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부터 농구대잔치 장내 아나운서로 활약
선수·감독 거쳐 한국 농구 대중화에 평생 헌신
한국 농구계의 전설이자 국내 최초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염철호씨가 22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1935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사대부중 재학 시절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농구를 접한 후, 성동고와 중앙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1950년대 말에는 청소년대표로 선발됐으며 이후 이화여고 농구부 창단 감독을 시작으로 서울은행, 전매청,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감독직을 맡아 한국 농구 발전에 기여했다.
1983년 '점보시리즈'로 시작된 농구대잔치에서 "입담 좋은 염철호씨가 맡는 게 좋겠다"는 농구계의 중론에 따라 한국 최초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구수한 말투와 해박한 농구 지식은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코트의 감초'로 불리며 복잡한 상황에서는 해설자 역할도 수행했다. 특히 허재에게 '농구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등 선수들의 별명을 지어주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선수·감독 거쳐 한국 농구 대중화에 평생 헌신
염철호 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 한국일보 자료사진 |
한국 농구계의 전설이자 국내 최초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염철호씨가 22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1935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사대부중 재학 시절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농구를 접한 후, 성동고와 중앙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1950년대 말에는 청소년대표로 선발됐으며 이후 이화여고 농구부 창단 감독을 시작으로 서울은행, 전매청,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감독직을 맡아 한국 농구 발전에 기여했다.
1983년 '점보시리즈'로 시작된 농구대잔치에서 "입담 좋은 염철호씨가 맡는 게 좋겠다"는 농구계의 중론에 따라 한국 최초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구수한 말투와 해박한 농구 지식은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코트의 감초'로 불리며 복잡한 상황에서는 해설자 역할도 수행했다. 특히 허재에게 '농구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는 등 선수들의 별명을 지어주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고인은 2008년까지 대전에서 농구 꿈나무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2009년 뇌경색으로 농구장을 떠나게 되었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아들 염제인씨는 "대전에 살면서도 열차를 타고 서울로 매일 오갈 정도로 농구를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셨다"며, "여러 별명 중에서도 '농구 할배'라는 말을 그렇게도 좋아하셨다"고 회상했다.
빈소는 대전 건양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4일 오전 7시 20분, 장지는 대전추모공원이다.
이승훈 인턴 기자 djy9367@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