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네가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소년이 묻는다. “‘도와줘’라는 말.” 말이 대답한다.
“네 컵은 반이 빈 거니, 반이 찬 거니?” 두더지의 물음에 소년은 말한다. “난 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두더지는 말한다. “내가 아는 나이 든 많은 두더지들은 그동안 자신의 꿈보다 내면의 두려움에 더 많이 귀를 기울였다는 걸 후회해.”
인생을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 가슴에 물결이 일렁인다. 읽을 때마다 의미가 색다르게 다가와 여러 번 곱씹게 된다.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서정적인 그림은 이야기와 보드랍게 어우러진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상상의힘)이다.
영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와 표지 디자이너로 일하는 찰리 맥커시가 글과 그림을 그린 이 책은 2020년 4월 국내에 출간된 후 5년간 10만 권 넘게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영국에서 2019년 출간된 이 책은 ‘현대판 어린 왕자’로 불리며 전 세계에서 1000만 권 이상 판매됐다.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2022년 공개됐고, 이듬해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이 책을 출간한 김동언 상상의힘 기획실장(64)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1일 만났다. “아마존에서 신간을 살펴보다 책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림이 좋고 내용도 쉬우면서 철학적이어서 마음이 움직였어요. 컵에 담긴 물의 양에 개의치 않고 컵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는 신선한 시각이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듣는 느낌이었죠.”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네가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소년이 묻는다. “‘도와줘’라는 말.” 말이 대답한다.
“네 컵은 반이 빈 거니, 반이 찬 거니?” 두더지의 물음에 소년은 말한다. “난 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두더지는 말한다. “내가 아는 나이 든 많은 두더지들은 그동안 자신의 꿈보다 내면의 두려움에 더 많이 귀를 기울였다는 걸 후회해.”
인생을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 가슴에 물결이 일렁인다. 읽을 때마다 의미가 색다르게 다가와 여러 번 곱씹게 된다.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서정적인 그림은 이야기와 보드랍게 어우러진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상상의힘)이다.
![]()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서 소년과 말의 대화. ⓒCharlie Mackesy, 상상의힘 |
![]()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서 두더지의 이야기. ⓒCharlie Mackesy, 상상의힘 |
영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와 표지 디자이너로 일하는 찰리 맥커시가 글과 그림을 그린 이 책은 2020년 4월 국내에 출간된 후 5년간 10만 권 넘게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영국에서 2019년 출간된 이 책은 ‘현대판 어린 왕자’로 불리며 전 세계에서 1000만 권 이상 판매됐다.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2022년 공개됐고, 이듬해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책표지. 상상의힘 제공 |
이 책을 출간한 김동언 상상의힘 기획실장(64)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1일 만났다. “아마존에서 신간을 살펴보다 책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림이 좋고 내용도 쉬우면서 철학적이어서 마음이 움직였어요. 컵에 담긴 물의 양에 개의치 않고 컵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는 신선한 시각이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듣는 느낌이었죠.”
다만, 판단해야 할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은 그림책이어서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다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에게는 계몽적인 내용을 강조해 잔소리처럼 여겨지는 건 지양하는데요,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내용이 혹시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지 궁금했습니다.”
가까운 출판인과 작가들에게 물어보니 한 명도 예외 없이 “책이 참 좋다”고 했다. 작가는 평소 친구들과 삶, 용기 등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중증장애를 치료하는 병원과 청소년학교, 군대 내 외상 후 스트레스 치료센터 등에서 이를 사용해도 되는지 문의하는 메일이 쏟아졌다. 이에 책으로 출간된 것. 길을 잃은 소년이 거친 들판에서 두더지, 여우, 말을 차례로 만나 집을 찾아가며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서 소년과 두더지의 대화. ⓒCharlie Mackesy, 상상의힘 |
“곧바로 판권을 구입했습니다. 이 책이 영국 미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샀습니다. 관심을 보인 국내 다른 출판사도 없었고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선 상당히 많은 시간과 품이 들었다. 글씨체는 물론 크기, 글 간격, 그림의 색채, 종이 종류까지 영국 현지 출판사 및 작가와 여러 차례 논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외서의 경우 판권을 구입한 현지 출판사에 제작을 일임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찰리 맥커시 작가는 원서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길 원했습니다. 원서는 손으로 글씨를 썼기에, 한글 역시 손글씨 느낌이 나는 글씨체를 찾아야했죠. 글씨체를 100개 넘게 살펴본 결과 ‘꽃길체’를 발견했어요. 딱 맞춤이었죠. 감사하게도 이를 만든 회사가 꽃길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더라고요.”
