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마침내 그가 갔다.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열병 같던 시간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고, 한국 사회는 12·3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탄핵 정국에서 그 형체를 드러냈고 더 강해진 폭력의 구조는 앞으로 건재하게 남아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달간 우리는 이중의 폭력을 아주 가까이서 경험했다. 그 하나는 위로부터의 국가폭력, 즉 친위 쿠데타에 의한 민주주의 폐지 시도였다. 우리는 헌법재판소 결정문과 더불어 계엄사령부 포고문, 즉 실패한 계엄 통치 계획서를 꼼꼼히 읽어야 한다. 국회, 정당, 노조, 쟁의, 집회결사, 언론출판의 자유가 모두 폐지되고 ‘처단’의 대상이 되는 세상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었다. 우리가 겪은 또 다른 폭력은 아래로부터의 폭력, 즉 극우 사회세력의 증오와 민주헌정에 대한 공격이다. ‘빨갱이’, ‘종북’, ‘좌파’, ‘공산주의자’, ‘중국인’, ‘동성애자’,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밟아’, ‘죽여’, ‘처단’하자는 구호에 수만 군중이 열광했다. 평범한 대중이 하나님, 애국, 자유의 이름으로 인간에 대한 절멸의 선동에 동참했다. 이 같은 이중의 폭력이 만나면 파시즘이 된다. 이 폭력들은 잠시 나타났다 소멸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12·3 이전에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됐고 12·3 이후에도 오랫동안 존속할 조직과 집단, 언어,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갖고 있다.
먼저 국가기관에서, 우리는 12·3 친위 쿠데타에 국무위원, 군, 검찰, 경찰 수뇌부가 대거 가담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내란 동조자가 국가 고위층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이들은 더 넓은 특권층 네트워크의 일원이다. 저명한 극우 연구자 빌헬름 하이트마이어는 극우 문제의 원천을 알려면 ‘사회의 중심부를 보라’고 했다. 한국에서 진짜 극우는 총리, 장관, 국회의원, 장군, 판사, 검사, 교수, 목사, 언론인 같은 위선적 엘리트들이다. 내란 종사자 처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당정치에서도 12·3은 중대한 결과를 남겼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 때와 같은 분열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단합된 내란의 길을 택했고, 극우, 폭력 집단들과 손을 잡았다. 그 결과 지금 한국의 정당 시스템은 언설과 실제의 양면에서, 명백히 반민주, 반헌법, 반인권적인 극우 정당이 30~40% 지지율을 누리는 구도가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을 절대 찍고 싶지 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선택지가 극우 정당밖에 없는 현재의 구도는 이 나라의 미래를 진실로 위태롭게 한다.
사회에서도 탄핵 정국은 극우 세력을 엄청나게 팽창시키고 정치적으로 성장시켰다. 단연 독보적이었던 것은 개신교 집단이다. 개신교인의 다수가 극우는 전혀 아니다. 여러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인은 진보층과 보수층이 모두 다른 종교보다 많은 양극화 구조를 띤다. 그러나 ‘보수’ 신자들 중 극우에 동조하는 사람이 상당하며, ‘보수’ 목회자들도 반공주의나 동성애자 혐오 등 극우 성향이 많다. 잘 알려진 전광훈은 오랫동안 카리스마와 추종 세력을 축적해왔고 사랑제일교회, 자유통일당, 자유마을 등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확장해왔다. 또 다른 조직인 ‘세이브코리아’는 반동성애 조직들이 변신한 것이며, 보수 대형 교회들을 배경으로 폭넓은 참여자를 갖고 있다. 그 밖에도 많은 개신교 집단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종북’, ‘좌파’, ‘공산주의’, ‘동성애’, ‘민주당’, ‘노조’ 등을 묶어 ‘자유 대한민국의 적’, ‘하나님 나라의 적’으로 배열한다. 향후 개신교 세력이 인간의 원초적 불안과 구원의 열망에 접속한 세련된 파시즘 이데올로기와 의례를 발전시킨다면 그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다.
한편, 탄핵 정국에 주목받은 또 다른 집단은 ‘청년 극우’들이다. 서울서부지법 폭동에서 2030 남성이 다수 있었고, 대학들을 순회하는 극우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청년 혹은 ‘이대남’이 극우화되었다는 착시에 빠지면 안 된다. 밭에 썩은 과일 중에 사과가 여럿 있는 걸 보고 ‘사과는 잘 썩는 과일’이라고 일반화하는 건 논리적 오류다. 청년은 탄핵 반대 비율이 20%대로 가장 적었던 세대였고, 20대 중 헌재의 파면이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사람은 11%에 불과했다. 그러나 산술적으로 소수일지라도 청년 수만명이 폭력적 사고를 갖고 있고, 수천명이 군중집회를 열며, 수백명이 몰려다니며 폭력을 행사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청년 파시스트 집단의 등장을 경고한다. 청년 극우의 구성은 다양한데, 그중 일부는 ‘교회 청년’들이고, 최근 혐중 시위를 벌인 ‘자유대학’같이 정치색이 짙은 그룹들도 있다. 또한 ‘청년 우파’를 내건 유튜버들도 단기간에 급성장해서, 구독자 수가 수십만에 이르는 혐오 경제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국가, 정당, 사회에 견고히 자리 잡은 폭력의 구조들은 탄핵 정국에서 일단은 패배했지만, 곧 전열을 재정비하여 반격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 민주화를 위해서는 군, 검찰, 정보기관 등 국가 강압 기구의 권력을 분산시켜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같은 큰 정치제도 논의보다, 정치제도 자체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예방할 구체적 장치가 긴급하다. 또한 국가 엘리트의 혁신이 중요하다.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트뢸치가 강조했듯이,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공화주의자 없는 공화국’은 모래성 같은 것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이 극우의 손에 절대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한편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보수 정치세력이 성장하고, 다른 한편 중도, 진보 성향 정당들이 극우의 집권을 억제할 수 있는 정치 역량을 공고히 할 때 해결될 수 있다. 파시즘의 사회적 토양은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 박탈감, 정치와 사회규범에 대한 환멸이다. 그것을 풀어야 한다.
사회에서 극우 폭력과 혐오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대응과 법제 강화가 중요하다. 공권력과 사회의 다수가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때, 파시즘은 한계를 모르고 세를 확장한다. 그러나 극우적 사고의 확산까지 규제와 처벌의 수단으로 막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사회의 힘이 그들을 압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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