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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규제 없애라" AI 질주하는 세계…한국도 '족쇄' 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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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규제에 갇힌 K-AI(하)

[편집자주] IT 강국이었던 대한민국이 AI 주변국으로 밀려났다. IT 강국을 이끌던 플랫폼 기업들은 하나둘 글로벌 빅테크에 안방 자리를 내준다. 위기다. 지금은 규제보다 산업 진흥에 나서야 할 때다. AI 성숙도 2군 국가에서 강국으로 다시 올라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짚어본다.



美中 이어 EU도 "미친 규제 없애라"…'주52시간제'도 발목


머니투데이

글로벌 AI 규제 완화 추세/그래픽=이지혜


AI(인공지능)가 국가전략자산으로 떠오르며 글로벌 규제 완화 움직임이 잇따른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AI 정책이 180도 달라졌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행정명령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 및 활용'(14110호)을 폐기하고 새 행정명령 'AI 리더십을 가로막는 장벽 제거'(14179호)를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기존 행정명령은 △AI 안전성 평가 의무화 △AI 콘텐츠 워터마크 적용 △개인정보보호 강화 등 AI 개발·활용에 대한 규제를 담았으나, 새 행정명령은 글로벌 AI 리더로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오는 7월 말 구체적인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 정부가 (AI 개발에) 불 간섭적인 접근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가 주도로 AI 산업을 육성하는 중국은 2023년 세계 최초의 '생성형 AI 서비스 관리 잠정 방법'이란 규제를 발표했다. 다만 규제보단 진흥에 무게중심이 실렸다는 평가다. 해당 규정 제3조는 "효과적인 조치를 통해 생성형 AI 혁신 발전을 장려하고, 생성형 AI 서비스에 대해 포용적이고 신중한 분류 등급 규제를 시행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박동매 법무법인 대륙아주 중국 변호사는 "중국 정부는 생성형 AI 기술 규제에 대해 포용과 신중, 차등 감독 관리를 원칙으로 한다"며 "레드라인(용납할 수 없는 금기)을 넘지 않는 한 포용적인 입장으로, 일정한 기간을 두고 규제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AI 규제에 앞장섰던 유럽연합(EU)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그동안 유럽은 미국 빅테크를 견제하기 위해 세계 첫 인공지능법(AI Act)을 제정하는 등 강력한 규제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자국 AI 산업 경쟁력이 약화해 오히려 미·중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노선을 변경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르줄라 폰데어레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AI 행동 정상회의'에서 '인베스트 AI 이니셔티브'를 발표하며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인베스트 AI는 유럽 내 AI 인프라 구축에 총 2000억유로(약 327조)의 민간·공공자본을 투자하는 프로젝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이 단순한 AI 소비자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미친 규제(crazy regulation)를 없애야 한다"며 AI 스타트업 규제 개혁 로드맵을 예고했다.

◆ "연봉 2억 고소득자, 강제 퇴근 없다"

한국의 주52시간제도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멀다. 모든 사무직이 똑같은 규제를 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고소득자엔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 제도를 운용한다. 올해 기준으로 연 5만8656달러(약 8300만원) 이상인 관리직, 행정직, 전문직 근로자와 연봉 15만1164달러(약 2억1500만원) 이상 고액 임금근로자가 대상이다.


일본의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도 미국과 비슷하다. 금융상품 개발, 애널리스트, 연구개발(R&D) 등 고소득 전문직은 휴일, 초과근로수당 등 근로시간 적용 규정이 제외된다. 영국은 만 18세 이상 근로자의 자발적 서면 동의가 있다면 법정근로시간(주4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있는 '옵트아웃(Opt Out)' 제도가 있다. 프랑스는 단체협약으로 연간 근로일수와 임금을 정하는 '연 단위 포괄약정제도'를 뒀다.


AI 분야에 200조 투자…"응용·시너지 고려해야"


머니투데이

대선주자들 AI 공약/그래픽=윤선정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5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각 예비후보의 AI(인공지능) 관련 공약이 주목받는다. 한 쪽에서 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하자 다른 한 쪽에서 2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하는 등 쩐의 전쟁부터 한국형 AI 모델 개발, 인재 100만명 양성 등 희망적인 이야기가 연일 오르내린다.

23일 정치권과 IT(정보기술)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100조원을 투자해 국가 AI 데이터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겠다고 했다. 한국형 챗GPT를 개발해 무료로 제공하고 'AI 기본사회'를 만들어 금융·건강·식량·재난 리스크를 분석해 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한동훈 국민의힘 예비후보도 질세라 200조원 투자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 예비후보는 AI 인프라에 5년간 150조원을 투자하고 응용 분야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AI 교육을 전면 개편하고 미래전략부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한국형 AI 모델을 만들겠다는 김경수 민주당 예비후보는 민관 공동으로 100조원을 투자해 한국형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산업형 특화 AI 혁신 프로젝트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5대 첨단 기술 분야 전략기금 50조원을 조성하고 조세 부담률을 17%에서 22%로 바꾸는 등 전면 개편하겠다고도 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대통령 직속 AI 기구를 운영하고 최첨단 GPU를 5만개 확보하겠다고 했다. 반도체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통합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가 인프라 대학연구소를 스타트업에 개방하겠다고도 말했다. IT 전문가인 안철수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연구개발 투자 비중을 GDP의 5%로 하고 과학기술 핵심인재 100만명을 양성하겠다고 했다. K-스타트업 펀드로 20조원을 조성하겠다고도 했다.

