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20년] [3]
갑질 정치인 심판 선거, 유튜브 탓에 가해자가 피해자 둔갑
NHK 등 기성 언론 안 믿고, 유튜버 음모론·거짓뉴스 맹신
갑질 정치인 심판 선거, 유튜브 탓에 가해자가 피해자 둔갑
NHK 등 기성 언론 안 믿고, 유튜버 음모론·거짓뉴스 맹신
지난해 11월 일본 효고현에선 기이한 선거가 열렸다. 유세 과정과 결과 모두가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 선거는 효고현 지사였던 사이토 모토히코가 현청 공무원과 거래처 등에 두루 ‘갑질’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해임된 뒤 열린 보궐선거였다. 그 과정에 사이토의 갑질을 고발한 현청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논란이 커지면서 사이토는 사실상 경질됐다.
사이토가 억울하다며 보궐선거 재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여론은 싸늘했다. 그의 갑질 행태가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되고 지난 선거 때 그를 천거했던 일본유신회·자민당도 자체 조사 끝에 ‘지지 철회’를 발표한 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40일 후 나온 선거 결과는 상식적인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45%를 득표해 다시 지사에 당선된 것이다.
과오가 드러나 물러난 정치인이 바로 다시 당선된 충격적 선거 결과의 배경엔 유언비어와 음모론을 사실보다 더 빠르게 확산시킨 유튜브가 있었다. 화제를 일으켜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데 혈안이 된 제3의 정치인이 ‘가해자 사이토’를 언론·정치권에 당한 ‘희생자 사이토’로 포장한 자극적인 동영상을 퍼뜨렸다. 많은 유권자가 여기에 동조하면서 일본 자유민주주의 70년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충격적 선거 결과가 나왔다. 조사위에 참여했던 한 전직 현의원은 이들 유튜버에게 괴롭힘을 당한 끝에 선거 결과가 나온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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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모토히코(斎藤元彦·47) 일본 효고현 지사/산케이신문 디지털 |
사이토가 억울하다며 보궐선거 재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여론은 싸늘했다. 그의 갑질 행태가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되고 지난 선거 때 그를 천거했던 일본유신회·자민당도 자체 조사 끝에 ‘지지 철회’를 발표한 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40일 후 나온 선거 결과는 상식적인 일본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45%를 득표해 다시 지사에 당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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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성규 |
과오가 드러나 물러난 정치인이 바로 다시 당선된 충격적 선거 결과의 배경엔 유언비어와 음모론을 사실보다 더 빠르게 확산시킨 유튜브가 있었다. 화제를 일으켜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데 혈안이 된 제3의 정치인이 ‘가해자 사이토’를 언론·정치권에 당한 ‘희생자 사이토’로 포장한 자극적인 동영상을 퍼뜨렸다. 많은 유권자가 여기에 동조하면서 일본 자유민주주의 70년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충격적 선거 결과가 나왔다. 조사위에 참여했던 한 전직 현의원은 이들 유튜버에게 괴롭힘을 당한 끝에 선거 결과가 나온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3일 첫 방송 20년을 맞은 유튜브가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분노를 자극하는 흥미 위주 콘텐츠를 더 많이 확산시키면서 사실에 기반해야 하는 선거, 나아가 자유민주주의를 위기로 내몰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효고현 지사 선거 전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유튜브의 이 같은 위협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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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3월 효고현의 한 관료가 공익제보자로 현의회와 경찰에 사이토 지사의 갑질과 뒷돈 수수를 고발한 일이다. 사이토는 고발자의 신원을 알아내 허위 사실 유포 및 비방 혐의로 정직 3개월을 내렸다. 고발자는 지난해 7월 “죽음으로써 항의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의회가 만든 조사위와 다수의 언론이 확인한 결과 사이토 지사의 갑질은 사실로 밝혀졌다. 식당 예약이 어렵다고 하자 “내가 지사다”라며 고함을 쳤고, 관용차를 조금 미리 세웠다고 폭언을 하고, 행사 기념품에 자기 얼굴이 안 들어갔다며 심하게 질책했다는 등의 갑질 폭로가 이어졌다. 조사 과정에 현청 직원 약 300명이 사이토의 갑질을 실명으로 증언했다.
현의회가 만장일치로 사이토의 지사 해임을 결의했음에도 그가 다시 출마하겠다고 하자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향력 있는 유튜버가 ‘플레이어’로 끼어들면서 초유의 반전이 일어났다.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NHK당) 대표’라 하지만 본업은 사실상 유튜버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사에 출마하더니, (자신이 아닌) 사이토를 지원해달라는 유튜브 영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영상 중 상당수가 유언비어에 근거했고 고인(故人)이 된 고발자와 현의회 조사위원을 향한 음해가 많았다.
