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와일드 터키 12년
“생산 중단" 공식 발표
전설이 조용히 퇴장한다
지금이 마지막 타이밍
와일드 터키 12년
“생산 중단" 공식 발표
전설이 조용히 퇴장한다
지금이 마지막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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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터키 12년 /김지호 기자 |
버번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슬픈 소식이다. 가끔은 9만원대, 심지어 8만원대 후반에도 팔렸던 술. 12년 숙성에 알코올 도수 50.5도. 숙성감 있는 복합적 풍미를 지닌 버번을 찾던 사람들에게 ‘갓술’로 통하던 와일드 터키 12년 이야기다. 믿기 힘들 만큼 가성비가 좋았지만, 바로 그래서 앞으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한때 단종됐다가 잠깐 돌아온 전설이 또다시 우리 곁을 떠난다. 위스키 취향이 확실하던 사람들도 이 이름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맛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단 한 번만 맛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버번 애호가들에게는 도수가 낮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50.5도에서 이만큼 부피감 있고 풍성한 맛을 내는 버번은 흔치 않다. 무겁고 진하며, 동시에 매끄럽고 설득력 있다. 향에서 미소를 띠게 되고 입에 머금으면 말이 없어진다. 잔을 비우면 입꼬리가 먼저 반응하는 맛이다.
연간 증발량이 4%에 육박하는 미국 켄터키 출신인데 12년 숙성, 50.5도, 10만원대 가격. 위스키 세계에서는 비상식적 조합이다. 비슷한 숙성 연수의 버번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두 배 이상 비싸거나 구하기조차 어렵다. 와일드 터키 12년은 합리적 가격과 뛰어난 품질로 주목받았다. 말하자면 생태계 교란종이다. 하지만 이제는 끝이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수출 전용으로 한국·일본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만 풀던 이 술이 더는 생산되지 않을 예정이다.
캄파리 코리아는 공식적으로 ‘더 이상 수입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12년 동안 묵힌 원액은 한정적이고,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제품군에 우선 배정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번 단종은 와일드 터키와 러셀스 리저브의 브랜드 정체성을 분리하려는 전략적 판단의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와일드 터키 12년은 그 셈법에 밀려 조용히 퇴장한 셈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적 위스키 열풍으로 생산 대비 수요가 과열됐다. 오래 숙성한 제품을 중저가로 유지하는 것이 브랜드 입장에선 점점 수지가 맞지 않는 구조다. 고급 제품으로 포지션을 바꾸거나 배럴 스트렝스 버전으로 다시 패키징해 프리미엄을 붙이는 편의 수익성이 훨씬 높다. 물류비 상승, 원자재 가격 인상 같은 외부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맛있고 가성비가 좋던 술들이 하나둘씩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건, 단순히 ‘운 없는 술’이라서가 아니다. 업계의 생존 전략이다.
그럼에도 아쉽다. 가격과 맛을 이만큼 잡는 위스키가 시장에 흔치 않다. 평소 위스키 보틀을 잘 사지 않던 사람들도 이 술만큼은 보틀로 들이겠다는 의지를 보이곤 했다. 필자도 와일드 터키 12년만큼은 늘 술장 안에 두었다. 웬만하면 같은 보틀을 재구매하지 않는데, 이건 예외였다. 이젠 기억 저편으로 천천히 떠나보내는 중이다.
타이밍도 묘하다. 최근 켄터키 지역에서는 기후 변화로 위스키 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버펄로 트레이스 증류소는 홍수로 침수돼 일시 폐쇄됐고, 와일드 터키를 비롯한 주요 버번 증류소들도 날씨 이슈와 공급망 문제에 긴장하고 있다. 더 이상 이런 술을 당연하게 여기긴 어렵다. 어쩌면 지금이 그 마지막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있을 때 마시고, 미련은 두지 말자.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러셀스 리저브 13년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워줄 것이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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