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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끈한 대형마트에서는 못 듣는 동네 마트 ‘사람 이야기’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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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 동네 청수마트
이작은 글·그림, 이야기꽃, 1만7000원



아이에게 마트는 꽤나 흥미로운 공간이지만, 관심의 대상은 언제나 ‘사물’에 머문다. 수조 속 펄떡거리는 생선, 앙증맞은 크기로 잘린 시식용 과일들, 유아차와 다른 승차감(?)을 제공하는 카트…. 아이의 시선에 ‘사람’이 들어올 틈은 의외로 없다.



‘우리 동네 청수마트’는 상품이 아닌 사람을 조명한다. 경기도에 있는 한 동네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세월을 거쳐 이곳에 모여들었는지, 이들의 마트 밖 일상에는 어떤 기쁨과 슬픔이 있는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엿본다.



대형 마트도 한달에 두번은 쉬는데, 청수마트에게 휴일이란 없다. ‘무휴 365일 세일중!’ 여느 대형 마트처럼 쾌적하거나 넓지도 않고, 다양한 상품을 갖춰놓지도 못했지만 “있어야 할 물건들은 다 있”고 “동네 사람들이 그때그때 필요한 걸 살” 수 있도록 오전 9시부터 밤 11시~12시까지 최대한 오래 문을 연다.



긴 영업 시간은 긴 노동시간과 동의어다. 매일 채소를 다듬느라 손가락이 굽은 ‘채소 이모’도, 물건을 진열하고 배달까지 하는 ‘과장’도, 가족에 대한 애틋함으로 고된 노동을 견딘다. 자신이 운영하던 청과물 가게가 망해 이곳으로 오게 된 채소 이모는 “채소하고만 20년을 살았”다. 남편은 막내딸이 막 걷기 시작할 때 세상을 떠났다. 생물이어서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채소 장사. 벌이가 시원찮아도 일을 놓을 수 없는 건 막내딸이 진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육’은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 청수마트에 정착했다. “오토바이 타는 것보다 100배나 어렵”지만 아이가 크면서 조만간 비좁아질 17평 아파트를 넓혀 가겠다는 희망으로 신중하게 고기를 손질한다. 오토바이로 퇴근하는 20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아내랑 유치원생 큰딸이랑 3살 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대리’는 도매 시장에서 그날 팔 채소와 과일을 떼어 오는 일을 한다. 마트로 들어오는 그의 걸음걸이만 봐도 그날 물건이 좋은지 나쁜지 가늠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면 씽씽 달려오지만 (…) 물건이 없으면 아픈 사람처럼 천천히 마트로 돌아와요.” 아동복 공장을 하다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대리’는 “모르는 사람처럼 변해버린” 아내가 “언제쯤 웃으며 말을 걸어 올까?” 기다리며 오늘도 트럭을 몬다.



매끈한 대형 마트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동네 마트 특유의 투박하고 정겨운 사연들이 작가 특유의 소박하지만 개성적인 그림체로 표현돼 한없이 눈길이 머문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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