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블랙리스트’ 오른 복귀 전공의 인터뷰
“전공의 권리 어느정도 주장 필요… 환자 고려땐 1, 2달내 돌아왔어야
전공의단체 내부 의사소통 수직적… 극단적 의견이 주류로 받아들여져
PA간호사 급증… 전공의 자리 줄수도”
“전공의 권리 어느정도 주장 필요… 환자 고려땐 1, 2달내 돌아왔어야
전공의단체 내부 의사소통 수직적… 극단적 의견이 주류로 받아들여져
PA간호사 급증… 전공의 자리 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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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망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현재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투쟁 기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갑니다.”
17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난 수도권 대형 대학병원 전공의 김강현(가명·31) 씨는 병원 복귀 이유를 묻는 말에 “의사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생각”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수련병원을 떠났다가 복귀한 전공의는 현재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김 씨는 동료 전공의들과 당시 수련병원을 떠났지만 지난해 상반기 복귀했다. 복귀한 전공의가 언론과 인터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필수 의료 과목 전공의로 파행 운영 중인 대형 병원 필수 의료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안다. 병원에 남아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명단이 담긴,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이 올랐다. 김 씨는 “수천 명이 나를 향해 험한 욕을 해 무서웠다”고 했다.
● “전공의 병원 이탈 한두 달 안에 마쳤어야”
김 씨는 처음 수련병원을 이탈한 이유에 대해 “병원은 선배, 동료, 후배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라며 “선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가 권리를 어느 정도 주장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최대한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한두 달 안에는 돌아왔어야 했다. 그 정도까지가 권리를 피력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김 씨는 처음 병원을 떠났을 때 “(수련에 지쳐) 다들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한 달 쉬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가 의료계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며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을 고집하면서 그를 비롯한 전공의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김 씨는 “(근거를 대지 못하는) 2000명이라는 숫자는 과학적이지 않다”며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한 뒤) 정부가 진료 유지 명령과 업무 개시 명령을 내렸고 정부를 향한 전공의의 불신은 커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폐쇄적인 내부 의사소통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공의 단체는 수련병원 진료과 대표, 수련병원 전체 대표, 전공의 전체 대표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소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는 “병원마다 온라인 단체방에서 지침이나 기사가 공유되긴 하지만 별다른 상호 소통은 없다”고 전했다. 결국 전공의들은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공유하지만, 이곳에선 솔직한 속내나 참고가 될 정보 대신 극단적인 의견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다른 전공의 의견을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대다수가 극단적인 의견을 주류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며 “(강경파들은 자신이) 독립투사라고 생각한다. 특권 의식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오만하다”고 했다.
● “PA 간호사 대체로 전공의 설 자리 줄어”
김 씨는 의대 증원 자체에는 동의했다. 김 씨는 “앞으로 의료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시점에서 의료의 공급, 의사 수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는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료행위를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을 의사에게 준 만큼 의사 규모를 정하는 권한을 정부가 가지는 것도 맞다고 했다. 다만 인공지능(AI) 발달 등 의사 추계에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의대 정원을 조정하는 것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 수련 시스템은 이미 상당 부분 무너졌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의학이라는 학문 특성상 의술은 도제식으로 배우는데 의정 갈등을 거치며 사제 관계에 불신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수련에 적극적이었던 교수마저 소극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미 진료지원(PA) 간호사도 대폭 늘었다. 오히려 PA 간호사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전공의 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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