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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민주화운동 와해 공작’ 1996년까지 실행 확인…진실규명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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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민주화운동 와해 공작’ 1996년까지 실행 확인…진실규명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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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의 강제징집·녹화사업·선도공작 피해자들이 2020년 4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전두환 정권의 강제징집·녹화사업·선도공작 피해자들이 2020년 4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민주화운동을 한 대학생을 군대로 강제징집하고, 학생운동 세력을 와해시키려 이들에게 이른바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을 내렸다. 조사 과정에선 권위주의 통치시기 이후인 1996년까지도 학생운동 이력이 있는 학생을 상대로 한 군대 내 감시활동이 이어진 것이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23일 열린 제108차 전체위원회에서 차아무개씨 등 37명의 피해자가 진실규명을 신청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하며 “국가는 피해자들이 강제징집, 녹화공작, 전향 및 프락치 강요로 받은 피해를 실질적으로 회복시키는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며 “국방부는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의 개인별 피해 사시를 조사할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대학생 강제징집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64∼1965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 때 처음 시작됐다. 학생운동,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학교에서 제적하거나 강제로 휴학시킨 뒤 군대로 강제징집해 사회와 격리하는 활동이었다. 전두환 정권 때는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을 회유·압박·고문해 학생운동 동향을 밀고하는 ‘프락치’로 만드는 ‘녹화사업’과 ‘선도업무’ 등을 진행했다.



특히 권위주의 통치 시기를 벗어난 1996년까지도 학생운동 이력을 이유로 관리대상자로 정해 감시하는 행태가 지속된 것이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결정문에 “보안사 및 국군기무사령부는 적어도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6년까지 선도업무와 마찬가지로 군입대 전 학생운동 전력자를 파악하여 관리대상자로 ‘발굴’하고, 이들을 ‘군내 좌경활동 용의자’라는 명목으로 복무 중 동향 관찰 등 관리를 지속했다”며 “대상자는 최소 수백명에 달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범주는 권위주의 통치 시기(노태우 정권) 이전으로 한정돼 이 시기 피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021년 5월 이 사건에 대해 처음 조사를 시작해 2022년 11월 피해자 187명에 대한 1차 진실규명을 시작으로 2023년 10월 101명, 2024년 7월 74명, 2025년 1월 63명에 대해 진실규명을 결정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와 피해회복 등을 권고한 바 있다. 이날 37명에 대한 진실규명과 권고가 추가로 이뤄졌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대통령 긴급조치’, ‘계엄 포고령’ 위반 등을 이유로 수사기관에 붙잡혀 국방부,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등에 의해 군부대로 넘겨졌다. 학생들은 감금된 상태에서 가혹 행위를 당하며 휴학계와 입대지원서를 쓰기도 했다.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은 군대에서도 ‘반정부학생세력(ASP)’이나 ‘특수학적변동자’라는 표식으로 분류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고 수시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1982년께부터 이들을 대상으로 ‘녹화사업’과 ‘선도업무’가 이어졌다. 현역 군인을 영장 없이 연행해 수일에서 한 달까지 구금한 채 특정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는 등 사상 전향을 강요했고, 이후 ‘순화’됐다고 판단된 이들을 고문해 프락치 활동을 시키는 식이었다. 특히 1987년 광주에서는 조선대학교 운동권을 와해시키기 위해 ‘양반공작’이라는 이름의 선도업무가 이뤄졌다. 양반공작의 한 피해자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잠도 안 재우고 조사받으며 치욕적인 모멸감을 받고, 프락치 활동으로 동료들을 배반하도록 강요당했고, 거기에 제가 대항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저를 너무 짓밟았다”며 “이 사건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고 진술했다.



보안사의 프락치 활동 강요는 학생들이 전역한 뒤에도 이어졌다. 제대한 학생들을 야학·노동계·종교계 등 사회 전반에 침투시켜 정보를 수집하게 했다. 피해자들은 신원조회 문제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고문으로 신체를 훼손당했으며, 프락치 활동 강요와 사찰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한 피해자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전역 후 지역 경찰서에서 ‘요시찰 인물’이라며 계속 찾아오고 동네 사람들한테 내 동향을 계속 물어 동네에서 살기가 힘들었다”고 진술했다. 보안사의 이런 ‘선도업무’는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6년까지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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