예비후보들의 공약은 공통적으로 그동안 AI 분야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4월 △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분야의 비전과 전략을 담은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같은 해 9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위원회 활동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으나 정부는 1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을 확용해 GPU 확보 및 자체 AI 모델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정부의 AI 분야 투자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중국이 향후 6년간 약 2000조원 투자 계획을 밝히고 미국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로 약 73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그동안 AI 경쟁에서 뒤쳐저 있던 EU(유럽연합)조차도 AI 기가 팩토리 사업으로 약 3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AI 정책이 단순히 투자 계획에만 머물러선 안된다고 조언한다. 신민수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AI 산업은 IT 산업이나 여러 산업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 기존 산업과의 시너지를 낼까 고민해야 한다"며 "AI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정책 내지 전략을 짤 때부터 현재의 기술과 어떻게 응용·병행할 수 있을지를 실용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규태 순천향대학교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도 "AI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 총액을 늘리는 것도 기술 격차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서비스단에서 AX(AI 전환)를 위한 에이전트 기반 서비스 개발도 중요하다"며 "커머스나 뱅킹 등 서비스별 AI 에이전트는 여전히 선점 효과를 노려볼 수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같은 AI 3위 그룹인 프랑스, 영국, EU, 인도는 물론 한 단계 후순위에 있는 중동 국가들도 수십조 단위 투자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예비후보들의 투자 의지는 매우 의미가 있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빠르게 준비하는 것이다. 미국, 영국이 했던 것처럼 정부 시작과 동시에 관련 계획을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엔 이런 주식 없잖아"…서학개미 싹쓸이한 종목들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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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국내기업 미국 증권시장 상장 사례/그래픽=윤선정


대한민국이 'IT 강국'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주변국'에 머무는 현상은 증권시장에서도 드러난다. 우수한 기술을 가진 국내기업들의 해외 상장 움직임이 커지고 있어서다. 마중물 역할을 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증시를 외면하고 해외증시를 쫓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한다.

23일 삼정KPMG의 '미국 IPO 시장 동향과 국내 기업의 미국 상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56개국 기업들이 해외 증시에 상장했는데 이 중 45%가 미국으로 향했다. 특히 최근 AI와 플랫폼 기업은 국내 상장 대신 미국 진출에 더 적극적이라는 평가다.

대표 플랫폼 기업 쿠팡이 2021년 뉴욕증시(NYSE) 직상장에 성공한 이후 게임사 더블다운인터액티브, AI 기반 LED영상기업 캡티비전, 네이버의 웹툰엔터테인먼트 등이 나스닥에 합류했다. 최근에는 국내 핀테크 선두주자 토스(비바리퍼블리카)가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다. 반면 국내 증시에서는 뚜렷하게 AI 주도기업이라고 볼만한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 SK텔레콤, 네이버(NAVER), 카카오 정도가 있지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수년은 뒤쳐진다는 평가다.

국내 AI·플랫폼 기업들이 미국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성장동력 확보와 글로벌 입지를 고려할 때 미국 자본시장 진출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강상현 삼정KPMG 미국 IPO(기업공개) 자문팀 리더는 "성장성을 중시하는 미국 IPO 시장의 특성상 기술 기반의 성장형 기업에 적합한 환경이 마련돼 있다"며 "미국 상장은 단기적인 자금 조달을 넘어 글로벌 입지 강화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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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월 서학개미 해외주식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그래픽=윤선정

개인들도 AI 기업 투자라면 미국을 찾는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개인들의 지난 1분기 미국 증시 순매수액은 109억달러(약 16조원)로 2011년 통계작성 이래 분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기간 미국 증시는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서학개미는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로 봤다는 의미다.

개별종목으로 보면 단연 AI 관련주나 테크주가 서학개미의 지지를 받는다. 1월1일부터 4월18일까지 올해 국내 투자자가 사들인 종목별 해외주식 순매수 종목은 테슬라, 엔비디아, 팔란티어, 템퍼스AI, 아이온큐, 알파벳 등이 상위를 휩쓴다.

테슬라는 자율주행을 위해 AI 운전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고 엔비디아는 AI 학습과 추론에 최적화된 GPU(그래픽 처리장치)와 AI 슈퍼컴퓨터 플랫폼을 통해 AI 반도체 시장을 이끈다.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는 대표적인 AI 방산주이고 템퍼스AI는 의료 데이터 기반 AI 진단 정밀의료 플랫폼이다. 아이온큐와 알파벳도 AI 관련주로 국내에서 인기가 많다. 서학개미들은 미국의 대표 빅테크 기업 7종을 일컫는 '매그니피센트7'(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메타, 엔비디아, 테슬라) 상당수를 투자 바구니에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AI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민간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30년까지 소프트뱅크와 민관협력으로 100조원 투자를 발표한 후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연이어 3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만하다는 의견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하드웨어 투자를 정부가 국가전략사업으로 지정하면 많은 기업이 소프트웨어 역량을 키울 수 있다"며 "한국은 메모리반도체부터 시스템반도체 소부장 등 생태계가 잘 형성돼있기 때문에 정부가 보강해주면 절대강자 없는 AI시장에서 경쟁력 강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혜 기자 yoonjie@mt.co.kr 이정현 기자 goronie@mt.co.kr 지영호 기자 tell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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