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디딤돌 소득’의 성과 속속 입증
자격박탈 불안 벗어나 경제활동에 참여
탈수급비율 8.6%·소득증가 31.1% 주목
해외석학들 긍정적 평가, 전국화 노력도
자격박탈 불안 벗어나 경제활동에 참여
탈수급비율 8.6%·소득증가 31.1% 주목
해외석학들 긍정적 평가, 전국화 노력도
오세훈(가운데) 서울시장이 지난해 10월 7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4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에서 대담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
“기초생활수급 지원을 받을 경우 일을 안하고 안주하는 측면이 있었다. 반면 디딤돌소득은 달랐다. 기초생활수급보다 지원금이 더 많을 뿐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확실히 됐다.”
최근 서울시의 ‘디딤돌 소득’을 지원받은 A(60) 씨의 말이다. 고혈압, 천식 등을 앓았던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다 2022년 7월부터 디딤돌 소득 수급자가 됐다. 그는 기초생활수급 생계급여 만으로는 의료비가 충당되지 않았다. 처음 두 달 받은 디딤돌소득은 월 160만원 수준으로, 기초생활수급권자일 때에 비해 20만~30만원 더 많았다. A씨가 취업한 뒤 디딤돌소득은 20만~30만원으로 줄었고, 지금은 지원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A씨는 여전히 수급권자다.
A씨는 25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디딤돌소득은 일종의 보험”이라며 “실직을 해 소득이 떨어지면 별도의 신청없이 다시 지원 되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3년째 진행하는 ‘복지 성장 사다리’ 디딤돌소득의 성과가 속속 입증되고 있다. 서울시가 2022년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는 디딤돌소득은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재산 3억2600만원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기준소득 대비 부족한 가계소득 일정분을 채워주는 제도다. 소득이 높아지면 수급권을 잃는 기초생활수급제도와는 달리, 수급자에서 벗어난 이후라도 실직, 질병 등으로 소득이 줄면 자동으로 다시 돈이 지급된다.
월 50만원의 수입이 있는 1인 가구의 경우 지원 받는 금액은 76만원 정도다. 기준중위소득 85%인 203만3000원에서 50만원을 제외한 뒤 2로 나눈 금액이다. 반면 기초생활수급제도의 생계급여는 소득기준이 32%로 낮다. 1인 가구의 경우 중위소득 기준 32%인 76만5000원에서 50만원을 제외한 금액의 30%를 지원한다. 지원금액은 10만원 정도다. 소득기준이 높은 것은 수급자들이 ‘근로의욕’을 잃지 않는 효과로 이어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제는 수급권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디딤돌 소득의 경우는 소득 기준이 높을 뿐더러, 소득기준을 벗어나도 수급권자 지위는 유지 된다”고 말했다. A씨도 “소득이 높아져 기초생활수급권 자격이 박탈된 후 다시 생활이 어려워져 기초생활수급제도를 신청하려면 두 달 가까이 시간이 걸린다”며 “그간에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시가 디딤돌소득의 지원을 받은 가구의 2년간의 변화를 살펴본 결과 가구 소득이 증가해 더 이상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는 탈(脫)수급 비율이 1년 차 4.8% 대비 3.8%포인트 상승한 8.6%로 나타났다. 특히 근로소득이 늘어난 가구는 1차 년도 21.8%에서 31.1%로 9.3%포인트 대폭 늘었다. 서울시는 2022년도(484가구), 2023년(1100가구), 2024년도(492가구) 등 세 차례에 걸쳐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근로소득이 늘어난 가구 비중이 커진 것은 수급자격 박탈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B(29) 씨 역시 수급자격 박탈 우려로 쉽게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B씨는 신장투석을 하는 아버지를 돌봐야해 정식 취업은 꿈도 꾸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정식으로 일을 할 경우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해, 매월 받는 생계급여 100만원(3인기준)이 끊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B씨는 디딤돌소득 2차 시범사업에 참여, 1년간 매월 170만원의 디딤돌소득을 받았다. 시범사업 기간이 끝난 지난 3월, 그는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에 정직원 취업에 성공했다. B씨는 이날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디딤돌 소득 지원을 받는동안 오랜 꿈이었던 치위생사 공부도 할 수 있었다”며 “이번에 정직원으로 취업을 했으니 틈틈이 공부해 목표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석학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이어졌다. 뤼카 샹셀 세계불평등연구소장은 지난해 10월 7일 열린 ‘2024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에 참석해 “불평등 해소 대안으로 서울 디딤돌소득을 꼽을 수 있으나 전국적으로 확산했을 때 재원마련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그러스키 스탠포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과 같이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회도 하나의 상품처럼 시장에서 거래돼 빈곤이 기회의 박탈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금을 지급하는 지금의 소득보장제도가 이러한 문제의 해결 대안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딤돌소득의 전국화 방안을 위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서울복지재단 연구 총괄 아래 사회복지·경제·재정 분야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TF(태스크포스)는 전국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TF는 지난 3월 발표한 ‘디딤돌소득 정합성 연구 결과’를 통해 디딤돌소득과 생계급여·자활급여·국민취업지원제도(1유형)는 통합하고 기초연금과는 연계하는 등 36개 현행 복지제도와 통합·연계 시 효율적인 복지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딤돌소득을 바탕으로 유사한 현금성 급여를 효율적으로 통합·연계해 복잡한 소득보장체계를 정비하면 더욱 촘촘한 복지안전망을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TF는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해 디딤돌소득으로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축하면 취약계층에 대한 견고한 대안적 복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TF는 기준 중위소득 65% 이하를 대상으로 중위소득의 32.5%까지 보장하는 모델을 적용할 경우 전국 총 2207만 가구의 27%에 달하는 594만가구가 디딤돌소득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자활급여, 국민취업지원제도, 지자체 부가급여 등 10개 제도와 통합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박병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