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동아일보 언론사 이미지

[단독]병원 복귀한 전공의 “대안도 소통도 없는 투쟁이었다”

동아일보 박경민 기자
원문보기
서울구름많음 / 11.4 °
사직 1년만에 복귀한 수도권 전공의 인터뷰

“온라인으로 지침만 공유, 극단적 의견이 확대 재생산

병원 망할 때까지 버틴다? 의사로서 할 수 없는 생각”
동아일보

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6.5. 뉴스1


“병원이 망할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현재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투쟁 기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갑니다.”

17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난 수도권 대학병원 전공의 김강현(가명·31) 씨는 병원 복귀 이유를 묻는 말에 “의사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생각”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수련병원을 떠났다가 복귀한 전공의는 현재 전체의 12%에 불과하다. 수도권 한 수련병원의 필수의료 진료과에서 수련을 이어나가는 김 씨는 지난해 2월 사직 후 상반기에 복귀를 결심했다. 복귀 후 그는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사직 후 수련병원에 복귀한 필수의료 전공의가 직접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 “전공의 병원 이탈 한두 달 안에 마쳤어야”

김 씨는 처음 수련병원을 이탈한 이유에 대해 “병원은 선배, 동료, 후배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라며 “선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가 권리를 어느 정도 주장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최대한 사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한두 달 안에는 돌아왔어야 했다. 그 정도까지가 권리를 피력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처음 병원을 떠났을 때인 지난해 2월을 떠올렸다. 그는 “(수련에 지쳐) 다들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한 달 쉬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부가 의료계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며 불신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전국 수련병원 레지던트 1년차 실기시험일인 17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12.17.뉴스1


당시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을 고집하면서 그를 비롯한 전공의들은 정부의 증원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김 씨는 “(근거를 대지 못하는) 2000명이라는 숫자는 과학적이지 않다”며 “(전공의가 병원을 이탈한 뒤) 정부가 진료 유지 명령과 업무 개시 명령을 내렸고 정부를 향한 전공의의 불신은 커졌다”고 말했다.

다만 김 씨는 지금까지 14개월째 이어지는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비판을 내놓았다. 별다른 대안 제시 없이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그는 이 배경에 의사 집단의 보상심리가 내재돼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평생 과도한 경쟁과 공부량에 놓이며 ‘우리가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내면의식을 강화해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한편으로 이런 구조를 만든 사회의 잘못도 있다“고 설명했다.

●커뮤니티서 “극단적인 의견 확대재생산”

동아일보

지난 1월 2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료진의 모습. 뉴스1


김 씨는 전공의 집단 내부의 폐쇄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지적했다. 그는 전공의 단체가 수련병원 진료과 대표, 수련병원 전체 대표, 전공의 전체 대표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소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병원마다 온라인 단체방에서 지침이나 기사가 공유되긴 하지만 별다른 상호 소통은 없었다. 일반 전공의들이 전공의 집단의 방향성을 알 수 없는 구조”라며 “2020년 의정갈등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전공의 대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일반 전공의들과 소통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폐쇄적인 논의 구조 속에서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극단적인 의견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사직 전공의들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도 의료계 내부에선 온라인 커뮤니티밖에 없어 점차 극단적인 의견을 주류 의견으로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전공의들의 복귀에 대해서 “이제 너무 늦은 것 같다”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는 병원 복귀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신상 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가 올라온 걸 발견하기도 했다. 게시글에는 수십개의 욕설이 남겨져 있었다. 다른 리스트에서 복귀한 전공의들은 휴대전화 번호, 실물 사진 등이 올라오면서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그에게 지난해 하반기는 ‘병원에 나가는 게 두려웠던 시간’이었다. 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시로 들어가 이름이 추가로 올라왔는지 확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추후 전공의들이 복귀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김 씨는 “미리 복귀한 전공의로 낙인이 찍혀 병원 생활 속에서 따돌림을 받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해 전공의 복귀가 시작된 뒤 전공의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운영하며 복귀 과정에서 괴롭힘 등 피해 사실을 신고받고 있다. 다만 김 씨는 “별다른 도움이 되진 않는다”며 “이외 정부와 병원의 별도 지원책은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 “PA 간호사 대체로 전공의 설 자리 줄어”

동아일보

지난 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김 씨는 의대 증원 자체에는 동의했다. 김 씨는 “앞으로 의료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시점에서 의료의 공급, 의사 수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는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료행위를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을 의사에게 준 만큼 의사 규모를 정하는 권한을 정부가 가지는 것도 맞다고 했다. 다만 인공지능(AI) 발달 등 의사 추계에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의대 정원을 조정하는 것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전공의 수련 시스템은 이미 상당 부분 무너졌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의학이라는 학문 특성상 의술은 도제식으로 배우는데 의정 갈등을 거치며 사제 관계에 불신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는 “수련에 적극적이었던 교수마저 소극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이미 진료지원(PA) 간호사도 대폭 늘었다. 오히려 PA 간호사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전공의 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추진 중인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 시범사업’은 현장에서 실효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김 씨는 “현재도 수련시간은 주당 약 80시간 수준이며, 금요일과 주말 당직 등으로 여전히 과도한 근무가 이어지고 있다”며 “지난해에는 모두가 ‘전공의 없는 병원’에 적응하다 보니 일부 수련 프로그램이 생략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김 씨는 수련을 마치고 수련병원 교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보상심리야 당연히 있다. 돈도 많이 벌고 싶다. 좀 더 보람찬 일을 하고 싶어서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