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숫자 아닌 사람으로 말하는 노동[책과 삶]

속보
주호민 아들 '정서적 학대' 특수교사, 항소심서 무죄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이상헌 지음
생각의힘 | 320쪽 | 1만9800원

다르덴 형제에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영화 <로제타>(1999)는 10대 소녀 로제타가 공장에서 해고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자격 요건이 되지 않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캠핑카에서 살면서 수도가 끊길 정도로 곤궁하지만, 알코올 중독인 그의 어머니는 술병만 뒤진다. 로제타는 매일 밤 되뇐다. “내 이름은 로제타, 나는 일자리를 찾았어.” 그는 유일한 친구 리케를 배신하고 자리를 빼앗기에 이른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절박한 생계에 일자리를 유일한 구원으로 삼은 로제타의 이야기로 서문을 연다.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고발한 영화는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다르덴 형제의 나라 벨기에는 50명 이상의 민간기업이 고용 인원의 3%를 청년으로 채우게 하는 ‘로제타 플랜’을 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벨기에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일자리에서 밀려난 ‘로제타’는 어디에나 있다”고 이상헌은 말한다.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은 왜 늘 존재할까. 단시간·비정규직 일자리를 들먹이며 “눈을 낮추면 일자리야 많다”고 외치고픈 이들도 있을 테다. 이상헌은 일자리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고 말한다.

노동시장에서 거래의 대상이 되는 건 실재하는 ‘사람’의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가 느끼는 삶의 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상헌은 ‘좋은 일자리’가 왜 부족한지를 질문해야 할 때라고 짚는다. “고용, 실업, 노동 개념은 삶의 핵심적인 측면을 담기에 너무 협소하다”는 이 경제학자는 숫자가 아닌 사람을 말한다.

해외 석학의 실증 연구를 인용해 최저임금, 노동조합, 이주노동자 등을 둘러싼 편견도 걷어낸다. 정보라 작가는 추천사에서 “고등학교에서 이 책을 노동권 수업 교과서로 쓰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만큼 쉽지 않은 노동경제학적 논의에 인간 존중의 관점을 담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주 3일 10분 뉴스 완전 정복! 내 메일함에 점선면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