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환율 논의 미국 제안으로 공감대…조만간 실무 협의 예상
"약달러 1기보다 강하게 추진될 것"…관세-환율 이중전선 우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버지니아에서 열린 MAGA 디너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AFP=뉴스1 |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한미 관세 협의에서 '환율' 분야가 미국 측의 요청으로 인해 향후 의제로 선정됐다. 환율 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1기 때부터 추진한 '약(弱)달러'(달러 약세 선호) 구상과 밀접히 연관된 만큼, 앞으로 한국 경제가 관세·환율 이중 전선에서 동시에 압박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재무·통상 수장 간 '2+2' 협의에서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 유예가 종료되는 7월 8일까지 관세 폐지를 위한 '줄라이 패키지'(July Package)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줄라이 패키지는 양국이 상호 간 통상 이슈를 둘러싼 여러 의제를 어떻게 협의할지 구체적인 범위, 체계, 일정 등을 정리한 결과를 가리킨다. 양국은 다음 주 실무 협의를 열고 복수의 작업반을 꾸려 구체적인 협의 범주를 확정하기로 했다.
패키지의 4대 분야에는 '통화(환율) 정책'이 포함된다고 우리 정부는 밝혔다. 이는 미국 측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 정책의 경우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한국 기재부와 미국 재무부 간 별도로 논의할 것을 먼저 제안했다"고 말했다.
美 약달러 → 무역적자 해소 목표…"1기보다 강력 추진"
미국이 환율을 콕 집어 향후 협의 체계 구성을 요청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정부 때부터 추진해 온 '약달러' 구상과 맞물려 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KIET)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환율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온 점을 앞으로 중점적으로 지켜봐야 한다"며 "미국은 인위적 개입을 통해 달러 절하, 원화 절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간 트럼프 정부가 달러 약세를 희망하는 이유는 미국이 기축통화를 발행함으로써 얻는 일종의 비용 격인 막대한 무역 적자 규모를 축소·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됐다. 즉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을 비롯한 글로벌 각국에 기축통화 발행 비용의 일정한 분담을 원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 |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및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에 참석차 미국 워성턴D.C.를 방문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24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 참석, 스콧 베센트 미국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의시작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뉴스1 |
게다가 의회와 국민들의 지지가 비교적 미약했던 1기 때와 달리,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며 이 같은 약달러 구상의 추진력은 더욱 강해졌을 것으로 평가된다.
송민기 한국금융연구원(KIF) 선임연구위원은 "약달러 정책의 지지 기반은 예상보다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과거 사례로 확인된다"며 특히 지금은 미 공화당만 아니라 민주당 진영에서도 달러 가치 고평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밝혔다.
송 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 정부의 인위적인 약달러 유도 정책은 예상보다 강력한 정책 추진력을 확보할 개연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도 마찬가지 상황…"약달러 수용해도 마지노선 분명"
미국의 '달러 가치 절하, 타국 통화 절상' 압박은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다. 한국보다 먼저 관세 협상을 시작한 일본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중국과 일본이 자국 통화 약세를 유도해 왔다"면서 "이들 국가가 자국 통화 가치를 절하하면 우리에게 중대한 불이익으로 작용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실제로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미국과 일본이 이달 하순 양국 환율 문제를 논의할 전망이라고 18일 전했다. 닛케이는 일본의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일정에 맞춰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회담하는 방안이 조율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을 찾은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해 건넨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써보고 있다. (백악관 제공) ⓒ News1 류정민 특파원 |
이와 관련해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일본동아시아팀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엔화의 과도한 약세를 시정하는 환율 협상에 나설 것"이라면서 "일본도 과도한 엔저 현상이 물가 상승 등으로 국민·기업에 부담을 초래했다는 점을 고려해 미국의 요구를 일부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일본은 환율 문제에 있어 양보 가능한 일정 선을 정해둔 것으로 보인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일본 정부는 과거 플라자 합의와 같은 과도한 환율 변동에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며 "특히 일본은행(BOJ)의 금융 정책까지 영향을 미칠 환율 협상은 원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약달러, 금융 불안 초래 우려…마러라고 합의 경계해야"
한국 역시 환율 논의에서 조율 가능한 선을 확실히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김 단장은 "미국은 환율 관찰 대상국 등의 분류를 통해 (자국 통화 가치에 과도히 개입한) 국가에 제재를 가하는 법을 두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충분한 조사 후 실제 증거가 드러났을 때의 일이지, 무조건 원화 가치를 절상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원화가 꾸준한 약세를 보이면 국내 금융 안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한미 환율 논의의 향방을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출 증대로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고 이에 원화 가치가 강세(달러 상대적 약세)를 띠는 것은 부작용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러나 인위적인 압력에 따른 원화 강세는 금융 불안을 유발할 뿐 아니라 우리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해 한국 수출에 하방 압력을 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 |
(자료사진) ⓒ News1 민경석 기자 |
특히 일각에서는 미국이 향후 이른바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를 한국·일본 등 대미 무역 흑자국에 요구할 가능성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마러라고 합의는 스티븐 미란 백악관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작년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미란 위원장은 보고서에서 강달러로 초래된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동맹국들이 일정 비용을 분담해야 하며, 이를 위해 동맹국이 보유한 10년 이하 단기 미 국채를 팔고 100년 만기 초장기 미 국채를 매입하도록 유도하자고 제안했다.
마러라고 합의를 거쳐 새롭게 발행될 초장기 국채는 이자율이 '무이자'에 가까워야 한다고 미란 위원장은 주장했다.
당국은 미국이 마러라고 합의를 실제로 추진할 확률은 현재로선 낮다고 보고 있다. 과거 주요 5개국(G5)이 달러 약세를 위해 플라자 합의를 체결했을 때와 달리 현재 글로벌 금융 시장은 완전히 개방돼 있어, 이 경우 글로벌 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을 유발하면서 통제할 수 없는 금융 위기 또는 신용 문제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합의 구상을 세부적으로 조정해 현실성을 높인다면, 충분히 추진 가능하다는 주장도 맞선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100년 동안 무이자로 돈을 차입하겠다는 구상은 분명히 납득하기 어려우나, 미국은 고율 관세와 안보 우산을 무기로 쓸 수 있고 대상국은 쉽게 거부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트럼프 시대에는 미국이 패권 강화를 위해 예측 불가한 정책을 언제든 추진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미국의 마러라고 합의 요구를 수용하면 국가의 재정·외환 건전성이 크게 악화할 수 있다"면서 "합의 현실성 여부를 떠나 (미국의 약달러 전략으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icef08@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