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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가석학까지 빠져나가는 나라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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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대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본원 글로벌 인재 비자 센터에서 열린 법무부-KAIST 과학기술 우수 외국인 인재 유치 및 정착을 위한 간담회에서 주요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2023년 11월 대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 본원 글로벌 인재 비자 센터에서 열린 법무부-KAIST 과학기술 우수 외국인 인재 유치 및 정착을 위한 간담회에서 주요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성장 한계에 달했는데 인재마저 해외 유출





인구 급감으로 과학기술 연구자도 곧 절벽





정부·국회 합심해 인재 유치 근본책 내놔야



과학기술 핵심 인재들이 이 땅을 떠나고 있다. 서울대와 KAIST 등 주요 대학 졸업생들이 미국 기업과 대학으로 떠나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젠 국가 석학들까지 모국을 버리고 있다. 국가석학 1·2호로 선정됐던 이영희 전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장(성균관대 HCR 석좌교수)과 이기명 고등과학원 부원장이 정년 후 국내 연구처를 찾지 못하고 중국행을 택했다는 소식(중앙일보 4월 24일자 1·4·5면)은 충격적이다. 모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우리 퇴임 석학들을 중국이 영입해 간 것이다. 중국은 2023년 이미 미국을 제치고 과학기술 연구·개발(R&D)에서 세계 1위에 오른 나라다. 인재가 부족해 한국 은퇴 과학자를 모셔가는 게 아니다. 글로벌 인재들이 몰려드는 과학기술 패권국으로 일어서겠다는 게 중국의 의도다.

문제는 우리다. 그제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전분기 대비)를 기록했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서 더욱 심각하다. 아시아 외환위기나 세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우리 대기업들이 신성장 엔진을 찾지 못하고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시점에서 미·중 기술패권 전쟁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피크 코리아’(Peak Korea)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첩첩산중에 빠져버린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나라다. 결국 답은 사람이다. 소중한 과학기술 인재를 지킬 방법은 없을까. 그 첫째는 미국처럼 정년과 보수의 제한을 푸는 것이다. 최근 주요 대학과 연구소에서 싹트는 변화는 그 가능성을 조금씩 열어가고 있다. KAIST는 2022년 65세 정년 이후에도 연구와 교육을 지속할 수 있는 ‘정년 후 교수’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엔 정년 후에도 업적이 기대되는 교수를 선발해 70세까지 근무를 연장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듬해부터는 아예 나이 제한을 없애버렸다. 성균관대도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원할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종신석좌교수’ 제도를 신설하고, 첫 대상자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석학인 박남규 교수를 임명했다. 서울대와 포스텍도 최근 우수 교수의 정년을 70세까지 늘리는 제도를 도입했다.

사실 인재 지키기는 수동적인 대안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의 늪에 빠져있다. 1970년대초 한 해 100만 명 이상이던 출생아 수는 2023년 23만 명대로 급락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조만간 총 과학기술 연구자 수마저도 줄어들게 불 보듯 뻔하다. 이대로 가다간 암울한 ‘정해진 미래’를 맞게 된다. ‘한국은 망하고 있다’는 일론 머스크의 경고는 인구 급감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경고다. 석학들이 이 땅을 떠나는 걸 넘어 절대 인구수까지 줄어들면 한국 과학기술은 누가 발전시킬 수 있나.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인재 유출)의 해답은 ‘브레인 게인’(brain gain), 즉 인재 유치다. 미국이 20세기 들어 세계 초강대국이 된 건 전 세계에서 핵심 인재들이 미국 기업과 대학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서구 선진국 인재를 유치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아시아·동유럽권의 우수 인재들이 한국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고 있으니 답 또한 명확하다. 정부와 국회가 합심해 전 세계와 경쟁해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확실한 근본책을 내놔야 한다. 국가 번영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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