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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하게 꾸준히’ 달려온 안영준…“궂은 일 하는 선수들도 주목받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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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준(서울 SK)은 ‘단단함’과 ‘묵묵함’으로 꾸준히 노력해 2024~2025 남자프로농구(KBL) 정규리그를 자신의 시즌으로 만들었다. 코트를 종횡무진 누벼도 “코트에서 사진 촬영은 어색하다”는 안영준이 지난 17일 경기 용인 소속팀 훈련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안영준(서울 SK)은 ‘단단함’과 ‘묵묵함’으로 꾸준히 노력해 2024~2025 남자프로농구(KBL) 정규리그를 자신의 시즌으로 만들었다. 코트를 종횡무진 누벼도 “코트에서 사진 촬영은 어색하다”는 안영준이 지난 17일 경기 용인 소속팀 훈련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상무가 아닌 상근예비역을 다녀온 다음 시즌에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프로농구 안영준(30·서울 SK)의 단단함은 이 한 문장으로 설명이 다 된다.

안영준은 2022년 입대를 앞두고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상무팀을 포기하고, 퇴근 뒤 혼자 운동하는 삶을 택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제 인생의 1순위가 농구에서 딸로 바뀌었어요. 아이가 아직 어릴 때여서 부모와 관계 형성이 중요한 시기였고, 육아를 아내한테만 맡겨두기에도 미안했거든요. 운동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 반 동안 경기 감각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재활센터에서 몸도 만들고…, 독하게 했어요.”

말이 쉽지, 다른 선수들이 경기를 뛰는 동안 ‘혼자 운동’은 “생각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엄마들의 ‘독박 육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도 ‘직장 생활’ 뒤에 아내와 함께 육아하고 남은 시간에 운동해야 했다. 잠이 부족하고 몸이 지치고 그래서 마음이 불안해질 때도 있었다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그 각오와 의지, 노력으로 안영준은 제대(2023년 11월16일) 이듬해인 이번 시즌(2024~2025) 정규리그를 결국 ‘나의 시즌’으로 만들었다. 2017년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에 뽑혔고, ‘베스트5’에도 선정됐다. “상 복이 없다”는 그가 드디어 맞이한 최고의 시즌이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군 복무 시절부터 꾸준히 몸을 단련시켜온 것이 이번에 폭발했다. “1년 반을 쉬고 지난 시즌(2023~2024) 중간에 투입되니까 초반에는 괜찮았는데 갈수록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게 느껴졌어요. 나름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구나 싶어서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며칠 휴가를 다녀온 뒤 거의 매일 운동을 했어요.” 비시즌 훈련 부족으로 부상 선수가 속출한 이번 시즌 프로농구에서 그는 큰 부상 없이 52경기(총 54경기) 평균 33분25초(국내 선수 1위)를 소화하며 ‘내가 안영준’임을 보여줬다.

이번 시즌 그의 활약은 묵묵히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더 큰 박수를 받는다. 돌이켜보면, 그는 데뷔 이후 7~8년간 늘 묵묵히 뛰었다. 화려한 플레이로 많은 득점을 하는 선수가 주목받는 프로농구에서 공격과 수비에서 궂은 일을 마다치 않으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에스케이의 무기인 수비와 속공은 이런 선수들의 헌신에서 비롯된다. “저는 화려하지 않지만 공격과 수비 모든 면에서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를 하고 싶었어요. 농구에서 기록으로 나타나지 않는 일은 노력을 인정받기 쉽지 않아요. 화려한 플레이도 대단한 일이지만, 궂은 일을 하는 선수들도 주목받았으면 해요.”

이는 프로농구뿐만 아니라 모두의 일상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주목받을 수 있는 일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뒤에서 묵묵히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도 있다. 전희철 에스케이 감독은 “안영준은 공수 균형감이 좋다. 팀에서 필요로하는 어떤 위치도 소화할 수 있다. 이번 시즌 모든 면에서 다 성장했다”고 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안영준은 23일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궂은 일에 나섰다. 슛감이 좋지 않아서 3득점에 그쳤지만, 대신 자밀 워니와 함께 가장 많은(9개) 튄공을 잡아내어 팀의 승리를 도왔다. 도움주기(2개)도 워니(4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하지만 득점이 적으면 헌신이 묻힐 수도 있다. 그는 “팀이 챔프전에 진출해 통합 우승을 하는 게 목표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개인 기록도 따라올 것”이라고 했다.

단단한 성격처럼 “완전 티(T)여서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는 안영준은 코트 위에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에 잘 휩쓸리지도 않고,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강제로 운동을 시켰다면, 이제 프로 선수는 스스로 해야 한다. 자신이 노력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다부지게 했다. 하지만 멘털 강한 ‘극 T’ 안영준도 정규리그 시상식에서는 “엄청 떨었”단다. “혹시 몰라서 소감을 준비해 갔는데, 외운 걸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말하면서 너무 떨리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저한테 집중하고 있으니까 또 떨리고. 살면서 이렇게 떨린 건 처음이었어요.”

2024~2025시즌 최정상에 서면 다시금 좀처럼 보기 힘든 ‘떠는 안영준’을 보게 될까? 안영준은 “플레이오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라며 ‘T’ 답게 당장의 경기부터 챙겼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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