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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에너지 블랙박스' 푸는 디지털 닥터, 김정석 클라우드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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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방비 24% 줄인 무선 IoT 혁명"…롯데마트 남사이공점 등 도입





"냉방 설비는 정상 가동 중이었죠. 그런데 오후 2시가 되자 1층 매장 온도가 갑자기 치솟았어요. 우리 시스템은 원인을 파악했어요. 출입구 쪽 에어커튼이 고장 난 겁니다. 이를 바로 감지해 조치했죠."

서울 강남의 한 카페. 김정석 클라우드앤 대표(44)는 태블릿을 펼쳐 롯데마트 남사이공점의 실시간 에너지 데이터를 보여주며 말했다. 화면 속에는 건물의 온도와 전력 사용량, 냉방기 가동 상태가 환자의 의료 차트처럼 세밀하게 표시돼 있었다. 컬러풀한 그래프와 수치들 사이에서 그는 전문의가 진단서를 읽듯 설명을 이어갔다.

"그냥 숫자가 아닙니다. 이건 건물의 맥박이죠."

클라우드앤이 개발한 'PorestN' 플랫폼은 건물의 에너지 소비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며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한다. 의사가 환자의 기록을 분석하듯, 건물의 '에너지 맥박'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이 기술이 국내를 넘어 동남아시아 시장까지 뻗어 갔다.

인터뷰 도중에도 김정석 대표의 태블릿에서는 알림음이 쉴새없이 울렸다.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유통센터 냉동창고에서 에너지 사용량이 평소보다 15% 증가했네요. 현지 팀에 연락해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전 세계 건물들의 에너지 상태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힘이죠."



설비관리의 사각지대에 빛을 비추다

김정석 대표는 커피를 한 모금 머금으며, 2015년 클라우드앤 설립 계기를 회상했다.
"건물에서 소비되는 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전에 일했던 빌딩은 전기요금이 매달 수천만 원씩 나왔지만, 어디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정확히 몰랐어요."


클라우드앤의 출발점은 이 같은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그래서 '건물의 삶을 책임진다'는 미션을 세웠다. 단순한 설비 관리가 아니라, 건물이 보다 스마트하고 안전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석 대표는 기존 건물 에너지 관리가 고가의 유선 기반 설비에 의존하는 한계를 지적했다. 해결책은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과 IoT 기술을 접목한 무선 기반 솔루션이었다.


"당시만 해도 BEMS(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는 대형 건물만 도입할 수 있는 고가 솔루션이었어요. 수억 원의 비용이 들었죠. 우리는 이를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면서도,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PorestN 플랫폼의 핵심 경쟁력은 LoRaWAN 통신과 자체 개발한 IoT 디바이스를 활용한 저비용·고효율 시스템이다. 김정석 대표는 직접 개발한 작은 센서 장치를 꺼내 보여주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이 장치가 건물 곳곳에 설치되어 데이터를 수집한다.

"무선 기반 접근법은 설치비용과 유지보수 비용을 크게 절감할 뿐 아니라, 통신 장애가 적고 넓은 범위에 안정적으로 적용 가능합니다. 케이블을 깔지 않아도 되니 오래된 건물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죠."

김정석 대표는 태블릿에 저장된 성공 사례들을 스크롤하며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롯데마트 남사이공점은 이 솔루션을 도입한 후 연간 전력 사용량을 24% 절감했습니다. 서울 소재 대형 병원에서는 24시간 운영이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연간 에너지 비용을 약 20% 절감했죠. 대전의 복합 쇼핑몰도 유사한 효과를 봤고요."

그는 화면에 표시된 다채로운 그래프와 차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단순한 숫자 게임이 아닙니다. 우리 시스템은 사용자 친화적인 데이터 시각화와 AI 기반 패턴 분석을 통해 실시간으로 에너지 낭비 요인을 잡아냅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병을 찾아내는 것과 같죠."

건물 유형별 맞춤 처방, 동남아로 치료 영역 확장

그는 각각의 건물이 마치 다른 체질을 가진 환자처럼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하나의 솔루션으로 모든 건물을 커버한다'는 접근법 대신, 건물 유형별 특화된 알고리즘과 센서 구성을 제공합니다. 이게 핵심이죠."

두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대형마트의 경우 영업시간과 냉장·냉동 설비의 에너지 사용이 핵심이니 거기에 집중합니다. 반면 병원은 환자 안전과 연속성이 중요하므로, 예측 기반 유지관리와 비상 대응 시스템에 중점을 둡니다. 호텔은 또 다르고요. 이런 맞춤형 접근이 우리 플랫폼의 강점입니다."

특히 동남아시아 시장에 대한 그의 관심은 뜨거웠다.
"동남아시아는 높은 전기요금과 긴 냉방기간으로 에너지 관리 수요가 엄청납니다. 태국, 베트남만 해도 연중 냉방이 필요하고, 전기요금은 한국보다 비싼 곳도 많아요. 우리는 이미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서 현지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죠."

김정석 대표의 눈이 반짝였다. "지난 달 호치민에 갔을 때 현지 대형 유통사 사장님이 저희 시스템을 보더니 '이거 마법이네'라고 하셨어요."

그는 ‘24년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 및 ’25년 초격차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 등 다양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추가 연구개발 계획도 밝혔다.

"건물 에너지 관리 부분의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FEMS(공장에너지관리시스) 등 사업 영역의 확대 부분의 연구개발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쓸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예측 제어 알고리즘 고도화, 신규 IoT 디바이스 개발, 동남아 맞춤형 UX/UI 개선 등에 투자할 계획이죠. 우수 개발 인재 영입도 진행 중입니다."

데이터 기반 예측으로 건물의 미래까지 관리

김정석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밖으로 보이는 고층 빌딩들을 가리키며 그는 미래 비전을 공유했다.

"보이는 저 모든 건물들이 지금은 그저 에너지를 소비하는 구조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생각하는 건물'로 만들고 싶어요."

그는 싱가포르 난양공대 및 고려대학교 AI 연구진과의 국제 공동연구에 대해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는 예측 기반 제어 기술을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단순히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내일의 날씨, 다음 주의 인원 수요, 한 달 뒤의 설비 부하까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스마트 빌딩이죠."

그는 자리로 돌아와 태블릿을 돌렸다. 어떤 건물의 10년치 에너지 데이터였다.

"이미 수년간 다양한 건물에서 수집한 이 빅데이터는 금광과 같아요. 단순한 에너지 절감을 넘어, 설비 고장 예측, 화재 위험 탐지, 심지어 중대재해 사전 경고까지 가능하게 해주죠."

ESG와 탄소중립 측면의 기여도 강조했다. "롯데마트는 우리 솔루션 도입 후 탄소 배출량을 연간 수천 톤 단위로 절감했습니다. 이건 나무 수만 그루를 심는 효과와 같아요. 기업들의 ESG 경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습니다."

시리즈 A 투자 유치를 준비 중인 클라우드앤의 계획은 야심차다. 김정석 대표는 3~5년 내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에 법인을 설립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우리의 꿈은 '건물 생애주기 통합 플랫폼'을 만드는 겁니다. 설계·시공·운영·유지보수·폐기까지 건물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돕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스마트 빌딩 CAD/BIM 솔루션 연동, CMMS, 재건축 시뮬레이션...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할 겁니다."

김정석 대표는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건물을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끊임없이 관리해야 할 '살아있는 존재'로 보는 거죠. 환자와 의사의 관계처럼요. 건물의 평생 주치의가 되고 싶습니다."

문지형 스타트업 기자단 1기 기자 jack@rsqu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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