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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숙 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여성 통상 협상가다. 2006년부터 3년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FTA 교섭관을 지내면서 한·미 FTA와 한·아세안(ASEAN) FTA, 한·EU FTA, 한·태국 FTA 등 굵직한 FTA 협상을 차례로 맡았다. 과거 한·미 FTA 통신 분과 협상에서 미국이 기술 표준을 시장의 자율에 맡기자고 요구하자 "내 시체를 밟고 가라(Over my dead body)"고 맞서 한국 정부의 권한을 지켜낸 일화가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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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으로 24일 저녁 9시, 미국의 관세 정책 관련 한·미 협의가 열린다. 정부는 이번 만남이 협상이 아닌 ‘협의’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이번 협의는 미국 측 요청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 만남에서 뭔가를 결정하기보다는 의견을 교환하는 데 집중하고, 우리가 요청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사실 미국의 관세 정책은 우리 입장에서 황당한 조치다. 한·미 FTA로 한·미 상호 간의 관세율은 0%에 가까운데 미국은 한국에게도 일방적으로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고서는 상호 관세 15% 추가를 발표했다가 90일간 적용을 유예했다. 지금은 마치 한·미 간의 관세가 원래 25%였고, 한국이 뭔가를 내놓으면 관세율을 낮춰주겠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길 가던 사람에게서 1,000원 뺏어 놓고 500원을 돌려주면서 마치 자기 돈 500원을 주는 것처럼 선심 쓰듯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경제가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 미국이다.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보니 대부분의 국가가 울며 겨자 먹기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단합한다면 미국에 대응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죄수의 딜레마’가 지배하는 곳이라는 걸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이 알고 있다. 통상 협상 전문가 남영숙 교수에게 이번 협의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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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숙 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 |
- 지금 시점에 미국이 한국 등에게 협의를 제안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미국이 한국, 일본, 인도, 영국, 호주 이렇게 5개국에 대해서 최우선 협상국으로 지정했는데, 주로 동맹국이나 안보 협의체를 같이하고 있는 우방이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손쉽게 양보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은가. 이제 이런 계산도 있을 것 같다. 또 한국과 일본을 압박해서 협상을 빨리 타결하면 그걸 바탕으로 현재 트럼프가 미국 내에서 관세 관련 비판을 받고 있으니 어떤 정치적인 정당성도 확보하고, 다른 나라들에도 어떤 모델을 보여주면서 궁극적으로는 협상이 타결된 국가들과 함께 중국을 압박하려는 전략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대한 압박에 중국이 맞대응하면서 진전이 없으니까 오히려 미국이 급해진 것 같다는 해석도 있는데.
"지금 미·중 양국은 패권국으로서의 자존심 등 때문에 강대강의 대치 상태고, 그런 것들은 좀 상당히 갈 것 같은데 그래도 이게 극단적으로 가기에는 양국에 미치는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갈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어느 선에서 협상이 이루어질 것 같은데, 트럼프 1기 때는 미국이 관세를 좀 낮춰주고 중국이 농산물이나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는 선에서 해결이 됐다. 이번에는 미국이 안보까지 포함하는 패키지로 협상을 하려고 할 텐데 과연 그게 어디까지 가서 해결될지는 조금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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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 한·미 등에 협상을 먼저 제안한 건 미국이 조급함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해석도 있다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미국의 상호 관세 조치로 많은 나라들이 굉장히 급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만 급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미국 국내 정치 상황도 있고, 미국도 가능하면 빨리 협상을 진행하려는 상황이라 그런 점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 미국이 재무장관과 통상장관이 함께 참여하는 2+2 협의를 제안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판을 처음부터 크게 키우자는 것 같다. 트럼프의 기본적인 협상 전략은 ‘원스톱 쇼핑’ 표현에도 나오는 것처럼 처음부터 모든 사안을 내놓고 패키지로 논의하는 것이다. 한국에게도 그런 식으로 협상 카드를 전부 갖고 오면 우리가 좀 보고하겠다, 이런 게 기본적인 미국의 전략이기 때문에 2+2를 제안한 것 같다. 또 또 하나는 미국이 가능한 한 빨리 협상을 타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반영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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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나누는 최상목 부총리(왼쪽)와 안덕근 산자부 장관 |
- 정부 협의단이 이번 협의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미국이 짜 놓은 판에 너무 휘둘리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다. 트럼프의 방식이 상대를 매우 강하게 압박해서 결국 양보를 얻어내는 방식인데, 그런 것에 말리면 우리가 갖고 있는 카드를 모두 보여주거나 협상을 서두를 수 있다. 통상 협상은 앞으로 몇십 년간 우리나라의 국익을 좌우한다. 또, 많은 경우 우리가 양보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이해 관계자들에 대해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국내적으로 뒷감당이 되지 않는 것이 통상 협상이라는 걸 유의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대선이 예정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인 만큼, 일단은 예비 협의 차원에서 서로의 우려와 관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다음 정부가 그걸 이어받아서 협상을 하는 단계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통상 '협의'는 실무 차원에서 진행하고 장관급 등 위로 올라갈수록 논의 단계가 깊어지는데 이번은 장관들끼리 ‘협의’를 진행하는 조금 생소한 상황인데
"일반적인 통상 협상은 실무급에서부터 이제 많은 이슈들을 논의해서 거른다. 국장급, 장관급으로 올라가면서 논의 내용을 좁히고, 장관급도 해결하지 못하는 최종적인 민감한 사항은 결국 정상들끼리 논의한다. 그런데 트럼프의 협상 방식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내어놓고 톱다운 형태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평소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협상 방식이고 전략이라서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 트럼프의 협상 방식에 대한 대비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본의 경우와 같이 트럼프 대통령이 사전 조율 없이 협상장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 방식으로 최대치의 압박을 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또,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상 합의를 안 했는데 마치 합의를 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면서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좀 의연하고 여유를 갖고 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특히, 협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들과 주고받은 협의 과정을 좀 투명하게 국내에 전달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국가 간 협상을 할 때, 협상장에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에 따른 장단점이 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논의의 투명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서로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는 어렵다. 소수가 참여하는 소인수 회담의 장단점은 그 반대다. 그런데 소인수 회담이 장점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참여자 간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논의의 불투명성만 높아지면서 ‘이면 합의’ 논란이 일 수도 있다. 이번 한·미 간 관세 협의는 2+2 협의, 소인수 회담으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미국이 논의되지 않았거나 확정되지 않은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남 교수가 협의 과정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도 미국이 원하는 것을 좀 알고, 또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미국도 대략 알고 있을 것이다. 보통 협상할 때 여러 가지 카드를 만들고, 어떤 것은 먼저 내놓고 어떤 것은 마지막까지 내놓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카드별 정확한 손익 계산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말로 압박을 받았을 때 내야 하는 마지막 카드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협상의 도구로서 활용할지 결정할 수 있다. 통상 협상에서 처음 몇 차례는 서로 약간 간보기를 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정말 얼마나 원하는지, 아니면 그냥 이것은 협상 차원에서 그냥 던진 건지, 또 어떤 것은 너무 민감해서 언급도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한·미 관세 협의의 카드로 많이 논의되는 게 알래스카 LNG 개발 및 참여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글로벌 메이저 정유사가 참여했다가 포기했던 사업인데, 최근 미국 측이 한국 기업의 참여를 최근 잇달아 요청하고 있다. 남 교수의 이야기는 미국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 얼마나 진심이고 절실한지 이번 협의 등을 통해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한국의 공격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사진=AP, 연합뉴스)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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