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분수령의 한국, 재도약의 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2025 문익환평화포럼’이 열렸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부원장 gobogi@hani.co.kr |
미중 전략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신냉전보다 더 위험한 대전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2025 문익환평화포럼’에서 외교·정치·경제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미국 중심의 배타적 동맹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국·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와의 외교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조언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문익환평화포럼은 ‘분수령의 한국, 재도약의 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국회의원연구단체 한반도평화네트워크, 한신대 한반도평화학술원,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코리아컨센서스연구원이 공동주최했다. 포럼은 △한반도 평화와 외교 △민주주의 회복 △한국경제의 도약을 주제로 다뤘고, 마지막 라운드테이블에서는 한국 사회의 과제와 현안을 통합적으로 조망했다.
“일극 체제 종말, 대전환의 시대”
1세션에서 백준기 한신대 한반도평화학술원 원장은 “미국 중심의 안전보장 체계에 몰입하는 것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며 “이제 일극(미국 중심) 체제의 종말과 새로운 질서의 시작점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신냉전이 아니라, 그보다 더 위험한 대전환기”라며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가 만든 시대라기보다, 트럼프를 탄생시킨 대전환의 시대가 왔고, 제2, 제3의 트럼프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기존 세계질서가 흔들리고 깨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 정부의 대미 외교·안보 정책을 제언한 공민석 제주대 교수는 “우리가 알던 미국, 곧 국제정치 질서의 안정이라는 공공재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며 “미국은 동맹에 줄 것은 없으면서, 오히려 비용과 부담만 떠넘기고 있다. 무차별적 관세 공세로 미국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도 더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 교수는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1대1 구조로는 한국이 우위에 설 수 없기에 중국과 유럽연합(EU)과 협력해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요구에 수세적으로 끌려다니기보다는 한국의 기여와 중요성을 내세워야 한다”며, △대미투자 1위, △첨단 방산 협력국, △국방비 GDP 2% 이상 지출 등 한국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미동맹은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상생·상호존중의 동맹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했다. 공 교수는 “버림받을까 두려워 할 말을 못 하는 외교는 위험하다. 배타적 동맹에 참여해 미·중 갈등에 선제적으로 말려들 필요는 없다”며 “상생의 동맹, 적이 아니라 동반자를 공유하는 동맹, 세계와 지역,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포용적 동맹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문익환평화포럼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국회의원연구단체 한반도평화네트워크, 한신대 한반도평화학술원,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코리아컨센서스연구원이 공동주최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부원장 gobogi@hani.co.kr |
“중국·러시아 등 외교 다변화”
윤석열 정부의 미국·일본 중심 외교가 한국의 자율성을 제약하고, 북방외교와 남북관계의 진전을 후퇴시켰다는 평가가 이날 나왔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과제로 ‘상생과 상호존중’, 실용적 균형외교를 통한 외교 공간의 복원과 한반도 평화의 주도권 회복을 꼽았다. 외교의 기본 방향은 ‘동맹은 수단, 국익이 목표’라는 원칙에 따라 실용적이고 주도적인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중관계를 연구해온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윤석열 정부 들어 정치·정서적으로 중국을 적대시한 것은 국내적으로 분단체제 내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는 정치기획의 의미가 있다”며 “내란 세력이 적극적으로 중국혐오 정서를 동원한 데다 한중관계를 악화시킨 요인도 여전해 새 정부가 출범해도 한중관계 리셋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한중관계 정상화하려면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고위급 대화 재개와 민간교류 확대, 경제협력의 균형적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이 교수는 “더는 미국을 상수, 중국을 변수로 볼 수 없고, 이제는 중국을 상수로 봐야 한다. 미·중 경쟁에서 중국이 패배할 거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붕괴론 벗어나 공간 확대”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을 진단하며 이정철 서울대 교수는 “북한 붕괴론은 한국 보수정부와 미국 민주당 정부(오바마·바이든)의 전제였으나,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하는데, 적대적이란 단어를 빼면 두 국가론은 북한의 대중·대일 외교에 유리하다”며 “트럼프는 러-우크라이나 전쟁 뒤 북한과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북미 관계 개선은 한반도 평화에 긍정적”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종운 한신대 교수는 “압박만으로 북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남북 대화채널이 사라진 상황에서 관계 회복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복원, 정부 간 대화채널의 전면 재가동, 경제·민간 교류 확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러 관계를 분석한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잘못된 전제는 잘못된 답을 낳는다. 북한 붕괴론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론이 그렇다”며 “러시아와 전략적 동반자에서 적대적 관계로 전환된 과정은 외교 실패”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새로운 세계질서 형성의 과도기다. 힘의 배열과 이동뿐 아니라 규칙도 바뀌고 있다”며 “러시아가 한반도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관계 정상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가치외교는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 선택의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며 “한국은 이익 수호를 위해 어떤 나라와도 손잡을 수 있어야 한다. ‘외계인 침입하면 일본과도 손잡아야 한다’는 노회찬 전 의원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은 △한반도 평화와 외교 △민주주의 회복 △한국경제의 도약을 주제로 다뤘고, 마지막 라운드테이블에서는 한국 사회의 과제와 현안을 통합적으로 조망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부원장 gobogi@hani.co.kr |
“슬기롭게 새 시대 준비해야”
토론자로 나선 김재관 전남대 교수도 세계 질서 전환 속에서 한국이 새로운 외교 전략을 모색할 때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이 더는 강대국의 종속 변수가 아닌 주도적인 협상권을 가진 국가로서, 어떻게 다극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1세션을 마무리하며 백준기 교수는 “한반도 평화는 남북한만의 과제가 아니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개국이 운명적으로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공동 창작품”이라며 “과거 질서에 집착하지 않고, 슬기롭고 지혜로운 정책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포럼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반도 평화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진단하고, 실용적이고 주도적인 외교전략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2세션에서는 권혁용 고려대 교수, 지병근 조선대 교수, 강우진 경북대 교수 등이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부활의 길’을, 3세션은 류덕현 중앙대 교수, 이동진 상명대 교수 등이 ‘변곡점의 한국경제, 제3의 도약’을 제안했다.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김효진 보조연구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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