![]()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서 소년과 두더지의 대화. ⓒCharlie Mackesy, 상상의힘 |
글이 한 편의 시와 같기에 표현을 다듬는데도 공을 들였다. “이진경 번역가를 비롯해 편집자와 함께 여러 번 회의하며 표현을 손질했습니다. 단어, 조사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에 계속 다듬어나갔죠.”
책을 출간한 후 지역 서점 중심으로 알렸다. “상상의힘은 저를 포함해 직원이 3명 정도 되는 작은 출판사여서 대규모 마케팅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담당 편집자로,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달 작가가 작은 서점에 일일이 연락해 책을 소개했어요.(이달 작가는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의 글 작가다) 손품과 발품을 많이 들였죠. 책방지기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팬데믹 시기여서 위로를 건네고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가닿은 것 같습니다.”
![]()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서 이들은 먹구름이 몰려와도 계속 나아간다. ⓒCharlie Mackesy, 상상의힘 |
인플루언서를 비롯해 유명 유튜브에서 책을 소개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독자들은 “10분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10년 넘게 읽을 책”, “지칠 때 어느 곳이나 펼쳐 마음을 얹기 좋은 책”, “읽을 때마다 새롭게 와 닿는 책”이라고 했다. 올해 4월에는 교보문고 이달의 책으로도 선정됐다.
후속책은 올해 10월 영국과 한국을 비롯해 16개국에서 동시 출간된다. 원제는 ‘올웨이즈 리멤버(Always Remember)‘로, 한국책 제목으로는 ‘언제나 기억해’(가제)를 검토하고 있다. 김 실장은 “소년, 두더지, 여우, 말은 계속 나오고 새로운 이가 등장한다”고 귀띔했다. 책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후 애니메이션을 담은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애니메이션 스토리’도 지난해 1월 출간했다.
![]()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서 두더지는 케이크를 무척 좋아한다. ⓒCharlie Mackesy, 상상의힘 |
상상의힘은 2010년 설립된 후 오랜 기간 적자가 이어졌다고 한다. 김 실장은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 대해 “출판사를 흑자로 전환시켜주고 출판사가 굴러가게 하는 효자이자 기둥이 된 고마운 책이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 왔을 뿐인데 뜻밖의 대답을 들은 것 같다”며 웃었다.
“덜 알려진 작가의 좋은 작품을 발굴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좋은 책은 누군가 꼭 알아봐주거든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을 통해 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2020년·상상의힘)은….
거친 들판에서 길을 잃은 소년이 두더지, 여우, 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집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그림책이다.
“난 아주 작아”라고 하는 두더지에게 소년은 “그렇지만 네가 이 세상에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야”라고 말한다.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쓸데없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소년의 질문에 두더지는 답한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
두더지는 케이크를 무척 좋아한다. “처음 시도해서 잘 안 되면 케이크를 먹어라”는 말을 좋아할 정도로.
둘은 쇠 덫에 걸린 여우를 발견한다. 두더지는 이빨로 덫을 갉아내 여우를 풀어준다. 사라졌던 여우는 두더지가 강물에 빠지자 어느새 나타나 구해준다. 그리고 함께 걷는다. 말도 만난다. 소년이 “네가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이 뭐니?”라고 묻자 말은 “‘도와줘’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어 덧붙인다. “도움을 청하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니야. 그건 포기를 거부하는 거지.”
두더지는 말한다. “가장 심각한 착각은 삶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여우는 말이 없다. 소년과 두더지, 말은 그래도 여우와 함께 있는 그 자체를 좋아한다. 여우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솔직히 말하면, 내겐 얘기할 만큼 흥미로운 게 없어.” 말이 대답한다. “솔직한 건 늘 흥미진진해.”
두더지는 “자신에게 친절한 게 최고의 친절이야”라며 덧붙인다. “우린 늘 남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기만을 기다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겐 지금 바로 친절할 수가 있어.”
말은 당부한다. “누군가가 널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고 너의 소중함을 평가하진 마.”
먹구름이 몰려와도 이들은 계속 나아간다.
삶의 의미, 용기, 우정에 대해 울림을 주는 대화가 간결하면서도 포근한 그림과 함께 빛난다. 매번 읽을 때마다 눈길이 머무는 곳이 달라진다. 자신의 마음과 상황에 따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오래 곁에 두고 힘들 때마다 펼쳐보고 싶어진다.
원제는 ‘The Boy, the Mole, the Fox and the Horse’.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