문제의 다치바나는 NHK 수신료 거부 운동을 내걸고 정당을 설립한 후 유튜브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별명은 ‘정치 난동꾼’. 2019년 참의원(상원) 선거 때 비례대표로 당선됐지만 중의원(하원) 보궐선거에 나가겠다며 4개월 만에 그만두고 연고도 없는 각종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그 과정을 유튜브에 올려 구독자를 모으며 악명을 떨쳐 왔다. 그는 그동안 습득한 유튜브 구독자 모으는 요령을 효고현 선거에 십분 활용했다.
우선 자극적 음모론을 근거로 사이토를 희생자로 둔갑시켰다. 사이토를 내쫓은 현의회 및 언론에 대한 비방을 통해 ‘기득권(정치권·언론)이란 거대 어둠에 홀로 맞서 싸우는 개혁파 사이토’라는 갈라치기 구도를 만들어 분노를 유발하고 구독자를 모았다. 현의원들이 언론과 함께 갑질 논란을 날조했다거나, 현청 고발자의 자살은 사이토가 아닌 현의원들의 모함 때문이라는 등의 거짓 주장도 펼쳤다. 조사위에 참여했던 의원들 집 앞에서 확성기를 틀고 유튜브 카메라를 들이대곤 “야, 나와라” “너무 위협했다간 자살할지도 모르니 이만하자”며 야유하는 자극적 장면도 중계했다. 유튜버들은 이 같은 동영상을 다른 소셜미디어에도 퍼다 날랐다.
광고 매출 의존도가 높아 시청자의 ‘눈’을 되도록 오래 묶어두도록 설계된 유튜브의 알고리즘(자동 추천 프로그램)은 다치바나의 그럴듯한 음모론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는 17일간의 선거 기간 동안 100여 개의 유튜브를 올렸는데 총 클릭 수가 1500만 회에 달했다. 유튜브는 동영상에 붙는 광고로 매출을 올리고, 다치바나는 유튜브가 나눠주는 돈으로 짭짤한 수입을 챙길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다른 유튜버들도 다치바나를 따라다니면서 그의 주장을 퍼다 날랐다. 일본의 한 정치 유튜버는 마이니치신문에 “음모론이나 극단적 주장은 열성 지지자들이 끝까지 봐주기 때문에 클릭당 단가가 다른 영상 대비 2~5배나 많다”고 했다. 이 유튜버는 “선거 한철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열심히 전파만 해도 한 달에 200만~250만엔(2000만~2500만원)은 충분히 번다”고 했다.
선거 보도와 관련해 엄격한 ‘룰(규칙)’ 적용을 받는 일본의 언론엔 선거 기간 다치바나의 행태를 제대로 비판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공식적으론 다치바나 또한 지사 후보였기 때문에 그를 비난하는 기사를 내면 사이토·다치바나의 경쟁 후보를 지원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반면 ‘유튜브 세상’에선 무엇을 내보내도 이를 막을 장치가 없었다. 고베에서 만난 마루오 마키 현의원은 본지에 “선거 보도이다 보니 기존 언론은 모든 후보의 발언을 비슷한 비중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는 사이 유튜브의 편파적 거짓 주장은 더 확산됐다”고 말했다.
결국 효고현 선거에서 ‘갑질 지사’ 사이토는 재선됐다. 요미우리신문 출구 조사에 따르면 사이토를 찍은 유권자 중 약 90%가 투표 시 가장 많이 참고한 정보원으로 ‘소셜미디어와 동영상 사이트’를 꼽았다. 일본 비영리단체인 팩트체크센터 후루타 다스이케 편집장은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확대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선거 때 허위·왜곡된 정보가 확산한 것은 문제”라며 “유권자에 대한 정보 분별법 교육, 법률을 포함한 규칙 제정 등 복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사이토가 당선된 다음 날, 현의회 조사위에 참여했던 다케우치 히데아키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변에선 “다치바나가 부추긴 유튜버들의 협박이 사퇴 후에도 계속돼 집 밖으로 못 나오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다치바나의 신봉자들은 선거 기간 내내 그의 집·사무실 주변을 배회하고 전화를 해서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다케우치가 세상을 뜬 다음 날에도 다치바나는 “효고현경(경찰)이 범죄 혐의로 다케우치를 임의 조사했고 곧 체포할 예정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는 음모론을 유튜브에 올렸다. 효고현경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명백한 거짓말이 소셜미디어에 확산돼 매우 유감”이라고 발표했다. 다치바나는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법적·도의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는 7월 열리는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유튜브 구독자들은 경찰의 발표를 ‘다치바나에 대한 핍박’으로 규정하고 그에게 3100만엔(약 3억1000만원)을 격려금으로 모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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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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