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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에는 특이한 연구소가 있다. 2021년 6월에 설립한 실패 연구소다. 혁신은 과감한 도전에서 나오고, 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는 믿음 아래 실패를 연구한다. 남의 성공 사례를 좇아 성취하려는 이는 '따라쟁이'에 지나지 않으나 창의적 발상, 독특한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길은 힘겹고 어려워 무수한 실패를 낳을지라도 세상을 바꾸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에서 나온 안혜정·조성호·이광형의 '실패 빼앗는 사회'(위즈덤하우스 펴냄)엔 흥미로운 자료가 담겨 있다. 국내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도전의식을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가장 도전적인 세대는 60대 이상 베이비붐 세대였다. 전후 폐허에서 태어나 가난을 등에 지고 살았던 이 세대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지 않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었다. 과감한 도전으로 번영을 일군 이들은 '스스로 도전적이지 않다'고 평가한 비율이 29.3%밖에 안 됐고 노력과 성실성, 도전정신, 자기 조절력 등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도전을 꺼리는 태도는 아래 세대일수록 늘었다. 40대는 44%, 20대 후반~30대 후반은 50.3%였다. 20대 초중반에서는 약간 줄어 40.6%였다. 청년들은 타고난 재능, 가족 배경, 운과 기회가 있어야 성공한다고 여겼다. 오랜 저성장과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에 덧대어 도전을 비난하고 억압하는 사회,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문화가 이들을 현상 안주 세대로 만들었다. 저자들은 실패를 더 나은 삶을 향한 경험이 아니라 낙오와 좌절로 생각하는 사회를 실패를 빼앗는 사회라고 부른다.
이런 사회에선 교조주의, 냉소주의, 비관주의가 만연해진다. 특정 인생 경로만 강요하고 다양한 경험을 무시하는 태도, 아무리 애써야 소용없다면서 비아냥거리는 태도, 최악의 상황만 떠올리며 실패를 당연시하는 태도가 번진다. 그러면 상황이 나빠질 걸 빤히 알면서도 아무도 이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러나 프랑스 작가 클라로는 위대함은 실패와 더불어 살 때 생겨난다고 말한다.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실패하는 직업이다. 위대한 작가들이 남긴 노트는 실패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수시로 쓰던 원고를 찢고, 애써 완성한 문장에 검은 줄을 긋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가 큰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믿기에 오히려 실패를 향해 나아간다. 일찍이 장 콕토는 "실패의 미학이야말로 유일하게 지속할 수 있는 미학"이라고 말했다. 성공과 실패는 거기서 무얼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실패를 영광의 흉터로 생각지 않는 사회의 앞날은 어두울 뿐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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