 착취하는, 이러한 글로벌 자본주의 생활양식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게 바로 '제국적 자동차 이동성'이다.
놀라운 점은 기후위기에 대한 공적 관심이 생겨나고 있는 시점에 오히려 오프로드 차량과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붐이 일면서 자동차가 점점 대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SUV 운전은 모두가 SUV를 운전하지 않는 한 소형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점에서 자동차 이동성의 제국적 성격을 첨예화한다.
'자동차 없는 일상'을 향한 젠더 관점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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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의 출근시간 도로가 자동차로 가득한 모습. 연합뉴스 |
그런데 브란트와 비센에 따르면 이런 생활 양식은 젠더 관계에도 새겨져 있다. 포드주의적 임금 관계의 보편화는 '가족 부양자'로 기능하는 남성 노동자에게 유리한 반면, 여성의 경우는 주로 무보수로 돌봄 노동을 하거나 미숙련 노동력으로만 여겨져 전자오락 기구나 가전제품 등의 생산에 고용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남성 중심주의적이고 유럽 중심주의적인 삶의 계획이야말로 제국적 생활양식의 필수적 구성 요소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보기에 자동차는 젠더 고정관념에 기반한 디자인을 비롯하여 성차별주의적 동기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자동차는 공격성이나 폭력 및 테크놀로지 같은 특성을 바탕으로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형성을 조장해, 노동 세계의 변화로 인해 육체적 강인함의 중요성이 줄어든 시대에 "기술적 능력의 문제에 따라 남성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젠더 관계를 더욱 공고화하는 결과까지 피하기 어렵도록 한다.
이런 맥락에서 급진적 사상가 이반 일리치가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2018)에서 에너지와 공정성에 대해 논의하면서, 자동차로 대표되는 동력 이동의 문제점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있듯이, 계급적·생태적 및 젠더적 차원에서 우리가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우선 '속도에 마비된 상상력'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자전거나 대중교통의 이용을 늘려나감으로써 '자동차 없는 일상'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딜 때다.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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